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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스물여섯 가지 이유

Joyfule 2014. 10. 13. 08:54

 

 

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스물여섯 가지 이유

 

10. 기독교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구절을 들어 선지자 사무엘과 호세아가 신은 사람이 아니며 인자가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 23:1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삼상 15:2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호 11:9)

 

유대인들은 또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지적한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지식의 영과 하쉐임(하나님)을 경외할 것임을 예언했다(사 11:1∼3). 신은 유대인들에게 사랑과 경외의 대상이다. 경외란 개인의 행위를 규정짓는 신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유대인들은 “논리적으로 따져도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실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 무엇을 경외한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이사야의 예언 자체가 기독교인들의 주장, 즉 ‘예수=신’을 무너뜨린다고 유대인들은 설명한다.


인자라는 용어를 예로 들어보자. 유대교에서 인자는 유대 민족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출애굽시킬 때 이 용어를 이스라엘(유대 민족)에 대해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선지자 호세아 또한 유대 민족을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호 11:1)


유대인들은 기독교 성경에서도 인자라는 용어를 예수의 추종자들을 비롯, 유대 민족을 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또 인자라는 용어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그의 후손을 의미한다. 인자가 처음으로 사용된 곳은 시편 2편이다. 하나님께서 새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다윗왕을 통해 인자라는 용어는 왕의 칭호가 되었다. 인자라는 용어는 다윗 왕을 계승하는 이스라엘의 모든 왕과 그 후손에게 적용됐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겔 37: 24∼25)


유대교 입장에서 다윗의 자손 메시아는 신이 아니며 기름 부음을 받을 왕이다.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되기도 했다.


기독교의 반론 :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는 신의 영으로 잉태된 완전한 사람이자 메시아로 오신 신이다. 신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된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창세기를 포함한 구약의 예언은 성취됐다. 예수 또한 인자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때로는 이스라엘로, 때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또는 이스라엘 왕으로, 그리고 자신에 대해 사용했다. 이 때문에 인자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용어 해석은 피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돼 세상에 온 예수는 분명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었다.

 

11. 삼위일체론, 전통이 없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325년에 신으로 추대되었다고 조롱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이나 용어는 유대교 성경이나 기독교 성경 어디에도 없다. 유대인들은 “전도자들이 본문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삼위일체를 조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약간의 애매모호한 구절들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유대교의 관점은 다음과 같다. ‘초대 기독교에는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안이라 불리는 이방인 신자들의 큰 무리가 있었다. 아리안은 이집트 제사장인 아리우스(318∼355)가 주도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라고 믿지 않았다. 예수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낳은 유한한 선지자로 믿었다. 삼위일체론의 하나님과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은 동등하다고 믿지 않았다. 아마 에본인 또는 나사렛인으로 불리던 초대 기독교인들이 아리안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프랑스의 고트족은 4세기에 이교도에서 아리우스주의로 개종했다. 아리우스주의는 스페인과 피레네, 비지고트족의 지배하에 있던 남부 프랑스에 있었던 기독교의 두드러진 형태였다. 수에비족 롬바르드족 알렝족 반달족 버건디족 오스트로고트족 모두가 아리안이었다. 아리안들은 수세기 동안 초기 가톨릭교회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예수의 신분에 대한 논쟁은 이방인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325년에 표면화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터키의 니케아에서 예수의 위상을 결정하고자 교회 주교들을 소집했다. 그러면서 예수의 신격화를 지지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 그에게 예속된 지역의 종교들이 신인(神人) 숭배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믿고 ‘신인 예수’를 원했다. 주교들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기 위해서는 기독론이 로마에 받아들여져야 했기 때문에 황제의 뜻을 수용했다. 신인 예수 결정에 대한 최종 투표에서 218명이 찬성했으며 반대표는 단 2표에 그쳤다.


투표 후 예수의 신성에 투표하도록 압력을 받았던 주교 중 적어도 한 사람은 불신을 가졌고 투표를 번복하고자 황제를 설득하려고 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죽자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가 예수의 신성을 지지했던 교회의 지지자들을 추방했다. 360년까지 아리우스주의가 로마 기독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예수의 신분에 관한 신학적 논쟁은 계속되었으며 논쟁하던 기독교 주교들은 유배, 파문, 추방되거나 고문을 받고 죽어갔다. 이는 삼위일체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에서 가르치는 대로 사람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로 가득하게 됐다.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승천한 후에도 공중 권세 잡은 세력은 신을 믿는 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했다.

그런 가운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신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무리를 향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사람들 또한 변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므로 그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회의도 하고 표결을 했다. 그런 표결 과정에서도 믿는 자의 수가 압도적이었다는 것은 예수는 분명 신이며 메시아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12. 삼위일체는 우상이다

유대교에는 삼위일체 개념이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삼위일체를 이방적인 요소라고 폄하한다. 유대교에 따르면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불가분하시고 시공을 초월한다. 이 때문에 신은 몇 개의 위격이나 부분으로 나뉠 수 없다. 유대교인들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론은 신의 절대적 유일성과 단일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은 영원하고 무궁하며 불변한 반면 예수는 아이로 태어나 성인이 돼 죽었으므로 유한하며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서 “유한한 예수는 무한한 신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한 분’이신 하나님이 다른 존재 형태인 예수로 나타났다면 예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가 환상이었으므로 그의 고난과 죽음도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고통을 당했다면 신이 아닐 것이다. 그가 신이었다면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성부가 성자가 될 수 없다. 성령은 성부 또는 성자가 될 수 없다. 성부 혼자만으로 충분하다.”


유대교 신학 관점에서 삼위일체론은 유대교의 극단적인 유일신론과 부합되지 않는다. 삼위일체론은 유대인들에게는 우상 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와 이후의 칼케돈 회의에서 예수를 ‘참 신 중의 신’, ‘완전한 인간’으로 선포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신은 스스로 계시며 무한한 존재이나 인간은 유한하다. 유한자가 무한할 수 없으므로 기독교 신학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지지했던 삼위일체에 관한 기독론은 혼란만 초래했다고 강조한다. “삼위일체 기독론은 기독교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웠다. 4세기의 이방인 신학자들이 이방인 로마 황제와 관련해 교리 용어를 구술했기 때문에 비성경적 개념에 대한 신비감을 강요했을 뿐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시대가 되면 이방 나라들은 예수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포했던 것을 기억하라고 유대교는 강조한다.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기독교의 반론 :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신과 같은 분은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들도 이성 비이성 초이성 등으로 나눈다. 자연적인 것과 비자연적인 것, 그리고 초자연적인 것으로 나누면서 어찌 삼위일체를 이성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신을 아는 것은 신의 지극히 작은 미세한 부분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초이성적이며 초논리적이다. 또 초자연적이며 설명할 수 없는 신비 그 자체다. 초자연적인 것, 초이성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믿음으로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은혜를 받았던 노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