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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위선자다

Joyfule 2024. 1. 31. 13:5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나는 위선자다


나이가 지긋한 사무장이 변호사실로 들어와 내게 말했다.​

“권투선수 출신이 나를 찾아와 두들겨 패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분노하면서 변호사님도 위선자라고 욕을 해요.”​

나는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일부는 이해할 것 같았다. 해고된 그가 내게 와서 복직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의뢰했었다. ​

나는 그들의 억울함에 공감하고 법정투쟁을 해서 이겼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동정이 지나쳤던 것 같다. 그는 나를 변호사가 아니라 사회운동가나 정이 든 형쯤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사무장이 그에게 변호사비를 청구하니까 그는 배신감을 느끼고 나를 위선자로 단정했다. ​

사이비 종교단체의 교주로부터 피해를 받은 여성들이 나를 찾아왔었다. 그녀들의 뒤에는 이단과 싸우는 단체가 있었다. 그 단체의 사람들 중에는 교주를 살해하고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광신도도 있었다. 그들의 증오와 적개심이 대단했다. 나는 단체와 차츰 거리를 두었다. 증오와 적개심으로 싸우면 그들도 악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벌은 검사의 몫이고 변호사는 소송으로 손해배상금을 받아주는 일이었다. 승소를 하고 돈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주었다. 변호사로서 땀 흘린 품값도 받았다. 얼마 후에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내가 돈만 아는 죽일 놈이라는 심한 욕들이 담겨있었다. 그중 어떤 사람은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하는 글을 보냈다. 무료로 하는 척 위선을 떨더니 왜 뒤로 돈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겠다는 각서를 받아두었다. 품값을 뒤로 받은게 아니라 정식으로 받았다. 그들은 나를 같이 투쟁하는 동지로 착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위선자가 됐다.​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는 열 개의 사건을 하면 그중 하나는 무료로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일종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라고 할까. 노숙자단체를 운영하는 목사에게 내가 무료로 할 사건이 있으면 맡겨달라고 했다. 그곳에서 이십여년 동안 수많은 사건이 보내져 왔다. 그중에 언론에 알려진 유명한 도둑이 있었다. 감옥을 찾아가 그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정이 들었다. 그의 석방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주변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스타 범죄자를 만나 한번 뜨려고 한다는 공개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에 유명해졌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도둑 친구들의 협박도 받았다. 그 일의 끝은 위선자라는 평가와 욕이었다. 어떤 사람은 양의 탈을 쓴 늑대같은 사회운동가라고 욕을 써 보내기도 했다. 나는 사회운동을 한 적이 없다.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그 업을 해 왔을 뿐이다. 형사와 검사에게 능멸을 당하고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를 보는 판사의 얼굴에는 위선자를 보는 비웃음의 눈빛이 서려 있기도 했다. 그들이 내게 혐의를 두는 것은 위선인 것 같았다.​

한 메이저 일간지의 논설실장과 지면상으로 심한 싸움을 했다. 그의 펜에 걸리면 누구든지 갈갈이 찢어지고 상처입었다. 친구가 다치는 것을 보고 그의 메마름을 지적하는 글을 썼다. 그는 메이저신문의 전통있는 칼럼을 통해 나를 비난했다. 군의 장교 출신이고 정보기관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가 어떻게 인권변호사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를 위선자라고 했다. 조금은 억울했다. 나는 인권변호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기 싫은 군대에 갔을 뿐이다. 청춘의 시간을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바쳤다. 프레드릭 포 사이트의 첩보소설을 읽고 호기심에 정보기관에 들어가 몇 년간 있었다. 양심에 가책을 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기억은 없다. 물론 해적선의 화부도 책임을 지라면 할 말은 없다. ​

나는 위선자라는 욕을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엄마나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고싶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일류학교 뱃지를 달고 자랑하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재물욕이나 권력욕 못지않았다. 글을 쓰는 것도 그 행간에는 공명심이 숨어있다. 그 욕심은 늙어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인간보다는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나는 위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