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이사야(1) 예언의 목적

Joyfule 2009. 6. 5. 06:58

이사야(1) 예언의 목적

이사야 1장 1절


< 이사야 개관 >


  이사야는 선지자들의 왕으로 여겨지고, 이사야서는 ‘축소된 성경전서’라고 불립니다. 이사야는 총 신구약 성경 권수와 같은 총 66장으로 이뤄졌고, 두 부분으로 명쾌하게 나눠집니다. 전반부 1-39장은 구약성경의 권수와 같은 39장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하고 있고, 후반부 40-66장은 신양성경의 권수와 같은 27장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위로를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반부 1-39장은 이사야가 직접 경험한 사건으로 바벨론에 의한 멸망 이전에 유다를 정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후반부 40-66장은 바벨론에 의한 멸망 후에 남은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온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 27장은 구약의 신약부분이라 불리고 그 중심에 이샤야 53장이 있는데, 그 장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가장 위대한 구약의 예언이 나옵니다.


  이사야의 저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사야가 이사야를 모두 기록했다고 믿지만 자유주의 학자들은 전반부 1-39장과 후반부 40-66장은 문체와 신학적 개념이 달라 적어도 2명 이상의 저자가 기록했다고 믿습니다.


  이사야 44장 28절과 45장 1절을 보면 고레스라는 이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고레스의 이름을 내세워 2명 이상의 저작설을 주장합니다. 고레스는 이사야보다 150년 이후에 살았던 바사 왕이니까 이사야가 고레스의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주의 학자들은 그 이름이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것으로 믿습니다.


< 이사야의 사역기간 >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때는 웃시야 왕의 통치기간 마지막 해였습니다. 웃시야는 주전 739년에 죽었기에 이사야의 사역은 대략 주전 740년에 시작되었고, 이사야 37장 38절에는 앗수르의 통치자 산헤립의 죽음을 언급하는데 산헤립의 죽음이 주전 681년에 있었기에 이사야의 사역은 대략 주전 680년에 끝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기간은 주전 740년에서 주전 680년까지 약 60년입니다.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대의 왕은 누구입니까?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이 구절에는 이사야가 사역할 때 있었던 4명의 왕이 언급됩니다.


  첫째,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유다의 영토를 확장했고, 둘째 요담 왕은 부친 웃시야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받았습니다.


  셋째, 아하스 왕은 부친 요담과는 달리 여호와의 길을 따르지 않고, 친 앗수르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아하스는 바알의 우상을 만들고, 힌놈의 골짜기에서 어린이를 희생으로 드렸으며, 의도적으로 성전도구들을 상하게 했고, 성전 문을 폐쇄해 백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임의로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또한 군사적으로는 에돔의 반역을 경험하여 남쪽의 중요한 무역로를 잃었고 블레셋에게 일부 성읍을 정복당하기도 했습니다.


  넷째, 히스기야 왕은 반 앗수르주의자로서 하나님 앞에 순종한 가장 뛰어난 유다 왕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을 때 성전 문은 다시 열렸고, 거짓 제단과 우상들이 제거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 시대는 광범위한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주전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해서 완충지가 없어져 위협을 느낀 유다는 반 앗수르 국가동맹에 참여했습니다. 그 동맹의 주동국가는 두로였는데, 그 동맹으로 인해 분노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두로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두로 왕은 키프로스로 도망쳤습니다. 그 다음에 산헤립을 방향을 남으로 돌려 유다의 국경으로 쳐들어 왔는데 그 장면이 이사야 36-37장에도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산헤립이 라기스를 점령하자 히스기야는 그에게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래도 산헤립이 계속 예루살렘을 위협하자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자문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간청에 응답해서 유다를 도우셨는데 첫째 도움은 애굽의 도움의 형태를 띠었으며, 둘째 도움은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의 앗수르 군대의 멸망을 통해 왔습니다. 그러자 산헤립은 즉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본문 1절에는 이사야가 사역하던 시대의 4명의 왕이 나오지만 이사야가 죽은 때는 히스기야의 다음 왕인이 므낫세 왕 때입니다. 므낫세 왕은 아버지 히스기야 왕과는 달리 악한 길로 들어서서 히스기야가 파괴한 우상들을 다시 세웠고, 전국에 바알 제단을 다시 설치했으며, 암몬의 몰록신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자들을 죽임으로서 무죄한 피를 흘렸는데 이사야도 그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이사야의 정체와 역사적 배경 >


  이사야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이사야는 자신이 아모스(예언자 아모스가 아님)의 아들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여선지자 네비아와 결혼하여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이사야는 흔히 ‘왕 선지자’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능력 있는 사역을 펼쳤기 때문이고, 특별히 그의 계시에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왕궁을 쉽게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왕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사야의 부친인 아모스는 웃시야의 부친인 아마샤와 형제였기에 이사야는 웃시야 왕과 사촌 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때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솔로몬이 사후, 이스라엘은 10지파로 이뤄진 북 이스라엘과 2지파로 이뤄진 남 유다로 분단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고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는데, 이사야는 남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사역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할 당시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은 앗수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들은 반 앗수르 동맹을 맺었지만 유다는 그 동맹에서 빠졌습니다. 그래서 수리아와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해 강제로 유다를 반 앗수르 동맹에 가입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도우심 대신 앗수르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격이었습니다.


  앗수르는 “이때다!” 하고 북 이스라엘을 침공해 주전 722년에 그들을 멸망시켰고, 동시에 남 유다까지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도우심을 신뢰하라고 했지만 많은 무리들은 애굽의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결국 애굽이 앗수르를 물리쳤지만 다시 애굽은 바벨론에게 패망했고, 애굽과 동맹했던 유다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그런 역사적 상황을 조망한 이사야는 이사야서 전반부에서는 앗수르를 조심하라고 충고했고, 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바벨론에서 귀환할 백성들을 위로하는 메시지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망적인 환경에서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지를 도전하는 예언의 말씀을 줍니다.


< 예언의 목적 >


  우리는 여기서 예언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언은 역사와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실천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언 자체에 너무 집착하고, 심지어는 계획을 세우고 저축을 하고 보험에 드는 것을 신앙이 없는 행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언은 미래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정제가 아닙니다. 현재의 땀을 외면하면 현세와 역사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미래의 예언은 현재의 행동에 대한 요청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재앙을 선포하고, 그 선포를 듣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내리시기로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그런 변화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도 그것이 삶과 행위에 변화의 동기를 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예고(fore-telling)’일 뿐만 아니라 ‘현재 이곳을 향한 선포(forth-telling)’입니다. 즉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조망이기도 하지만 역사의식을 가진 통찰력으로 당시대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문제를 파헤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식을 가지고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변화의 의지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번 이사야 강해를 통해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설교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