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목회정보 2000" 사이트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이슬람이란 무엇인가
코란은 「성서」가 아니다
코란은 결코 무하마드에 의해서 씌어진 성전이 아니다. 「코란」이라는 말의 뜻은 「읽는다」는 것이고,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신이 무하마드에게 계시한 말을 그가 읽었던 것이다.
근대 이슬람 학자로서 뛰어난 사상가인 퍼즐러 라프맨은 코란에 대해서 「순수하게 신성한 말씀이며, 신이 예언자 무하마드의 마음 속 깊이 말하신 말씀이다. 그 성스러운 말씀은 예언자의 마음을 통해서 솟아난 것이지만, 예언자 자신은 한낱 인간일 따름이고 신성한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란이 아무리 신성한 것이라 하지만 그것이 「성서」일 수는 없다. 그 말씀 자체가 신성한 것이고 신격의 일부분이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있는 이집트의 이슬람 개혁자 아브두는 「코란은 창조된 것이다」라고 그의 문헌에 써 놓았다.
동양학자 W.캔드엘 스미드는 「이슬람에 있어서의 코란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바이블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코란이 성스러운 가치를 가졌음으로 해서 가장 빛나는 아랍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금세기까지 엄중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30년에 케말 아타튜르크가 감히 그것을 시도하여 터키어로 공식 번역하는 추진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아무도 그런 일을 맡아 주겠다는 사람이 없음을 알았다.
단지 문학적 견지에서 코란을 말하자면 코란은 아랍어로 된 최고의 작품이다. 코란은 갖가지 길이의 114스라 (장)로 구성된 것인데, 정신적 내용이나 언어상으로도 가지가지 뜻이 깃들어 있다.
무하마드는 글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자신이 붓을 들어 그것을 쓴 일은 없었다. 최종적인 집록은 그의 후계자 손으로 이뤄진 것이었는데, 무하마드의 사후 12년이 지나 제3대째의 후계자에 의해서 완성을 보았다. 그러한 시간적 지체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규범인 원전은 무하마드의 정신과 시간의 흐름을 충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코란에 관해서는 이슬람교도가 아닌 이슬람 연구가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일반적으로 합의되고 있다. 즉 코란의 각 장은 거의 연대순으로 재편성된 것이고, 초기 메카 시대의 장과 후기 메디나 시대의 장 사이에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초기 것은 짧으면서 힘차고 종교적 계시로서 약동 적인 정신이 넘쳤으며 세속을 초월한 것이다. 그런데 후기의 것은 길면서 자상한 산문조의 문장이고 세속적이다. 메카 시대의 장은 경고자의 계시이고, 메디나 시대의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서의 계시이다. 무하마드가 약 70명 내지 100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메카에서 메디나로 천도한 후, 그는 자기 자신이 아주 급속히 성장된 '운마'(공동체)의 장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때문에 메디나 시대의 계시가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다.
그는 급속히 발달하는 공동체를 다스려야 했으므로 법률을 제정했다. 이때의 무하마드는 단순한 예언자는 아니었다. 그는 군인이었고-실제로 초기 전투에서는 그 자신이 얼굴에 부상을 입기도 했으며 적어도 1명의 적병을 죽였다고도 한다-, 재상이기도 했었다. 그는 전쟁도 했지만 평화도 이룩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기막히게 가정적인 남자였다고도 한다.
기본적인 교의 「이슬람의 다섯 기둥」
무하마드는 소박하기보다는 차라리 야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베드윈(유목민)사회를 건설함에 있어서 5가지 기본적인 종교상의 의무를 정했다. 그것을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하는데
①신앙의 고백
②'자카드'(의무적인 회사로 내는 세금)
③1일 5회의 예배
④단식의 달을 이행할 것
⑤'핫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메카 순례 등이다.
신앙의 고백은 세계의 어떤 종교의 경을 외우는 것보다도 짧고 간소하다-「신은 하나이니라. 무하마드는 신의 사도이니라.」
이런 고백의 말은 이슬람교에 귀의하려는 자 모두가 외쳐야한다. 자카드는 단순히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만이 아니고, 메디나 시대에 있어서 수입원이 부족했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전리품이 모아질 때까지의 아주 중요한 재원이었다. 이슬람법은 자마드를 얼마쯤 징수한다는 세세한 문제까지를 정해 놓고 있었는데 우리가 여기서 그 세액을 산출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유목민족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화로 21디나로 또는 은화로 200디르함 이상을 소유한 자는 5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일정한 과세 평가법칙이 있었고 근년에 와서 자카드는 이슬람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일 5회의 예배는(원래는 3회였다는 증거도 있다고 한다) 예배자의 마음을 24시간 신에게 향하게 한다는 의미 이외에 실제생활 면에서도 효과가 있다. 즉 예배자는 예배 전에 정해진 청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얼굴, 손,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예배는 메카 쪽을 향해서 하는 것이데(최초에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였다는데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전통을 믿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1일 5회를 그런 예배를 하고 보면, 몇 억 명이나 되는 이슬람교도가 지구상의 동일지점을 향해서 예배를 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은 단일사회의 단일행동과 똑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상징적인 것이 1년에 1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메카 순례인데 그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자기억제, 금욕으로서의 단식은 많은 종교에서 정신적인 미덕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있다. 라마단(단식의 달) 중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사이에 식사, 수분의 섭취, 성교는 금지되어 있고, 최근에는 흡연도 금지된다. 더운 나라에서 라마단이 한여름에 실시될 때에는(이슬람력은 태양력보다 1년이 10일 내지 11일 적다) 물을 마시는 일이 금지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시련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고, 야간에는 음식도 취할 수 있으며 라마단에 쓰이는 특별한 음료수와 과자가 있다. 보통 주간의 단식에서 잃은 영양분 이상의 것을 야간 식사에서 보충하는 경우도 많다. 이슬람의 단식은 유복한 자에게 굶주림의 괴로움과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슬람교도의 종교생활사의 토대는 이렇듯 간소하면서도 엄격한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 의해서 굳혀져 왔다. 무하마드는 또 메디나의 장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인간의 통치방법을 정했다. 그러나 코란의 전체 6천절 중 겨우 5백 내지 6백 절을 가르치는 메디나의 장만으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