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교사 데이빗 브레이너드
김홍만 (국제신대원, 역사신학)
교회사 속에서 가장 탁월하고, 감동적인 선교사를 든다면, 데이빗 브레이너드 (David Brainerd)를 제 1순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복음사역자들이 타 문화권으로 건너가서 사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음에도,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이다. 18세기에 그는 인디언에게 가서 사역을 하는 가운데 성령이 부어주시는 부흥을 경험하였고, 이로 인하여 인디언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다. 그가 병으로 사역을 오래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일기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에 의하여 편집되어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 책을 통하여 19~20세기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해외선교에 헌신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이후에 그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을 선교사로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 교회사 속에서 가장 탁월한 선교사인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신학에 대해서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의 선교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성장배경
브레이너드는 1718년 4월 20일 미국 코네티컷트 주의 하뎀에서 태어나 청교도 가정의 배경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은 청교도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영적인 것에 대해서 상당한 고민과 생각들을 한 것으로 보인다. 7, 8세에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였으며,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두려워하기도 하였다. 그는 청소년기를 지나서 20세에 이르기까지 외적 종교적 의무를 다하고 목회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는 아직 회심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1738년 초겨울, 그는 늘 하던 대로 기도하러 산책을 가고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리라는 생각에 압도되었다.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한 성령의 책망이 그의 영혼 위에 계속되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책망의 역사가 거의 1년 이상이나 지속되었고, 1739년 7월 12일 금요일에 드디어 자신의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서 용서받는 체험을 하였다. 브레이너드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 자신의 영혼에 비추어지는 것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회심의 체험으로 인하여 이제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신적인 것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님의 주권의 위대하심과 그의 능력의 강력함을 맛본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탁월함과 충족성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그것은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과 그 은혜의 무한하심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게 일어났다. 브레이너드는 이제부터 주를 높이려는 심령이 간절하였으며, 자신의 생애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예와 영광에 두었다. 그래서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전에 세웠던 계획을 버리고 이제부터 오직 구세주의 영광을 높이고자 하였다.
영적대각성의 체험
그가 예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740년에 조오지 휫필드가 와서 설교하였으며, 1741년에는 길버트 테넨트가 와서 설교하였다. 그들의 설교는 불과 같아서 많은 대학생들로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게 하였고, 이러한 영적 움직임 가운데 학생들이 크게 영적으로 각성하였으며, 회개가 일어났다. 이러한 은혜 속에 있으면서 대학에 와서 설교한 강사에 대해서 부주의한 말로 인하여 제적을 당하였다. 그에게는 어려운 시련들이었다. 이때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때까지 브레이너드는 인디언 선교에 대해서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 더욱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며, 영적 성장에 있어서 더욱 진보를 이루는 시기가 되었다. 그의 1742년 4월 27일자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인자하신 나의 주님, 인자하신 나의 주님, 하늘에서는 주 밖에 누가 나에게 있겠으며, 땅에서는 주님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없습니다. 내가 천 번을 산다고 하여도 나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위하여 천 번의 삶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단번에 드리겠습니다.
사역으로 부르심
1742년 7월 브레이너드는 장로교 목회자 협회로부터 교리들과 신앙의 체험에 대해서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한 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브레이너드는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인디언 부족들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인디언의 회심을 위해서 벌써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당시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면서 인디언에 대한 복음전도 사명이 더욱 분명하여 졌다. 바로 이 당시 장로교의 뉴욕노회의 목사인 에벤에젤 펨버튼이 브레이너드에게 편지를 보냈다. 일찍이 인디언 선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펨버튼이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한 문의였다. 1742년 11월 25일 브레이너드는 펨버튼과 그 협회의 사람들로부터 심사를 받았고, 인디언을 위한 선교사로 지명 받았다. 그리고 그해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1743년 봄부터 인디언 사역을 하기 위해서 준비하였다.
인디언 사역의 시작
1743년 4월 1일 브레이너드는 메사추세추 주의 카우나우미크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인디언을 위해서 일 년 동안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설교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브레이너드는 언어를 배웠으며, 시편의 일부분을 번역하였고, 인디언을 위한 학교도 시작하였다. 그는 사역에 앞서서 항상 기도하였는데,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숲에 들어가 기도와 묵상을 하였다. 1744년 5월 1일 카우나미크를 떠나서 델라에워 지역으로 옮겼다. 이 당시 카우나미크에는 백인들이 인디언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함으로 인디언들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5월말에 뉴왁으로 가서 목사 안수를 받을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744년 6월 11일 브레이너드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때 펨버튼이 설교하였는데, 이 설교는 그의 사역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펨버튼은 사도들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강권하라는 내용으로 설교하였다. 그리고 강권하는 것은, 인간이 본성상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라는 것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성령의 역사 가운데,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그들에게 죄의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죄인들로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죄에 대해서 주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영적으로 각성된 죄인들로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도록 만들어야 하며, 이때에도 복음 사역자들은 복음 안에 있는 용서와 위로를 잘 드러내야 하는데 이것이 복음 사역자의 의무라고 하였다. 펨버튼이 브레이너드의 목사 안수식에서의 설교는 그 당시 영적 대각성 가운데 전도자들의 설교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전문가들이었으며, 전도에 있어서 성령의 일하시는 원리에 대해서 정통해 있었던 자들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이제 목사 안수 받는 브레이너드에게 선교의 원리로 강조하였던 것이다. 안수를 받은 후에 브레이너드는 델라웨어 강을 중심으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광야에 흩어져 있는 양들을 찾아 나섰다. 이 당시 브레이너드의 기도는 인디언의 회심에 온통 초점을 두고 있었다. 단 한명의 회심을 위해서 그는 간절히 숲속에서 거의 날마다 기도하였다. 인디언들 가운데 우상 숭배와 마법을 행하는 자들과 무당들이 브레이너드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독살시킨다는 위협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브레이너드는 실망하지 않았으며, 인디언의 회심은 피조물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서 내려오는 능력에 의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렇게 1년 동안 델라웨어 지역에서 사역을 하였지만, 브레이너드는 단 한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파송해준 선교협회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내년까지 성공의 기미가 포이지 않는다면 사역을 포기할 것을 고려하였다.
'━━ 영성을 위한 ━━ > 신앙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마게도니아인, 이수정 (0) | 2018.08.04 |
---|---|
위대한 선교사 데이빗 브레이너드 (0) | 2018.08.03 |
존 레이(John Ray, 1627~1705) (0) | 2018.08.01 |
루터 연대표 (0) | 2018.07.31 |
존 레이(John Ray) - ‘종’의 개념을 명확하게 한 박물학의 아버지 (0) | 2018.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