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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스물여섯 가지 이유

Joyfule 2014. 10. 15. 09:05

 

 

 

유대인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스물여섯 가지 이유

 

17. 기독교는 바울 종교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신의 종교가 아닌 바울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신약성경을 교묘하게 사용한다. 그들은 이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누가는 바울이 사도행전 15장과 21장에서 예수의 형제로 기독교 운동의 선두주자였던 야고보와 율법의 유효성 문제에 관해 갈등 관계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야고보는 율법을 전적으로 지지한 반면 바울은 강력하게 대항했다.” 또 유대교는 바울의 신학관이 왜곡된 성관(性觀)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유대교는 결혼 안에서의 성을 신성한 창조적 행위로 본 반면 바울은 결혼 안에서의 성을 정욕의 허용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예수가 ‘그 안에 살고 있다’는 것과 그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육체적 극단주의(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함)에서 영적 극단주의(그리스도가 그 안에 살고 있음)로 전환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밖에 바울은 예수를 실제로 알았던 제자들이 전파했던 복음과는 다른 것을 전했으며 바울은 예수의 사도로서 그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표적, 기사, 이적 등을 사용했다고 유대인들은 설명한다. 토라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어긴 유대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그들이 알지 못했던 신들을 향해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유대인에게는 사형에 처하게 했으므로 이는 큰 논쟁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유대교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바울이 언급한 모든 말이 이단적이 된다고 유대인들은 주장한다. 즉, 바울은 토라 전체에 매여 있은 유대인들과 7가지 노아의 율법에 매여 있는 이방인 모두에게 신의 율법과는 반대로 가르쳤다. 바울의 서신서들은 심히 왜곡됐으며 예수에 관한 기독론을 지지하기 위해 유대교 성경을 잘못 인용했다고 지적한다. 바울이 유대교 신학과 바리새파 신학의 기초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하고도 고의적으로 잘못 전파했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도덕적 기초를 나타내는 율법을 ‘은혜’로 대체해놓으며 토라 율법의 종료를 나타내는 ‘완성’을 예수에게로 돌렸다고 평가한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기독교의 반론 : 바울은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바울은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으로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부분적으로 알던 하나님 즉, 하나님의 3분의 1만을 알던 그가 예수를 만난 후 3분의 1을 더 알게 되고 그것을 믿게 하는 성령 하나님을 알게 돼 마침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게 됐다. 바울은 결코 예수를 만나 기독교를 창시한 것이 아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기 전 이미 예수를 전하는 운동은 전개되고 있었다.


또한 바울은 행위를 저버리고 믿음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보니 믿음이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선물을 받지 않은 사람은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행위에 앞서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결코 행위를 저버린 믿음을 가르치지 않았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 사랑의 빚진 자로 묘사하고 자신이 자신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18. 복음서는 역사 아니다

유대인들은 “서신서와 복음서들은 사건들을 실제로 목격해 기록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유대인들의 주장이다.


“복음서들이 역사적 사건들을 증언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저자들이 그것들을 기록할 당시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복음서들은 역사 문제에 있어 신빙성이 부족하다. 서신서는 바울과 야고보, 베드로 및 기타 사도들의 필명을 전하는 초대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들이 기록한 것이다. 주후 30∼36년 사이에 일어났다고 알려진 예수의 사후 20∼70년이 지난 뒤 기록된 것이다. 즉 서신서들은 예수의 어떤 말이나 이적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후의 만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등에 대해 말하지만 역사적이고 물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유대인들은 또 복음서들이 예수에 관한 믿을 만한 사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등은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공관복음서로 불린다.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애 중 역사적 사건들의 순서를 포함해 수많은 암시를 기록, 공관복음서와는 차이를 드러낸다. 가장 큰 차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짜와 관련이 있다.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인 유월절 전날에 일어났다고 기록한다. 이 때문에 유월절 의식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반면 공관복음서들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자체였다. 예수는 니산월 15일인 유월절 첫날의 다음날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예루살렘 밖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 중 첫 제자들을 선택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공관복음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 중 첫 제자들을 선택했다고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공생애 시작부터 그의 사명을 선포한 반면 마가복음은 제자들에게 예수의 사명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요한은 예수의 제자라고 언급돼 있지만 마가와 누가는 아니다. 즉,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 누가는 바울의 제자였다. 마가복음은 최초의 공관복음서이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660구절 중 600구절)의 약 90%를 인용하고 있다. 만일 마태가 진실로 예수의 제자였다면 마가복음을 인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반론 : 신약성경의 기록 연대를 문제 삼는 유대인의 주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유대인 자신들도 구약성경의 저자와 연대를 연구할 때 하나님이 가릴 필요가 있을 시는 가린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동 시대에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그들에게 서로 다른 메시지를 주셨다. 선지자들은 신이 영감을 주실 때 그들의 눈을 열어주어서 보게 한 것만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는 말씀을 기록한 사람이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섭리하는 하나님만 의뢰하라는 것이다.


