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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5과) 11

Joyfule 2008. 12. 6. 03:29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5과) 11

 룻기(3): 룻과 보아스(3장)


16,18절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한편, 나오미의 변화는 눈부시다.  자기 뜻과 계획대로 살았던 지난 세월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모압으로 끝낸다.  이렇듯 나오미는 3장까지 오면서 분명한 변화와 성숙 앞으로 나아간다.  

  1:6 - "여호와께서 … 들었으므로"
  1:13 -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1:20 -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1:21 - "나로 비어 … 나를 징벌하셨고 … 나를 괴롭게."

  2:19 - "복이 있기를"
  2:20 - "은혜 베풀기를"
  3:1 - "안식 … 복되게"

나오미는 자신이 기록한 인생 10년史를 전후한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표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하나님보다 조금 더 앞서 갔던 지난 세월의 부끄러움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오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셔야 할 몫의 여백까지를 넘보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보아스를 통해서 당신의 이야기를 이어가시는가를 볼 것이라고 말한다.  나오미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여백을 맡겼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을 믿는 만큼 우리는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고, 기다리며, 인내하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도리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사례는 출애굽의 역사에서도 발견된다.  앞은 홍해요, 뒤는 애굽의 군사들이 밀고 올라오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 때에 모세는 이렇게 선포했다.  이것은 일명 '출애굽의 여백'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라!"  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인가?  나오미는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 가실지를 숨죽이며 지켜 볼 것이라고 말한다.  인위적으로, 인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직 남아 있는 여백을 발견하라.

"내 인생의 빈 노트에 무엇을 그려(채워)야 하나!"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꿈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는 열심히 쌓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고, 맞추기도 하고, 도려내기도 하고, 오려 붙이기도 한다.  제각기 자신이 기대하는 바대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계획대로 만족스럽게 그려지는 그림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계도대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인생은 AS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내 마음대로 그려 놓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후회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라면 바로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남은 여백은 하나님이 채워주시도록 하라!  

(1)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여백(달란트)을 발견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하다.

(2) 가정, 배우자,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라.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 없는, 그리하여 아빠나 엄마의 말이 곧 법(法)인 가정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여백이 없는 경우다.  자녀들은 자동 인형이 아니다.  부모의 계획(꿈)대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는 수단이 아니다.

(3) 교회가 크다고 해서 내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내가 해야 할 사명을 깨닫는 것만큼이 그가 얻게 될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사람이 일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반감된다.  아직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여백이 남아 있다.

남은 여백만큼 그는 행복하다.

아직 여백(餘白)이 있는 자는 행복하다.  그것만큼 꿈이 있고,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점(點)이 아니라 하나의 선(線)이다.  거대한 하나의 진행형(ing)이다.

그 여백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는 자는 '더' 행복하다.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하나님이 하시도록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오라.  당신의 여백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채워가시는 여백을 보고 있는가?    

여백(餘白) 없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중년의 위기'가 왜 찾아오는가?  
더 이상 삶의 여백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뒤치다꺼리하다 황금 같은 20-30대를 보내 버렸다.  이제 자녀들은 더 이상 자신의 품 안에 있지 않고 자기 주장만 늘어 놓는다.  세대차이라고 말하거나, 구식(舊式, 구닥다리)이라고 놀리고, '쉰세대'라고 일축한다.  남편도 예전 같지 않다.  자기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기 목표에 매달려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늘어가는 것은 몸무게요, 허리 둘레요 -'배둘레헴이 많아진다-, 얼굴에는 기미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그 곱던 손은 거칠어질대로 거칠어졌고, 옷장에 있는 20대에 입던 원피스는 다리를 집어 넣을 때 벌써 걸려서 들어가지 않고, 모두 들 다 앞서 가는데 자신만이 뒤로 후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기 시작한다.    

부스러기 묵상

여백의 하나님 앞에 선다.
아직 남아 있는 당신의 여백을 보라.  무엇으로 채워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자.  나오미는 자신의 남은 모든 여백이 제로 포인트였음에도 그 황무지에서 장미꽃을 피워내고 있지 않은가?  아직 남아 있는 은혜의 부스러기들일지라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나님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하나님보다 먼저 나의 남은 인생의 여백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은 교만함이다.  아직 당신의 것은 남아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날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어 있다.  아직 나의 여백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만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유효하다.  이 밤이 새면 아직 남아 있는 룻의 여백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다음 시간에 생각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