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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어른들의 병정놀이

Joyfule 2024. 2. 1. 13:1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어른들의 병정놀이


꿈결에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벨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나는 꿈 속에 있었다.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산 옆에 암자같은 집들이 있고 그 안에서 염불을 하며 수행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꼭대기에 있는 염불암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어느 순간 잠이 깼다. 벽에 걸린 시계의 초록불빛이 열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늦잠을 잔 일이 없는데 처음인 것 같았다. 이상했다. 꿈 속에서 나는 오십년전으로 돌아가 대학 일학년 여름에 갔던 팔공산꼭대기의 암자로 올라가고 있었다. 왜 뜬금없이 시간의 아스라한 저쪽에서 그 장면이 내게 다가온 건지 알 수 없었다. ​

자리에서 일어나 버릇같이 스마트폰 화면의 최근 전화기록을 들여다 보았다. 낯선 전화번호가 보였다. 발신자의 성명도 없었다. 그 번호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간다. 누군가 한참 만에 전화를 받는다.​

“저는 엄상익 변호사라고 합니다. 전화 거셨습니까?”​

내가 말했다.​

“아 저 제3군수지원사령부의 권 상사입니다.”​

소리가 갈라진 노인의 목소리였다. 사십일년의 안개낀 세월 저쪽에서 어렴풋한 기억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스물아홉살이었고 육군 대위 계급장을 단 군인이었다. 그는 옆 부대의 하사관이었다. 대충 나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많은 형 같은 분이었다. 당시의 하사관이란 군에서 독특한 존재였다. 군 생활을 오래하면서 동생 같은 장교들을 상관으로 두고 있었다. 나는 그의 부대원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업무적으로 만났다. 그럴 때면 서너명이 부대 근방의 허름한 식당으로 갔었다. 박봉에 주머니 사정이 내남 없이 뻔할 때였다. 나는 넓은 무쇠냄비에 된장찌개를 가득 담아 주고 추가로 주문하는 소고기 한근을 듬성듬성 썰어달라고 주문했었다. 상위에서 된장찌개가 끓을 무렵 소고기를 집어넣고 다시 한번 열을 가하면 기름기가 도는 국물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한결 고급스럽게 맛이 변했다. 우리들은 하얀 밥을 진한 된장찌개 국물에 말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밥을 함께 먹었던 정이 그 향기가 사십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의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형같이 좋은 분이셨는데 지금 몇살이세요? 어떻게 살고 계세요?”​

반가운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

“여든 세살이예요. 마누라하고 둘이서 삼척에 살고 있어요. ​

제대하시고 잘 됐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저는 군에 계속 남아 상사에서 원사로 진급했어요. 군단급 이상에만 하사관중 원사라는 계급이 생겼어요. 장교들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하사관 사회에서 나는 여러명의 상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원사로 진급한 겁니다. 퇴역을 하고 삼척에 내려와 살았죠. 얼마 전 우연히 동해에 사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전화번호를 수소문해서 오늘 오전에 연락을 한 거죠.” ​

“참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연세가 벌써 팔십을 훌쩍 넘기신 걸 보니까요. 저도 칠십 고개를 넘었잖습니까? 만납시다. 이번에는 부대 근처의 된장찌개집이 아니라 동해 바닷가에서 싱싱한 회를 소주하고 곁들여 살테니까요.”​

“그래요. 보고 싶네요.”​

그의 정이 담긴 대답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십년 전의 스쳐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고 그가 연락을 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잘해주거나 마음을 써 준 일이 기억에 없다. 오히려 신세를 진 편이다. 초급장교 시절 나는 통근버스 뒷좌석에서 책을 펴서 조용히 공부하곤 했다. 같이 출근하던 부대의 하사관들이 그런 내 모습을 신기한듯 보는 것 같았다. 대화는 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보내던 친근하고 따뜻한 눈길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내가 처음 장교로 임관되어 배치받았던 부대에서 인연을 맺었던 형님 또래의 하사관은 팔십 노인이 된 지금까지 매일 카톡으로 내게 좋은 얘기들을 보내주고 있다. 

나는 그 시절 그들의 아련하고 애잔한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가난 때문에 아니면 집안 사정으로 대학의 졸업장이 없는 분들이 장교가 되지 못하고 하사관이 되어 군에서 근무했었다. 더러는 과격한 지휘관에게 수모도 당하는 걸 보곤 했다. 그런 아픔을 견디면서도 상관에게 충성을 하면서 직업군인으로서의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에는 군시절 내가 모시던 장군이 내가 사는 동해 바닷가로 놀러 왔었다. 이제는 세상이 어깨에 붙여줬던 계급장이 모두 떨어지고 우리는 모두 평등한 노인이 됐다. 내가 묵는 실버타운의 해병대 사병 출신 노인은 옆방의 육군대령출신에게 수시로 “짜장면 사줄께 너 오늘 내 운전병해라”라고 하면서 차를 태워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장군이 되기를 소망하던 한 선배는 우쭐대던 군시절이 어렸을 때 병정놀이를 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혼이 지고 밤이 올 때 쯤이면 우리는 모두 하던 놀이나 역할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같이 되는 게 아닐까.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는 놀이를 하면서 따두었던 딱지나 구슬이 쌓여 있기도 하고 병정놀이의 계급장도 있을 것 같다. 늙어서 영원히 잠들기 전에도 그 비슷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