신이 왜 이 말씀을 기록자로 하여금 기록하게 했는지 묵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21. 유다 배신 사건에 강한 의구심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한 가룟 유다의 배신 사건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는 복음서 안에서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대인들의 설명이다.


첫째, 유다가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가 타락시켰다고 주장한다(요 13:27, 눅 22:3). 반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유다의 배반을 사탄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막 14:10, 마 27:3∼10).


둘째, 복음서들은 유다가 예수를 배반한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뇌물을 제안했는가? 요한은 제자들 중 타락한 돈 궤 맡은 자로 표현한 유다(요 13:29)를 지목하지만 마태 마가 누가는 제사장(막 14:10, 마 27:3∼10, 눅 22:3)을 꼽는다.


셋째, 유다는 자살하기 전 예수를 배반한 것에 대해 후회했는가? 누가는 아니라고 했지만(행 1:22) 마태는 유다가 자살하기 전 회개했다고 기록했다(마 27:5).


넷째, 유다는 어디에서 죽었을까? 누가에 따르면 유다는 ‘피밭’에서 죽었다(행 1:15∼22). 반면 마태는 유다가 죽은 장소를 몰랐거나 드러내지 않았다(마 27:5).


다섯째, 유다가 죽은 장소라고 누가가 주장한 ‘피밭’을 누가 샀는가? 누가는 유다 자신이 샀다고 주장한 반면 마태는 제사장들이 샀다고 주장했다(행 1:18,마 27:7).


여섯째, ‘피밭’이란 무슨 뜻인가? 누가는 유다가 피 흘리며 죽은 것을 뜻한다고 했다(행 1:19). 마태는 그 땅을 구매하는데 사용된 피의 값을 뜻한다고 했다(마 27:8).


일곱째, 은전 30개 또는 7세겔, 은 10(세겔)개였는가? 마태는 제사장들이 유다에게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은 30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마태는 이를 소위 예레미아의 예언이라 했다(마 27:7∼10,렘 32:6∼9 인용). 그러나 예레미야는 마태의 주장처럼 은 30을 언급하지 않았다. 7세겔과 은 10개를 언급했을 뿐이다. 또 예레미야의 밭은 집을 짓고 포도원으로 사용할 밭이었다(렘 32:6∼15).


기독교의 반론 : 일상적인 시험의 근인은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동의라는 두 요소의 결합이다. 요한과 누가는 사탄의 유혹이란 측면을 강조하고 마가와 마태는 유다의 동의라는 측면을 강조했을 뿐이다.


그리고 뇌물에 대한 제안은 당사자간 합의로 이루어진 거래다. 따라서 유다와 제사장이 함께 값을 정한 것이다. 유다의 죽음은 목을 맨 것이다. 절벽 위 나무에서 목을 맨 뒤 예수가 돌아가실 당시 지진이 일어나 그 나무가 부러지면서 유다의 시체가 땅에 떨어져 창자가 터져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유다는 자살 전에 예수를 판 것을 후회했지만 진정한 회개는 아니었다. 후회하고 새롭게 삶의 태도를 바꿀 때 진정한 회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유다의 죽은 장소는 피밭인데 이는 유다의 돈으로 제사장들이 산 것이다. 유다가 피 흘려 죽은 것과 동시에 그 땅을 구매하는데 사용된 돈이 피의 값이란 점에서 그렇게 불린 것이다. 다소 난해한 점은 마태가 피밭을 은 30에 샀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라고 한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은 30을 주고 밭을 산 사람은 스가랴이다. 마태의 실수일까? 그러나 마태는 이 두 가지 예언적 사건들의 상징을 결합하면서 그 대표자로 예레미야를 언급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