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더욱 심각해진 지구온난화현상 덕분(?)에 봄인가 싶을 정도로 따스한 날이 이어졌지요. 그러더니 요새 며칠 기온이 뚝 떨어져 비로소 겨울다워졌습니다. 툇골도 산과 들에 쌓인 눈이 한낮에도 꽁꽁 얼어 있어 보기만 해도 추운 느낌이 듭니다. 겨울해는 일찍 떨어져 밤도 빠르게 찾아오고, 좁은 마을길도 순식간에 얼어붙어 적막한 어둠에 휩싸입니다. 뉴스에서 금년들어 최고의 추위가 찾아왔느니, 어디는 영하 몇도, 어디는 몇도 합니다. 일기예보만 들으면 세상은 그야말로 꽝꽝 얼어붙어 무서운 추위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말들이 호들갑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리 춥다 춥다 해도 예전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제 유년시절은 정말 추웠습니다. 아침이면 마당의 우물물을 퍼서 세수를 하는데 얼마나 날씨가 추운지 물에서 김이 무럭무럭 났습니다. 빠르게 씻고 방안으로 쿠당탕 뛰어들어와 방문고리를 잡으면 젖은 손이 문고리에 닿자마자 쩍,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습니다. 지금은 30초반에 들어선 제 아이들이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날씨는 매우 추웠습니다. 너무나 추운 날이면 저는 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 강추위에 여리디 여린 것들이 두 볼이 시퍼렇게 얼어터지면서 학교에 가서 배울 게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런 날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애가 오늘 몸이 아퍼서 등교하지 못합니다." 애들 선생님께서는 저희 집 애들은 왜 추운 날만 되면 꼬박꼬박 아픈지 의문을 지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영혼'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동화작가 할머니 타샤 튜터 역시 저와 같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말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눈이 펑펑 내리면, 우린 명절처럼 좋아했다. 돌려서 거는 전화가 있어서, 학교가 휴교한다는 연락이 오곤 했다. 이렇게 잘될 수가! 정말 축제를 벌렸다. 하지만 휴교하지 않아도 우린 늘 학교에 안 갈 구실을 만들어냈다."(타샤 튜더, 리처드 브라운 찍음,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공경희 옮김, 윌북, 2006, 154쪽.)
이 구절을 읽으니 얼마나 반갑던지요. '그럼 그렇지, 여기 동지 한 분이 계시는구나...'
이 부지런하고 유쾌한 할머니의 삶이 근래 자꾸 제 마음을 건드립니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베틀에 앉아 손수 천을 짜서 옷을 해 입고, 염소젖으로 요구르트와 치즈를 만들며, 앤티크 의상을 모으고, 옛날 드레스를 입고 살며, 동물들을 깊은 애정으로 대하는 91세의 너무도 건강한 할머니, 설겆이와 다림질을 즐기고, 쨈을 저으면서도(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김치를 담그면서도) 세익스피어를 읽는 이 할머니 생각이 참 근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도 골동품 식기를 생활에서 사용한다. 상자에 넣어두고 못 보느니,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나으니까. 내가 1830년대 드레스를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 수집가들이 보면 하얗게 질릴 일이다. 하지만 왜 멋진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즐기지 않는담?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위의 책, 141쪽)
아, 이런 태도는 정말 기분좋습니다. 타샤할머니의 유쾌하고도 현명한 삶은 참으로 닮고 싶습니다. / 정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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