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 이야기
우리 개가 저에게 오기 전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믿지 않고, 움찔거리며, 사나왔습니다.
그나마 저는 밥주는 사람이라 좀 낫다랄뿐, 우린 주인과 개, 이런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불러도 안오고, 언제나 무시하고. 밥 줘도 본체만체. 사료가 없어지는거 보니까 먹는가 보다.
똥 싸는거 보니 먹긴 먹는갑다.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결코 사람이 보는 데서 무엇인가 먹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납고, 민감해서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적이라고 알고 있는듯.
사람 지나가기만 해도 짖어대고 악을 써대고. 경찰이 두번 쯤 왔습니다.
갖다 버리라고 안하고, 해결책을 조언해주신 동네분들 감사드립니다. ㅠㅜ
5킬로도 안되는 개가 사납긴 얼마나 사나운지,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개룰 제압 못하니까, 의사샘님이 해주시면 좋으련만. 못하셨습니다..
결국 바람총인가까지 동원했는데 개가 하도 날래서 결국 못 맞췄지요.
마취약값만 반만 내고 왔네요.
그래. 진료도 못받는게 니 팔자려니 해라. 난 할만큼 했어. 그러다 병걸려 죽으면 다 니탓이다.
난 너 무서워서 손 못대겠어. 동물농장보면 맹수도 치료를 받는데, 왜 우리개는 안되지?
저게 무섭다 한들 맹수보다 무섭겠어? 도대체 저 조그만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거야?
그냥 그랬는데.......
어느날 개가 쓰러졌습니다.
막 토하고 그랬대요. 회사 조퇴하고 달려가보니 거의 늘어졌더군요.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축 늘어진 개는 반항도 안하니까, 피도 뽑고 했는데 심장사상충이래요.
왜 예방 안했냐고 그러시는데....왜 안했냐구요?
워낙 포악해서 병원 셋을 옮겨 다니도록 의사샘이 다 포기한 개라 검사를 못해서 못했지요.
치료를 뭘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까, 이미 치료 단계를 지났다 하더군요.
이 개는 오늘 내일 죽을거라고 합니다.
이미 체온이 내려가고 동공이 풀렸다고 합니다.
근데 온 몸에 타박상이 있다네요?
제가 살면서 개 때린적은 없었으니까 아마 저에게 오기 전에 누군가에게 맞았나봐요.
다리도 그래서 다소 기형이고, 맞았다 저절로 나은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구요.
그때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저게 무슨 개냐면. 5킬로짜리 잡종입니다.
아무도 이뻐해 주지 않을만큼 못생긴 개입니다.저게 어떻게 저에게 왔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이 개는 아무리 봐도 사랑받은 티가 보이지 않습니다.
잡종으로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맞으며 살다가, 결국 심장사상충으로 죽어간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굉장히 가슴 아팠습니다.
의사가 개 데리고 가라 하셨습니다.
병원에 있어도 할게 없다고요.
그래서 울면서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에구 불쌍한것. ㅠㅜ
제가 이 개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주워왔던 그 자리에 도로 버릴까. 내지는 안락사 시킬까 하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올뻔 한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예민하고 사람에게 마음의 문도 안 여는걸요.
너무 키우는게 힘들어서 누가 가져가주지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
티비에서 개과천선 나오면 우리개 어떻게 안되나.
하이디 나오는 거 보면서 우리 개 무슨 생각하며 사는지 좀 알고 싶어.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동물농장에 나오는 얌전한 개 키우는 사람이 엄청 부러웠습니다.
근데 죽는다니까 불쌍해서 막막 눈물이 나고. 그래, 가는 길이라도 조금 편히 가라.....하고 쓸어줬는데.
안죽더군요.
다음날 비틀비틀 일어나는거 같더니 다음날은 비틀비틀 물도 먹고, 참치캔을 뜯어줬더니 국물만 빨아먹더라구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만약.....살아난다면.돈 얼마 들든간에 내가 심장사상충 치료해 줄게.
그리고 개는 살았습니다.
근데 살았다랄뿐. 여전히 포악합니다.
지난번 이 개는 오늘 죽을거다. 라고 말해준 의사샘한테 데려갔는데 이제 기운 차린 개에겐 손을 못 대더라구요.
도무지 진료를 못할만큼 사나왔습니다.
저더러 주인이 제압하지 못하는 새를 어떻게 진료하란거냐! 하고 화냈어요.
덧붙여 심장사상충 치료약이 지금 한국에서 품절이라나?
이 동네 수의사샘들 다 포기했습니다.
저도 포기할라고 했지만, 그때 죽어갈때 한 약속이 있잖아요.
그래서 야후거기에서 동물병원 검색해서 쫙 뽑아놓고 1번부터 다 전화 걸었습니다.
심장사상충 약 있냐, 포악한 개 진료할 수 있냐.
그러다 결국 한 동물 병원에서 약 있다고 오케이 받았습니다.
워낙 포악한 개라 이동가방엔 들어가지도 않고, 차도 탈 수도 없어서 다른 구에 있는 먼 거린데도 걸어갔습니다.
과연 이 개를 의사샘이 치료할 수 있을까 걱정한게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난리 났습니다.
싸움 났습니다.
의사샘이랑 개랑 난리 난리 났습니다.
의사샘은 개를 제압하기 위해 이불을 들고 덮치고. 개는 죽는다고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난리나고.
의사샘님이 결국 개 머리를 짓누르는데 성공하고, 내가 입마개를 씌웠을 때에는 개가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이었습니다.
사람과 개가 이렇게 싸울 수 있다는 것, 저는 상상도 못해봤고, 믿을 수도 없어서 그저 아연이었습니다.
이게 이런 개였어?
