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이사야(2) 남겨두신 은혜

Joyfule 2009. 6. 6. 00:33

이사야(2) 남겨두신 은혜

성경 : 이사야 1장 2-9절


< 유다 백성들의 죄악 >


  이사야의 예언의 시작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고발로 시작됩니다. 1장 1절에서 간단히 서론을 마치고 바로 고발로 들어가는데 그 고발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의 죄를 비교할 때 이방인들과 비교할 수도 있지만 짐승들과 비교함으로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사실 사람은 짐승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짐승들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사람들보다 더 큰 인정을 보입니다. 짐승들은 비록 미련하지만 주인들에게 복종할 줄 압니다. 짐승들은 생명이나 힘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이상을 먹거나 마시지 않지만 사람들은 배에 마구 퍼 넣고 자기 몸을 망칩니다. 그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법과 순리의 법을 너무 잘 깨뜨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짐승들은 이성과 판단력은 없지만 교육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짐승은 최소한 자기를 먹여주는 주인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매일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니 짐승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는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심령이 없는 것입니다. 때때로 교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채워줄 말씀의 양식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말씀을 먹을 만한 심령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 구절에서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우습게 여기고 가볍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 타락의 결과 >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본문 6-9절 말씀에는 그 결과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첫째, 정신과 마음도 병들게 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영적인 병은 정신의 병과 마음의 병을 초래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성공과 소유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육체도 병들게 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영적인 병은 육신의 병까지 초래하고 그 병은 잘 치유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영혼이 잘되면 마음과 몸도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병들었을 때는 무엇보다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셋째, 환경도 병들게 됩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


  이 비참한 상황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멀리하는 영적인 병자로 말미암아 그가 속한 땅까지도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은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고 그러한 병자들로 구성된 사회와 지역도 역시 병들게 됩니다. 내 영혼이 건강하면 가정과 교회도 건강하게 되고, 내 영혼이 병들면 가정과 교회도 병들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는 “내가 변하자!”고 새롭게 다짐할 때입니다.


< 남겨두신 은혜 >


  그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고 죄의 보응을 받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갚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남겨주시고 우리의 소유의 일부분을 남겨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행위대로 징계하시다면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고,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를 징계하신다면 우리도 영원히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남겨놓으시고, 죄악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하면 매를 들지만 매 맞은 후에 울다가 잠들면 시퍼렇게 멍든 자국을 어루만지며 가슴 아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이 속 썩이면 나가 죽으라고 했다가 일단 가출하면 “다 용서할 테니 돌아오라!”고 울면서 사방으로 찾아다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처럼 야단치고 우는 부모의 마음이 징계 중에서도 은혜를 남겨두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치리하지만 회개할 기회와 회복의 기회는 남겨두십니다. 그처럼 항상 절망 중에도 희망을 남겨두시는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음은/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이 되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가슴은/ 독생자 주셨건만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원망할 때.” 사람이 보이는 성공은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보이는 성공이 없다고 불평하면 하나님은 크게 아파하십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래도 지속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가죽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징표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 안에서 따스한 사랑의 기쁨과 감사를 느끼며 살듯이 아담과 하와도 추방은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지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남겨두신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희망입니까? 본문 9절에 나오는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이라는 엄청난 선언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사야 첫 부분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추상같은 규탄 속에서도 하나님의 남겨두신 은혜는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를 든 다음에는 반드시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부모가 매를 댈 때 두 종류의 아이가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때리려고 시늉만 해도 벌써 곧 잘못했다고 합니다. 우리 둘째 아이 한나가 어렸을 때 그랬습니다. 그래서 거의 맞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아이는 고집이 세서 때려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더 맞게 됩니다.


  나중에는 부모가 목소리가 쉴 정도로 아이에게 호소합니다. “얘들아! 제발 잘못했다고 해라. 잘못했지?”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에 불이 붙습니까? 그래서 본문 5 말씀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고 말합니다. 아무리 때려도 돌아오지 않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니까 때리던 부모가 지쳐서 제발 더 맞지 않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난과 위기를 허락하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고, 고난과 위기 중에도 항상 은혜를 남겨두십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축복 받은 사실인지 모릅니다. 철학이나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살아야 얘기는 이어지고 그 다음 과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그 목숨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그 생명에 대한 바른 사랑의 감격을 가지고 매 순간을 감격하며 살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감사하며 사십시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근심할 일은 하나도 없고 오직 기뻐할 일 뿐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남겨두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사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설교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