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과 기대승의 편지1.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씀
김동곤(울산제일고 교사) 옮김
자사는 “기쁨ㆍ노여움ㆍ슬픔ㆍ즐거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도[中]라 하며, 밖으로 드러나 정도에 알맞으면 조화[和]라 한다.”라고 했으며,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실마리요,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의 실마리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실마리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은 슬기로움의 실마리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정性情에 대한 풀이로, 옛 유학자들이 다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살피건대, 자사의 말은 전체를 일컬은 것이며, 맹자의 설명은 일부분을 떼어 내 말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을 성性이라 하고 밖으로 드러난 것을 정情이라 하는데, 성性은 언제나 선하지만 정情은 선악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그러합니다. 다만 자사와 맹자가 가리키는 것이 달라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구별된 것일 뿐, 칠정의 밖에 따로 사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사단이 이理에서 드러나므로 선하다 하고, 칠정은 기氣에서 드러나 선악이 있다 하면 이와 기를 나누어 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칠정은 성에서 나오지 않고, 사단을 기를 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말에 병통이 생겨 후학인 제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다시 “사단의 드러남은 순수한 이理이므로 언제나 선하고, 칠정의 드러남은 기氣를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라고 고친다면, 지난번 생각보다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제 생각에는 마뜩지가 않습니다.
무릇 성性이 드러나고 기氣가 작용하지 않아 타고난 선善이 곧장 이루어진 것이 바로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입니다. 사단이란 진실로 꾸밈이 없어 본연의 이치가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단은 칠정의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칠정 안에서 드러나 정도에 알맞은 것의 싹입니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을 짝으로 두고 말하며 본연의 이치와 기를 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심과 도심을 말할 때는 그러할 수 있겠지만, 사단과 칠정을 말할 때는 그러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칠정을 인심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理는 기氣의 주재자요, 기는 이의 재료입니다. 이와 기는 본래 나누어진 것이지만, 사물에서는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에 나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는 약하고 기는 강하며, 이는 조짐이 없지만 기는 자취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기가 사물 속에서 흘러 다니며 드러날 때,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차이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칠정이 드러날 때, 선하기도 하며 악하기도 하고, 성性의 본바탕이 완전하지 못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것은 하늘이 본래부터 준 것이며, 악한 것은 타고난 기질과 성품이 지나치고 모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렇듯 사단과 칠정은 처음에 두 가지 뜻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데도 요즘 학자들은 맹자가 선한 한쪽만을 떼어 내 가리킨 뜻을 살피지 않고 사단과 칠정을 구별하여 말하는 것을 보고 저는 잘못으로 여겼습니다.
주자는 “기쁨ㆍ노여움ㆍ슬픔ㆍ즐거움은 정情으로, 이 정情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성性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정性情을 논할 때마다 사덕과 사단으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기를 가지고 성을 말할까 주자가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모름지기 이가 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기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드러난 것이 이의 본바탕임을 알아서 힘쓴다면 거의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1) 사단四端 :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마음. 『맹자』에서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수오지심,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사양지심,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시비지심을 이른다.
2) 칠정七情 :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기쁨[喜]ㆍ노여움[怒]ㆍ슬픔[哀]ㆍ즐거움[樂]ㆍ사랑[愛]ㆍ미움[惡]ㆍ하고픔[欲]을 이른다.
3) 이理 : 만물에 내재하는 원리나 우주의 근본이 되는 도리를 일컫는다.
4) 기氣 : 만물 생성의 근원이 되는 힘. 이理에 대응되는 것으로 물질적인 바탕을 이른다.
5) 인심人心 : 사물을 응대하는 사이에 사사로움에서 나오는 마음.
6) 도심道心 : 사물을 응대하는 사이에 사사롭지 아니한 데서 나오는 마음.
7) 사덕四德 : 인륜의 네 가지 덕. 효孝, 제悌, 충忠, 신信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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