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목회정보 2000" 사이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슬람이란 무엇인가
종교와 세속을 포괄한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며, 또 무하마드는 이슬람의 창시자가 아니다. 이런 말이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이단적인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은 교조주의적인 이슬람 학자나 이슬람 개혁자가 교의의 기본적 성격으로서 주창하는 말과 별로 유리되어 있지 않다. 즉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다. 사람들이 곡해하는 바와 같이 개인의 생활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 이슬람은 인간이 완전하게 사는 방법이고 인간 존재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것이다. 이슬람은 세상만사에 걸친, 즉 개인 생활에서부터 사회, 물질, 도덕, 경제, 정치, 법률, 문화, 국가, 국제문제에 이르는 안내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이슬람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으로서 다른 <고등종교>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특정 짓기 위해서 이슬람교도이건, 이슬람교도가 아니건 숱하게 거듭해서 강조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구태여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다는 따위의 말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겠다.
이슬람은 종교, 세속 쌍방에 걸쳐 전적으로 합일된 생활방식이며, 신앙이 자세임과 동시에 예배의 방법이고, 거대하며 완전한 법체계이며 문화, 문명 그 자체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경제 제도이며 상업의 방법이며 정체이며 통치의 방법이다. 그것은 특수한 하나의 사회인 것이며, 가족생활의 방법임과 동시에 상속, 이혼, 의복, 식사, 위생 등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세속, 초속양면에 있어서의 정신적 전체성이고 인간의 전체성이다.
그 당연한 귀결로서 이슬람에 있어서는 종교와 정치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매우 강렬한 개성을 가진 카다피대령 (리비아 혁명의 지도자)이 아무리 특이한 정책이나 견해를 세웠다 한들 그는 완전한 이슬람 정통파일 따름이며 그는 "종교적 자각과 정치적 결정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의 수상이던 즈르피칼 부토가 아무리 당돌한 정치적 결정을 단행했다 해도 그리고 성실하고 공정한 성명을 발표했다 해도 그가 "예언자 무하마드의 삶의 방식, 가르침은 우리나라 외교정책, 토지, 노동, 교육이나 그 밖의 많은 개혁의 초석이 되어 있다"고 이슬람 제국 수뇌회의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제나 다름없이 이슬람의 상투적인 정치적 발언을 되풀이 한 데 불과하다.
이와 같이 전 인구의 다수가 이슬람교도인 국가에 있어서는, 정치는 바로 이슬람의 정치다. 정치를 세속의 일이라 하여 종교와 분리하는 나라는 이슬람 국가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투적 이슬람」이 오랜 역사의 과거만이 아니고 긴 장래를 가질 수 있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장래는, 모슬렘 다수파의 나라에서 아직도 「코란」의 가르침이나 이슬람 교전에 접근해 있지 않은 나라가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되어 갈 것이다.
최후의 예언자 무하마드
이슬람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일으킨 새로운 신앙은 아니다. 어떤 이슬람 개혁자가 말했던 것처럼 「이슬람이란, 무하마드가 최초로 이름을 붙인 신흥종교의 명칭은 아니다. 그러므로 무하마드가 이슬람의 창시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무하마드는 전임자들의 신앙을 되풀이하는 최후의 예언자임을 믿고 있을 뿐이다.
몇 개 국어로 번역된 무하마드의 삶의 방식, 가르침에 관한 문헌이 나와 있으니까 우리는 그에 대한 윤곽쯤은 알아볼 수가 있다. 무하마드는 고아로 자랐다. 30대에는 종교, 상업의 중심지인 메카에서 상인으로 일단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신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무하마드에게 계시한 가르침을 전파하도록 했는데 메카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는 622년 -이슬람력으로는 이 해가 기원이 된다-소수 지지자와 함께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 메디나 사람들의 초청에 응하여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를 '히지라'(성천)라고 부르는데 메디나로 성천한 후 무하마드는 10년 사이에 새로운 이슬람 공동체를 조직하여 그것을 강화했다. 메카에서 적의 공격을 물리친 그는 전쟁과 외교적 수완으로 아라비아의 광범한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쥐게 된 그는 마침내 승리자, 통치자로서의 충분한 힘을 얻어 가지고 메카로 개선했다. 만년에 가서 그는 중앙 및 서부 아랍을 접하는 전 지역의, 문자 그대로 영주였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시리아, 이라크에 이르는 북방 내지 북동 방으로 군사공격을 일삼았다.
무하마드 개인에 대해서 말한 자세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무래도 「신의사도」라는 가르침이 전면에 강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의 키는 평균적인 신장이었고 완강한 체구의 소유자였으며, 매부리코와 크고 검은 눈동자,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은 짙었고 입이 컸다.
그는 항상 당당했고, 걸음걸이는 내리막길을 뛰어가 듯이 급했으며 남들이 따라가기는 힘에 겨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뒤를 돌아볼 때는 얼굴이 아니고 몸 전체로 뒤를 보았다.
그는 결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빠른 어조로 빈틈없는 말을 했다. 여자나 아이들에게 다정했고 동물을 사랑했다. 향수를 좋아했고 양파나 마늘 따위 냄새를 풍기는 것에는 얼굴을 찌푸렸다. 특히 모스크에서 예배 보는 사람들의 입 냄새를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자기 감정을 참고 누를 수가 있었다.
무하마드는 분명히 개인으로서의 자기와 예언자로서의 자기를 구별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오. 신이 나에게 계시한 일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나를 따라야 하지만 당신들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소. 그러므로 당신들 자신에 대한 나의 견해가 당신들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그가 아브라함, 모세, 그리스도 등과 같은 예언자에 이어서 최후의 예언자로서의 위치에 놓여진 이래로 그의 지위와 그의 가르침에 의한 신앙은 유일신, 최후의 심판과 함께 이슬람교의 3가지 기본적 신앙의 하나로 되어있다.
필연적으로 개인으로서의 무하마드의 자세와 예언자로서의 역할은 동일시되고 말았다. 무하마드가 살아간 방식은,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모범으로 받아들여졌고, 신심이 깊은 이슬람교도에 있어서는 무하마드는 완전무결한 존재인 것이다. 그가 비판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우상숭배를 금한 그의 가르침 그대로 그의 초상화가 그려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