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필요성
김요한 선교사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함이라”(약 1:4)
내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을 너무 성급히 겁탈하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율법이다, 은혜이다, 교회 보수다 개혁이다 외치며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면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듯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겨우 죄와 사망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의 은혜의 텐트 안에 수용되어 있는 안도감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기서 약간의 헌금과 봉사 그리고 해외 선교 등의
도덕적인 향락을 즐기는 정도로 신앙을 전부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천박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성경 안으로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부름을 받아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기까지는 그리 수월하지 않는 과정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 그리고 야곱과 모세 다윗 등의 신앙의 여정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된 것을 봅니다.
단순히 기분 좋은 하루를 두고 은혜롭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죽음과 같은 고통을 통과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욕과
처절한 좌절과 칼로 도려내는 배신의 아픔을 견디어 낸 사람들입니다.
물론 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이겼으므로 그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과 복의 온전한 상속자,
준비된 하나님의 자산 운용자가 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얄궂은 성격이 그대로 있고,
남에게는 인색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편견이 남아 있고,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 눈동자가 민첩하게 돌아가는 약은 생각이 있으며,
남을 은근히 시기하고 이웃이 잘되는 것이 달갑지 않은 좁은 속이 있으며,
시간만 있으면 먹고 떠들고 즐기려는 정욕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담 안에 있던 악성과 악습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깻묵처럼 완전히 짜내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험이 오고 고난이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대충 마치려고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우리를 건져낸 것이 아닙니다.
조각가가 나무를 불구덩이에 들어가 건져낼 정도면
그 나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이미 압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은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이제 다만 과정이 남았을 뿐입니다.
아직 긴가, 민가 하는 분에게는 이 말씀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사로잡힌 자라고 생각하시면
이제 나는 죽었다고 복창하시고 말씀과 함께 인내의 분량을 쌓아 가십시오.
하나님이 ‘옳지 됐어’ 하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