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그리워만 할 뿐이다 - 이문재
오늘 하루도 영 정갈하지 못하다
어제는 불길했고 또 그저께는 서툴렀다
가끔 계절이라는 것이 이 도시를 들렀다 간다
신기하다 나른해본 지도 오랜만이다
피곤으로 단단해지는 퇴적암들 나이에는
다들 금이 가 있다
비둘기 수백 마리가 16차선 도로를 가득 채우며 낮게 난다
새들도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버린 성냥불 때문에 혹은 켜놓고 나온 컴퓨터 때문에
회사가 불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면 잠이 안 온다
온갖 죽음의 아가리들이 도처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게 보인다
퇴근길에 한 발짝도 떼어놓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박모가 살얼음처럼 깔리고
갑자기 내가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어진다
옛날에 배가 자주 고프던 시절에
온몸을 활짝 펴고 햇빛 안으로 들어가 누운 적이 있었다
마치 내 몸에 엽록소가 있다는 듯이
마치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여름날 오전의 야외 식탁 같은 게 차려져 있다는 듯이 말이다
살이 많이 익었었다
시간에게 정갈하고 싶었다 세련되고 싶었다
내 유전자는 그리워하는 정보밖에는 가진 게 없다
아주 가끔 죽음처럼 옛날을 떠올리게 되는 아픈 날이면
유전자들이 모여 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먼 반딧불이 우는 소리 말이다
그럴 때는 살아 있다는 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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