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른 손길에 이끌린 행동 - 임병식
오늘 오전 산책을 나섰다가 야산 초입에서 장의차를 만났다. 번호판이 타도인 걸 보니 외지에서 온 것 같은데 길이 좁다보니 차를 세워두고 관만 빼내어 운구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가면서 조화(弔花)를 앞세우고 갔는지 길가에는 다문다문 꽃술이 떨어져 있었다. 그걸 보자니 조금은 꺼림칙했다.
하지만 걷던 길을 가지 않을 수는 없어서 뒤를 밟아 가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러 망설여졌다. 삼거리인데 좌측으로 갈까, 우측으로 갈까 주저가 되었다. 곧잘 오르게 되는 가리마길은 힘에 부쳐 접어두고 양쪽 길 중 한쪽을 택해야 한다. 이런 때는 옛날 하던 대로 손바닥에 침을 빭아 손가락으로 쳐서 튀겨보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오른편 길로 발뿌리를 돌렸다.
조금 걷다가 집이 가까운 쪽으로 내려가는게 좋을것 같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데 가다보니 중도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나서 생각하니 어쩐지 더 가면 앞서 지나간 상여행렬을 자꾸만 만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광경을 보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해서 마음이 시키는대로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왔던 길로 되짚어 걸었다. 한데, 생각하니 걷는 거리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조금 더 걸어불까. 생각하면서 다시 삼거리에 이르렀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김동리 선생의 소설 <늪>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인공이 운명적인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인다. 선택의 기로에서 쉽게 결정을 못내린다. 그러하듯 나의 머릿속도 한순간 골돌해 졌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 온 김에 조금만 더 걷자.’였다. 결심이 서자 좌측길로 접어들었다. 한데 이 때였다. 몇발자국을 떼는데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관이 눈앞에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하필 이곳에서 조우를 하다니...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게 보이자 나는 달리 생각할 틈도 없이 허둥지둥 발길을 돌려 그자리를 빠져 나왔다. 예감한 대로 역시 그것은 보고 기억에 새겨둘 것이 못되었다.
쫓기듯 그곳을 벗어나오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나는 어차피 관을 목격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을까.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나도록 되어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맴을 돌았다.
소설 손오공을 보면 손오공은 도술을 부리는 현장법사의 손아귀을 벗어나지 못한다. 생각하니 오늘 내가 겪은 일도 하루 일진이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어떤 손길에 이끌린 것 만 같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여부를 떠나서 생각이 많아진다. 우연치고는 기묘한 일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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