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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下野, 사실상 품격있어

Joyfule 2020. 6. 1. 22:09
이승만 대통령의 下野, 사실상 품격있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아름답고 거룩한 하야(下野)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그 인물이 한나라를 건국한 인물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더구나 그 건국이 그 한 개인의 필생의 염원이 구체화된 것이었으나 그 퇴장이 축복받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외롭게 일생을 마감하여야 하고 종국에 그가 사랑한 국민으로부터 잊혀지게 되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승만 박사는 양년대군의 16대 손이면서도 일찍이 자유와 평등을 기본적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입각한 국가건설을 염원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미국과 같은 동양 최초의 기독교 민주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가 29세 되던 해에 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은 로크의 철학서나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비견할 만한 철학서며 전략서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는 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외교를 잘 해야 하며, 나라의 주권을 소중히 여기고 도덕적 의무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고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집 종이나 다른 사람들의 하인 또는 천하게 여기는 부녀자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존중해야 한다. 법 앞에서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서 그들을 모두 다 평등하게 대하여 그들이 자립심을 가지고 각자의 일을 하는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는 기독교 입국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가 쓰러진데서 일어나려 하며 썩은 곳에서 싹을 틔우고자 애쓰고 있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와 접촉할지라도 참된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기 자신 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가 영국과 미국처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민족이 독립을 잃게 된 것은 지배계층이 무능하였기 때문이나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실력을 배양하여 자유를 지킬 수 있게 됨으로써 나라가 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교육입국을 주창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평생을 교육자로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교가 중요하며 영토적 야심이없는 미국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믿었으며 이를 위해 일생을 통해 노력하였다. 그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한국을 포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882년에 맺은 수호조약에 근거한 미국의 지원을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1953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게 되었으며, 이로써 대륙문명에서 벗어나 해양문명에 편입되는 전략적 목표를 성취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단 5년 만에 조지 워싱턴 대학, 하바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을 다니면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였으며, 윌슨 대통령과 친하고 미국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인사였으나 평생 미국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지냈다.

그는 평생 한민족이 자치능력이 있으며 해방이 되면 반드시 독립국가로 독립하여야 한다는 것을 열강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독립이 언급되게 되었다. 그는 또한 공산주의가 옳지 못한 이념이란 것을 확신하였으며 나라의 기초가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반공 신념을 모든 불리한 여건에서도 지켰다.

그는 해방이 되었을 때 소련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특히 좌우합작 세력의 집요한 건국방해를 극복하고 자유민주체제에 입각한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그는 건국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만 싸운 것이 아니라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미국과도 투쟁하여야 하였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오로지 이승만이라는 위인의 개인적 이상과 노력에 의해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미군이 철수한 기회를 틈 타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군이 남침하여 국가를 잃을 뻔한 위기를 한미동맹을 맺는 기회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북한의 공산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국내의 친북좌익세력의 끈질긴 반국가활동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급기야 1960년의 부정선거를 낳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한 인간의 인격은 그가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 인간의 위대성은 모든 것이 유리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낭패하였을 때 나타난다. 부정선거를 알게 되고 국민이 하야를 요구하자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해야지”라는 한 마디로 하야하였다. 이 한 마디와 이 행동은 그가 진정으로 위인이란 것을 보여준다. 어느 권력자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 한다면서 물러나겠는가?

그는 그 후 ‘독재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세계 역사상 어느 독재자가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 한다며 순순히 물러났는가? 더구나 학생이라면 불의를 보고 항거할 줄 알아야 한다며 학생대표를 격려하며 물러나는 독재자를 본 적이 있는가? 국민 각자가 자유를 스스로 지킬 의지와 능력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것이 이승만의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는 이 목표가 실현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드디어 독립국가가 완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낭패감을 모두 떨쳐버리고 유유히 개인 이승만으로 돌아가는 그야말로 정말 위대한 인물이다. 자신의 모든 명예가 실추되며 모든 업적이 비난으로 바뀌는 그 순간 태연히 하야를 선택한 것은 그가 진정 국가를 위해 봉사하였고 사심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을 갖게 된다.

설사 그가 국가의 독립기반을 확립하기까지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권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독재라고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독재란 대의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의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것은 독재가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부모가 약간의 독단을 활용하는 것이 독재가 아니듯이 내외적으로 국가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약간의 편법을 동원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치라고 본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결정은 그런 측면에서 위대한 결정이며 아름답다. 오늘 날 대한민국이 세계에 우뚝 설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건국의 기초가 튼튼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대한민국이 바른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은 반드시 건립되어야 한다. 2010년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택한 50년이 되는 해다. 그 해가 가기 전에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기공식만큼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정창인 자유통일포럼 대표: http://unify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