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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상담 - 정태기) 제4장 위기 발전과정 2.

Joyfule 2005. 3. 16. 10:39
 
위기와 상담 - 정태기  
제4장 위기 발전과정 2.  
(2) 애통의 언어 
애통의 단계에 이르면 외출했던 혼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다. 
정신기능이 회복되면서 아픔의 사건을 하나 둘씩 제대로 직시하기 시작한다. 
이때 나타나는 언어는 자신의 아픔을 쏟아놓는 
울부짖음, 아우성, 하소연, 통곡, 불평 불만, 분노 등등 
사람에 따라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된다. 
애통의 단계에 들어서면 아픔을 자각하고, 이 아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이성과 감성이 뒤섞인 언어인 것이 다를 뿐이다.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상태이므로 
사리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회복되어 대화가 가능하다. 
자신이 처한 아픔의 사건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아픔의 사건에 끌려 다니는 피동자의 위치에서 
아픔의 상황을 조절하는 주동자의 위치로 바뀐다. 
애통의 단계가 건전하게 처리되고 성숙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통의 언어를 마음껏 토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자기에게 주어진 아픔을 
충분히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픔의 언어란 자신의 아픔을 울음으로, 노래로, 통성기도로, 
대화로 털어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람들은 애통의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식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위기를 만나면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전가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주위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평상시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에도 
쉽게 울분을 터뜨리는 경향이 있다. 
아픔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면 
병적인 상태가 건전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런 때를 상담에서는 '감정의 정화'(catharsis)라고 이야기한다. 
목회자는 교회의 모든 회중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책임이 너무 광범위해서 자칫 교인들의 감정처리의 표적이 되기 쉽다. 
억압된 감정은 그것이 죄책의 감정이든 분노의 감정이든 
성장과정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무의식 속에서 독버섯처럼 성장한다. 
이 독버섯은 성장한 성인의 정신, 신체 행동,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람들의 병적인 분노가 목회자를 타겟으로 삼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분노의 응어리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목회자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목사에 대한 반항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또 다른 욕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치유 상담이란 이런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일이다. 
이 작업은 인내와 깊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목회란 크고 작은 여러 위기로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목회자를 향해 때리는 매를 맞아주는 일이다. 
이 매가 무서워 맞지 않겠다는 사람은 목회자의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3) 변화 성장의 언어 
충격단계의 무감각의 언어가 애통의 단계에서 아픔의 언어로 변화해서 
아픈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나면 변화 성장의 언어가 나타난다. 
변화 성장의 언어는 시편13편의 후반부에 잘 나타나 있다. 
변화 성장의 언어는 이성의 기능이 회복된 
안정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언어이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을 처리하고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고난에 대처하는 능력도 그만큼 강화된다. 
이제는 상황 변화에 이끌려 가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고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변화 상황에 차질 없이 건전하게 대처하는 
성숙한 사람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다. 
3. 고난과 한국인의 심성 
우리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이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 백성들도 고난과 함께 살아야 했다. 
가슴에 맺힌 아픔을 고통의 언어로 발산할 수 없었던 우리 백성들은 
어려운 고통의 위기에서 그 아픔을 극복하고 
변화와 창조의 단계로 발전해 가는 힘을 기를 수 없었다. 
또한 고통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개발할 수 없었다. 
고통을 느끼고 처리할 만한 사고력이 결여되어 있을 때 
위기가 연달아 닥쳐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때 나온 것이 운명이나 팔자론이다. 
그래서 우리 백성은 생존을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로서 
자기부정, 억압, 퇴행, 도피, 체념등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발전하려는 적극적인 인간상이 아니고 
안으로 파고드는 소극적 인간상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인은 흔히, '타고 난 팔자'라는 말을 쓰는데, 
특히 의지의 힘으로 자신의 생애를 개척해 나가려는 노력이 
어떤 요인 때문에 수포로 돌아갈 때 잘 사용한다. 
아픔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며 운명이나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릴 때 
전개되는 심리상태는 무감각, 무감동,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아픔을 아픔의 언어를 가지고 표현하지 못하여 응어리 상태로 있을 때 
나타나는 심리상태도 병적인 무감각, 무감동, 냉담의 양태를 띈다. 
그렇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을 좀먹어 결국엔 
가슴앓이, 위궤양, 암 등 여러 가지 병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아픔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아픔을 쉽게 운명이나 
팔자 소관으로 돌려버리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심리적인 상태도 
무감각, 무감동, 무관심의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이 상태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다른 병적인 심리를 유발한다. 
가학증(Sadism)을 내포한 자학증이 그것이다. 
자학증이란 일방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오랫동안 상처만 받아 온 사람에게서 생기는 심리적인 특징으로, 
자기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증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할 수 있으면 약하게 보이고 
낮춤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나는 부족합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죄인이로소이다. 
나 같은 불초소생이…"라는 말들은 자학증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겸손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겸손이 아닌 자학증인 것이다. 
이런 자학증은 가학증을 동반하는데, 
다른 사람을 학대하려는 심리를 내포하고 있다. 
자학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힘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를 낮추어서 마음의 안정을 얻지만, 
자기보다 힘이 약한 자에게는 무자비하게 행동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굽실거리며 아부하는 자들은 형세가 바뀌면 
무자비하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애통의 단계에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위기에 처한 사람이 울부짖고 통곡하며 분노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다음의 변화와 성장의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아픔의 상황에서 울지 못하는 백성이나 민족은, 
다시 말해서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분노할 수 없는 사람이나 국민은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고난 앞에서 아픔의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삼켜 버리는 심성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통의 현장에서 아픔을 아프다고 외치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3.1 만세를 외치던 사람들, 광주학생운동 때의 젊은이들, 
4.19의 건각들, 5.18광주민주항쟁을 비롯해서 지금까지 
이 나라 이곳저곳에서 외치는 아픔의 소리들이 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이 수그러들다가도 애통의 단계에서 
아픔의 언어를 토할 줄 아는 자랑스러운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