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에베소서(5) 영안이 열릴 때 생기는 축복

Joyfule 2009. 11. 11. 06:31

에베소서(5) 영안이 열릴 때 생기는 축복

에베소서 1장 15-22절


<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


  미국에 빅터(victor)란 이름을 가진 16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승리자’란 뜻을 가졌지만 그는 학교에서 항상 패배자처럼 살았습니다.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그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직장을 구해 일을 했는데 하는 일마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32세가 될 때까지 76번 일을 해서 하는 일마다 실패했습니다.


  32세에 그는 77번째의 직장에 지원했습니다. 그때 IQ 테스트를 했는데, 그 테스트에서 보통 지원자들은 100점을 맞았지만 그는 161점을 맞았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획기적으로 달라지면서 천재적인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레이저 수술의 대가이자 천재들의 모임인 국제 멘사협회의 총재를 지낸 빅터 세리엔코(Victor Serienko)입니다.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에도 획기적인 변화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마음눈이 열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 영안이 열릴 때 생기는 축복 >


  본문 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나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제일 첫 번째로 기도하는 것이 “지혜의 계시의 정신을 달라!”는 기도였고(17절), 그 기도와 관련해서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저희들의 마음눈이 밝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본문은 3가지의 축복이 생긴다고 전합니다.


1. 소망의 실체를 깨닫는 축복


  본문 18절 중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부르심은 부담이 아닙니다. 부르심은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하나님이 넘치게 축복을 주실 것임을 나타내는 희망의 전조입니다.


  지금 세상이 가장 굶주려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복된 존재입니까? 항상 넘치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셨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부르셨다는 것이 희망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어떤 부담을 주시는 것도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모습이 아무리 부족한 모습이라도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현재의 모습대로 다루지 아니하시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고 다루십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그는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라고 부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용사의 길을 걸어야 했지만 하나님이 처음 그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전혀 용사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눈을 피해 숨어서 밀을 타작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어떻게 그런 사람이 큰 용사입니까? 그를 큰 용사라고 여기신 것은 그가 용맹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의 삶을 기초로 그를 용사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근거로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식도 없는 노인을 불러서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란 뜻을 가진 ‘아브라함’이라 부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사기꾼과 같은 야곱을 불러서 그의 이름을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삼으셨습니다. 주님은 갈대와 같은 시몬에게 ‘반석’이란 뜻을 가진 ‘베드로’란 이름을 주시고 그를 교회의 반석과 같은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그렇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소망의 실체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2. 풍성의 실체를 깨닫는 축복


  본문 18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이 구절에서 ‘그 기업’이란 ‘하나님의 기업’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기업이란 결국 성도를 뜻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풍성한 축복’이란 말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기업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큰 축복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이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 의식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점점 이 땅에서의 풍성한 축복도 받게 됩니다. 물론 살다 보면 때로 힘들 때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때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사람은 자칫 불평과 원망의 노예가 되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부모와 하나님까지 가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가난과 실패와 병을 다 남 탓으로 돌리면 삶이 더 불행해집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내게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중에 보면 어려움도 축복의 통로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련이 찾아오면 그 시련을 내 삶의 침입자라고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친구로 삼고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그 고난의 친구가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사실 환경이 좋아진다고 행복해지고 자유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지면 욕망과 욕심은 더욱 커지고, 신기하게도 우울함도 더욱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감옥에서 자살하는 사람보다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복은 좋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가난에 처할 줄 아는 것보다 풍부에 처할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분이 임종을 앞두고 유언했습니다. 자신의 관, 수의, 묘지 등을 최고로 준비하는데 총 재산 4억 원 중 2억 원을 쓰고, 묘지 주변에 고급 난초를 심는데 나머지 2억 원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은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돈이 많아도 잘 쓸 줄을 모르면 가난한 사람이지만 돈이 없어도 잘 쓸 줄 알면 풍성한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도 구원과 더불어 풍성한 꼴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부요한 마음을 가지고 “나는 풍성한 축복을 받는 존재다!”라고 생각하며 사십시오.


3. 능력의 실체를 깨닫는 축복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구절은 마음눈이 열리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그 능력의 실체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해서 2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가?”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능력’이라고 하면 어떤 인간적인 힘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했다.”는 말은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그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결국 주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20절).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어떤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하시고(21절),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고, 만물 위에 있는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22절).


  그 주님의 능력은 우리의 능력도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또한 그 부활의 생명력을 부분적으로 지금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축복과 능력을 얻으려면 항상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기쁘게 십자가를 짐으로 승리의 영광을 맛보며 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