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수리공 - 주인석
두 대 정도 세게 때리고 나니 손이 얼얼하다. 전에는 한 대만 때려도 금방 말을 듣던 것이, 요즘은 몇 대를 때려도 꿈쩍 않아 갖다 버릴까 고민 중이다. 저러다가 멀쩡할 때도 있으니 버리기도 그렇다. 평소 말이나 못하면 밉기나 덜하지. 한 번 말이 터지면 청산유수라, 나는 도대체 따라갈 재간이 없다. 지금 입 닫고 있다고 버릴 수도 없고, 안 버리자니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2년 전에 산 카세트가 벌써 며칠째 속을 썩인다. 테이프를 넣으면 씹어서 뱉어 내기 일쑤고, 어째 달래 놓으면 찡찡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은 묵묵부답이다. 혹시 먼지가 끼어 그러나 싶어 드라이기 바람을 갖다 대기도 하고, 면봉으로 살살 닦기도 하고, 뻑뻑해 그런가 싶어 기름칠을 해 봐도 여전하다. 요즘 것들은 왜 저리 고장이 잘 나는지. 사람도 사물도 툭하면 병치레고 고장이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옛것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친정에는 내가 어렸을 적에 사용했던 라디오가 아직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골동품처럼 사랑채 살강 위에 얹혀 있지만, 큰언니가 태어나던 해에 샀다고 하니 오십 년은 넘은 물건이다. 내가 결혼하고도 아버지는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들으셨다.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산골이라 라디오와 우체부가 물어다 주는 소식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절이었다. 나는 대여섯 살부터 아버지와 일일연속극을 청취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재미있게 말하는 라디오가 시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동무가 되는지 모른다.
그러다 가끔은 라디오도 피곤한 듯이 입을 닫아 벌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툭툭 쳤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멀쩡하게 소리가 났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몇 번 툭툭 쳐 봤다. 잘 안 고쳐지면 더 세게 탁탁 쳤다. 작은 내 손에도 말 잘 듣는 라디오가 참 신기했다. 어린 마음에도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맞아야 하는구나.’ 싶었다.
종종 아버지의 매를 맞긴 했지만 내 유년의 라디오는 긴 수명을 이어 왔다. 어쩌다 한 번씩은 아버지가 라디오를 품고 전파사로 가시기도 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의 물심양면 후원을 받아서인지 아직도 아버지가 기거하는 사랑채 살강에서 맏딸 나이로 살아 있다. 아버지는 한 번씩 꺼내 딸을 보듯 하며 머리맡에 놓으시고 청취한다.
뭐라 해도 라디오의 장점은 달변가라는 데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술술 토해내는 말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묻지 않아도 최근의 일들을 조곤조곤 친절히 일러주고 간간히 심심하랴 노래까지 곁들인다. 이따금 그런 친절이 겁이 날 때도 있다. 한 번씩 예상치도 못한 대형 사고들을 터뜨릴 때를 대비한 입발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쾌변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다.
내게도 고장 난 카세트 두 대가 있다. 하나는 분리수거라도 되지만, 다른 하나는 분리수거도 쉽게 되지 않는 그야말로 골칫덩어리다. 분리수거를 하려면 아마도 살고 있는 집까지 덤으로 줘야 수거를 해 가지 않을까 싶다. 소리가 잘 난다 싶다가도 어느 날 보면 입을 딱 다물어 버리고, 유난히 착착 감기게 말을 한다 싶으면 그날은 여지없이 대형 사고를 내고 온 날이다.
남편과 나는 중매로 만나 연애기간 없이 바로 결혼했다. 내로라 하는 집안이라며 물어볼 것도 없다는 중매쟁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한 결혼이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시숙의 분별없는 생활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번번이 내게도 피해가 왔다. 시숙은 돌려막기 식으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때는 이미 어머어마한 빚더미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늘 친절하고 조곤조곤 말을 잘 하던 남편은 어느 날부터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좋은 일이 아니기에 다그쳐 묻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심 걱정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날아온 한 통의 고지서는 남편을 고장 난 라디오로 만들어 버렸다. 완전히 입을 닫아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아무리 물어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화를 냈다가 달랬다가 여러 방법을 써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마치 지금 우리 집의 고장 난 카세트처럼. 두들기기도 하고 툭툭 건드리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지 않은가. 최후의 방법을 써야 할 때가 왔다.
고지서는 다름 아닌, 집을 담보로 시숙의 보증을 섰다는 내용이었다. 내게 의논 한마디 없이 벌어진 일에 대해서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유일한 우리의 재산인 집이 빚에 넘어가고 아이들과 나는 길거리에 쫓겨나게 생겼다. 나는 참았던 울분을 사정없이 터뜨렸다. 내가 따지는 내내 남편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호변가이던 사람이 고장 난 기계처럼 꿈쩍도 안했다. 사정이야 어느 정도 이해한다지만, 이런 우유부단한 남편과는 살아봐야 늘 똑같은 장단일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두 아이의 아비인 그에게 지독한 말을 했다. 나는 남편을 정말 아프게했다.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들을 두고 차마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어물어물한 성격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너무나 세게 맞아서일까. 굳게 다물었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어린 시절 나한테 세게 맞고 고쳐진 라디오처럼. 단 한마디.
“알아서 한다.”
그 후에도 남편은 끊임없이 잔 고장부터 큰 고장을 수시로 낸다. 그럴 때마다 자주 내 손에 의해 고쳐지기도 한다. 고장이 났다 싶어 버리고 새로 사도 몇 년이 지나면 또 고장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두들기기도 하고 전파사를 찾아 부속을 갈아 끼우기도 하며 아직 그때 그 라디오를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 모양으로, 나도 고쳐 쓰기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다. 새것을 사도 결국은 헌것이 되고 마는 것이기에 차라리 손에 익은 것을 잘 다독거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우리 부부에게 아이들이라는 윤활유가 기름칠 되어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고장은 또 언제 날지 모른다. 고장을 일으키고도 늘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겉모습을 한 남편을 날마다 분리수거해 버리고 싶지만, 나는 그때마다 토닥토닥 두들기고 때론 크게 때리며 고쳐 사는 인간수리공이다. 무면허 수리공에게 자신의 전부를 맡기고 사는 라디오는 오늘도 즐거운 소리를 내며 내 곁에 머문다. 때론 소리를 아주 씹어 버려 속을 태우기도 하지만…….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길 사람의 속마음 - 김태길 (0) | 2015.09.25 |
---|---|
바람 부는 날의 산조 - 최운 (0) | 2015.09.17 |
얼반 쥑입니더 - 정성화 (0) | 2015.08.30 |
까닭 - 김은주 (0) | 2015.08.29 |
갑오경장 두 달째 - 정성화 (0) | 2015.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