그렇게 진료결과.... 심장사상충 아니라네요.
피뽑고, 현미경 검사하고, 화학검사까지 했는데 아니래요
그럼 우리 개는 왜 그때 죽어갔나요 하고 물어도 그건 모르겠대요.
어쨌든 심장사상충이 아닌건 좋은데 피부병이 있다는군요.
곰팡이도 세균도 아닌데, 뭔가 호르몬계통에 문제가 있다나? 장기치료가 필요하대요.
그래서 개의 치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후로도 병원 갈때마다 난리 났어요.
한번은 하도 먼 거리라 동생이 차로 데려다 줬는데 그때 하필 개랑 의사샘이랑 싸우면서 사방에 똥 뿌리고, 오줌 뿌리고.......
나야 내 개똥 뒤집어 쓴다지만 의사샘 까운에 바지에 똥 다 튄거 어째요
동생에게 똥 튄거 어째요. ㅠㅜ 덕분이 쇼크먹은 동생이 다신 안 데려다 준다는군요.
어쨌든 그런 치료를 계속 받으면서 간식은 금지.
으아...우리개랑 나 사이에 있지도 않은 신뢰가 다 무너질지도 몰라.
이렇게 일주일에 한번 병원 가면....
근데 점점 개랑 사이가 좋아지드라구요.
개가 내 앞에서 밥을 먹게 되었고. 내가 주는 약도 잘 먹어요.
여전히 부르면 온다던가 애교를 떤다던가 하진 않지만 만지게 한다던가, 내 앞에 앉아있는다던가 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내 방안으로 들어오진 않지만 방문 앞에서 털퍽 앉아있고.....
늘 그 위치에서 저를 보고 있군요.
신기하다?
돈이 한달에 16만원씩 들었습니다. - 이거 무슨 날벼락일까요
근데 돈 든 티가 납니다.
완전 망가져 있던 개가 점점 살아나고 있어요.
곰팡이 같은게 가득했던 귀도 깨끗해지고 있고.......
처음 얘를 봤을때 귀에 뭐가 붙었나? 하고 문지르다가 귀 피부가 툭 떨어져 나갔을때 받은 쇼크가 꽤 컸지요.
털도 나요.
빨갛던 배 피부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구요.
무엇보다도, 산책때 병든개 데리고 다닌다고 늘 조마조마 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웃어주는게 느껴집니다.
거기다가 가끔은 강아지가 예쁘다는 소리도 들어요.
와. 자신감!!!
거기다가 개랑 사이가 조금씩 좋아진 것 같고... 그리고 개도 조금 유순해 진거 같습니다.
여전히 사람 지나가면 막 짖어대지만, 이리오라고 하면 멈춥니다.
매일 산책 데리고 나가서 그런가. 사람들을 보며 공격태세를 취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의사샘도 그랬어요.
개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이제사 비로소 강아지의 눈빛이 되었다고.
그 전엔 강아지가 아니고 뭐였는데요?
그리고........
또 울었어요.
뭐에 울었냐면. 지난달에.....우리 개가 처음으로 의사샘님 품에 안겼어요 입마개 없이.
늘 거의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대고 그러던 개라.... 깜짝 놀라서 안절부절했어요
그러지 마세요. 샘님. 물려요. 우리 개 싸나와요.
근데 그 개가 의사샘님이 안아올리니까 그 품에 가만 있는거예요.
물론 긴장은 하지만....
그래도 나 너무 놀라서 입 딱 벌렸어요.
우리개가, 입마개 없이 사람에게 안겨 있다니. 믿을 수 없어.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눈물이 막 나더라구요.
그리고 지난주엔......또 의사샘님 품에 역시 안겨서 귀청소를 했습니다.
우리개 귀청소 엄청 싫어해서 한번도 못해봤어요.
사실 귀는 민감하잖아요.
근데 의사샘님이 귀청소가위에 솜을 찍어서 귀를 후비는데도 찡그리기만 하지 가만 있더라구요
뭐야. 얘 누구야.
이 개 누구네집 개야.
여전히 치료중이지만. 이제 주사는 안 맞게 되었어. 약만 먹어도 된답니다.
병원비가 조금 줄었어요. 약도 조금씩 줄여보자는군요.
간식으로 황태를 조금 주기 시작했는데, 완전 좋아하는군요.
완전 애교 떨고........너, 누구집 개니.
이제 같이 살만한거 같아요.
똥 오줌....은 맘에 안드는 곳에 싸지만, 그곳에만 싸니까 나름 대처방법이 생기고 있고.
집으로 들어오는 낮선 사람에게는 짖지만,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짖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산책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이 개는 사람을 좀 더 많이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에인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더라구요.
그 사람은 그냥 개의 애교에 귀엽다고 하고 있을 뿐이지만 가장 믿을 수 없던 사람은 저 였습니다.
이 개가 사람에게 애교를.....?
모르는 사람인데?
원래 이 개는 애교가 많은 성격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예뻐진 것도 있고....
물론 비싼 강아지처럼 귀티나거나 이쁘진 않다고 해도 말이예요.
의사샘님을 잘 만나니까 이런 일이 생기네요.
암튼 병원은 잘 선택하고 봐야 해요.
손, 발, 앉아 이런것은 모르지만 간식을 먹기 위해서는 앉아서 기다립니다.
놀이에 필요한 명령어는 모르는데 지시어는 제대로 압니다.
이리와. 저리가. 비켜. 안돼. 기다려.이런거요.
불쌍한 개라고 사정을 알아주고 중재해주신 착한 경찰 아저씨와
받아들여 걱정해주신 동네 분들과 좋은 의사선생님들.
이렇게 많은 분들의 좋으심에 맹수 하나가 개가 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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