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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학 핸드북 - 제3장 랍비유대교

Joyfule 2013. 11. 2. 09:33

 

 

 

유대학 핸드북 - 제3장 랍비유대교

 

 

3.2.     유대교의 간략한 역사

 

3.2.1. 고대 이스라엘 종교와 초기 유대교

 

타나크, 즉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신앙인들, 즉 아브라함, 모세,  다윗같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종교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고대 이스라엘 종교는 주전 931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이스라엘을 이루는 열 두 지파들 가운데 열 지파는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북왕국 즉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고, 나머지 두 지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왕국 즉 유다 왕국을 이루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1년 앗시리아에 멸망하면서 그 백성들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 졌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때 잃어 버린 열 지파(the Lost Ten Tribes)를 애석해 하며 그리워 한다.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누구와 혼혈을 이루었는지 하나님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들은 아마도 고대 이스라엘 종교를 곳곳에 심었을 것이다. 이슬람교 사상에 고대 이스라엘 종교 사상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중국 철학에도 그 비슷한 것이 들어 있지 않은가 호기심이 생길 때가 있다.

팔레스틴 지역의 나블루스에는 이른바 사마리아인들이 지금도 무리 지어 살면서 북이스라엘의 종교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나름의 토라 즉 사마리아 오경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한다. 한편, 남왕국 유다의 백성들은 주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독특한 계시 종교를 이루었다. 이 종교를 초기 유대교(Early Judaism)라고 부른다. 이 초기 유대교에서 구약 성경의 첫 다섯 책들인 모세 오경이 집대성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3.2.2. 마카비 이후부터 성전 멸망까지

 

초기 유대교는 셀뤼키드 헬라인들과 25년 동안 전쟁을 하면서 하누카의 기원(주전 164년)을 이룬 마카비 무리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마카비 전사(戰士)들은 하시딤이라고 자칭하는 경건한 무리들이었는데 나름의 신앙 수칙과 삶의 방법들을 고수했다. 하시딤은 메시야 신앙에 충만해 있었고 경전에 따라 무력도 불사하는 무리들이었다. 이 하시딤은 오늘날 이스라엘의 신비적 종교인들인 하시딤과는 관계가 없다. 하시딤은 후에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와 에세네파가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에게 저항했던 열심당,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인 나사렛파(노쯔림), 신비적인 치유파 등이 나타 나서 하시딤과는 별도의 유대교 계파를 이루었다.

사두개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사제 집단이었으며 귀족들이었다. 종교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개인적인 삶은 매우 정치적이었고 헬라 귀족을 동경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글로 기록된 토라만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토라를 엄격하게 실천했다. 성전과 그곳에서의 희생 제사가 사두개인들의 종교적인 삶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 이들은 소멸할 수 밖에 없었다.

 

바리새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글로 기록된 토라’ 뿐만 아니라 ‘말로 된 토라’도 주셨다고 주장했다. 말로 된 토라를 두번째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미+쉬나’라고 한다. 이들은 두 토라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충분히 훈련 받은 랍비들만 그것을 해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행동지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후 70년 로마 군인들이 성전을 파괴하여 유대인의 운명이 풍전등화 처럼 위급하게 되었을 때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인들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은 율법 학교(예시바)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오늘날의 랍비 유대교는 이 예시바를 통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에세네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종말을 고대하며 수행하는 신비적인 집단이었다. 초기 기독교는 에세네파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 파의 거주지는 고립된 곳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은 이들을 쉽게 찾아 내서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쿰란 지역이 주전 30년 경에 지진으로 초토화 되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쿰란은 당연히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초토화 된 것이다. 쿰란에서 발굴된 고문서들은 주전 150년부터 주후 5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에 따르면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 그리고 사도 바울은 에세네파였거나 적어도 관련을 맺었을 것이다. 열심당은 종교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 무력 집단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유대 광야 남쪽에 있는 맛사다에서 전멸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랐던 유대인들을 나사렛파라고 한다. 나사렛파는 핍박을 피해 동부 유럽으로 갔고 그곳을 거쳐 미대륙에 까지 갔다. 이들이 바로 메시아닉 쥬라고 일컬어 지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유대교 종파들 가운데서 지금까지 살아 남은 자들이 ‘랍비 유대교’를 이룬 바리새파와 메시아닉 쥬를 이룬 ‘나사렛파’라고 할 수 있다. 나사렛파는 헬라인들에게 복음 선교의 주도권을 내어 준 이후 지금까지 저들 나름의 길을 걸어 왔다. 메시아닉 쥬를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해서 만든 유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이것은 상당한 무지에 속한다.

 

3.2.3. 중세 카라이트와 동유럽의 하시딤

 

주후 9세기에 미쉬나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을 ‘카라이트’라고 한다. 카라아트는 ‘성경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미쉬나와 그 주석인 탈무드를 무시한다. 그러므로 탈무드를 중시하는 랍비 유대교와는 구별 된다. 카라이트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중요시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 한다. 이들은 미쉬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감이 서린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랍비들의 해석을 무시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탈무드는 오로지 현자들의 견해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책이다. 카라이트는 안식일에 불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지낸다는 습관으로 유명하다.

 

1700년대에 동유럽에서 랍비 유대교의 한 분파가 일어났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들은 ‘하시딤’으로 알려져 있다. 마카비 시대의 하시딤과는 관련이 없다. 동유럽의 하시딤은 매우 급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미트나그딤(반대자들)이 많고 그들의 도전을 수시로 받고 있다. 하시딤과 미트나그딤의 주장은 오늘날 유대교 안에서 자유주의적이며 근대적인 유대교를 빚어냈다. 정통파와 자유파도 하시딤의 가르침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