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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7과)1

Joyfule 2009. 3. 30. 02:48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67과)1

열왕기(4): 분열왕국 이야기(1)(12-17장)


1. 특이한 공관 역사

 

 1-1. 지그재그식 배열


  통일 왕정인 솔로몬 시대의 내러티브 구조는 앞에서 살펴본대로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왕국이 분열한 후 유다와 이스라엘의 각각의 상황을 공관적으로 살필 때부터는 그 구조가 복잡해진다. 열왕기 기자는 두 왕국의 왕들을 철저하게 연대순으로 배열하고 있지 않다. 열왕기 기자는 먼저 즉위한 한 왕의 통치의 전체 모습을 살펴본 다음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그 왕이 통치할 때에 다른 왕국을 통치했던 왕들의 통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로보암은 주전 930-909년까지 21년간 북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남 유다에는 르호보암(주전 930-913년), 아비얌(주전 913-910년), 아사(주전 910-869년)의 세 왕이 통치를 했다. 열왕기 기자는 (왕상 12:1)에서 시작한 여로보암의 이야기는 (왕상 14:20)에 가서야 끝이 난다. 그 다음에 (왕상 14:21)에서 22년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로보암과 같은 해에 등극한 남 유다 왕국의 르호보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17년밖에 통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기사는 (왕상 14:31)로 끝이 난다. 그리고 나서 열왕기 기자는 유다 왕국의 아비얌이 통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왕상 15:1-8). 그의 치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치세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후에 계속해서 남방 유다 왕 아사의 통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가 즉위한 해는 여로보암 21년으로 여로보암이 사망하기 1년 전이었다. 그러나 열왕기 기자는 아사가 즉위한 때가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왕상 15:9-24). 따라서 아사도 41년이란 긴 기간 동안 통치를 했지만, 아사가 죽을 때까지 북방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아사의 통치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아사의 통치에 대한 기록이 끝이 나면, 다시 4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나답, 바아사, 시므리, 그리고 오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2. 대조와 비교
  이러한 열왕기의 구조를 알게 되면 우리는 열왕기를 읽을 때에 같은 시대의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비교해가면서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열왕기 기자는 남방 유다의 선한 왕 아사와 여호사밧(15:9-24)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 같은 시대의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15:25-22:40)을 읽도록 배열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 남왕국 유다의 선한 왕들의 이야기는 같은 시대의 북 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의 역할을 한다.

 

 

유다왕국(왕상 15:9-24)

이스라엘왕국(왕상 15:25-22:40)

왕들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 아합

왕조

다윗왕조-안정적

5개의 왕조(여로보암,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매우 불안정)

계승

평화적 계승

2번의 살해와 왕조 교체, 1번의 자살(7일천하), 혁명과 피의 숙청

평가

르호보암, 아비얌(부정적)
아사(조건적 긍정: 선한왕)

6명 모두 부정적(여호와보시기에 악함), 1명(디브니)은 평가조차 없음

 

 

  열왕기 기자는 이와 같이 동 시대의 유다 왕들과 이스라엘 왕들을 지그재그식으로 배치하여 서로 비교해서면서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열왕기 기자는 이러한 배열을 통해서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사를 유다 왕들의 배경 아래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7명의 왕들(왕상 15:25-22:40)은 바로 직전의 유다 왕들인 르호보암(14:21-31), 아비얌(15:1-8), 아사의 이야기(15:9-24)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세 왕은 모두 다윗의 후손으로서 한 왕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북방 왕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나타나는 아사왕이 비록 조건적이긴 하지만, 선한 왕으로 칭찬을 받은 왕이라는 사실이다-"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13-14). 그 후에 이어지는 북방 이스라엘의 7왕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 선한 아사 왕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왕들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남방 유다가 왕조의 안정성을 보인 것과는 반대로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에서는 왕조의 안정성이 사라진다. 나답과 엘라가 살해를 당하고, 시므리는 7일 동안만 왕노릇하였으며, 디브니는 열왕기 저자의 평가의 대상이 되지 못할 정도로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결국 24년만에 왕조가 4번 바뀌는 정치적 불안정을 겪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이스라엘 왕국은 "긴 통치와 짧은 통치의 병치"라는 패턴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바아사의 22년간의 긴 통치(주전 908-886녀니 왕상 16:8-14), 엘라의 1년간의 짧은 통치(주전 886-885년; 왕상 16:8-14), 아합의 21년간의 긴 통치(주전 874-853년; 16:29-22:40)와 그의 아들 아하시야의 1년간의 짧은 통치(주전 853-852년; 왕상 22:51-왕하 1:18)의 반복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북방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선지자들이 군사-정치 지도자들을 부추겨서 왕을 살해하고 왕권을 획득할 것을 획책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엘리사가 예후를 움직여서 아합 왕을 살해한 것과, 아히야 선지자가 여로보암 1세에게 하나님께서 열 지파를 떼어 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 이러한 예에 속한다. 그러므로 북방 왕들은 이런 저런 적들과 싸우느라 제대로 통치를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스라엘 왕들은 모두 악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또 다수의 왕들이 살해되거나 자살하는 등의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이러한 점은 이스라엘 왕국이 여호와에 의해 진멸될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을 그치지 않다가, 유다 왕국보다 150년 먼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남방 유다 왕국은 다윗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왕조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남 유다 왕국의 왕들의 이야기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왕들의 배도를 강하게 드러내는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거꾸로 바꾸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열왕기는 북방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해서 남방 유다 왕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루 왕조가 5대 동안이나 지속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때에, 남방 유다는 선한 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요아스와 아마사) 살해되고, 이사랴는 문둥병에 걸려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북방 예후 왕조의 기사에 비추어서 동시대의 남방 유다 왕들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열왕기 기자는 절묘한 지그대그식 배열을 통해서 지루할 수 있는 왕들의 이야기를 비교, 대조하며 읽을 수 있는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겹치게 만드는 패턴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스토리를 독자들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고 있다. 또한 열왕기 기자는 한 나라 왕을 언급할 때에, 다른 나라의 왕을 함께 언급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가 두 민족의 역사가 아닌 한 민족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