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는가?

Joyfule 2024. 4. 4. 22:46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듣겠는가?(롬10:14-15)




 축복이란 말은 복을 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게 복을 받으려고 안수를 받아

본 적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 본 적은 많지 않으시겠어요?

아니 목사가 안수를 받는 것은 목사직을 위임받아 임직하는 것이잖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으로 집대성이 된 이 시대에 누가 구약의 선지자처럼 또는

신약의 사도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직통계시를 받아 스스로 된 자가 있을까요?

사도와 선지자의 터 위에 세운 교회(엡2:20)의 전통을 따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자에게 그 직임을 위임하여 세우는 것이 바로 현재 교회의 직분을 세우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에게 평강이 임하는 복을 빌어주지 않나요?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성령이 임재하도록 기도해 주고 있지 않으세요?

신사도주운동이라는 물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폐단이 생겨 말이 많습니다.

그 전의 빈야드 운동 때와 같이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빈야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에 대한 메시지가 없는 게 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안에 임하지 않았는데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나면 뭐가 달라질까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신사도운동은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기도를 하든 강력하게 명하든

너 사도라고 명하고 선포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이라고 말을 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들의 잘못된 메시지는 나무랄지언정 그 임파테이션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를 해서 내가 가진 구원의 복이 회중에게 전달되는

것도 임파테이션이며 안수를 해서 복을 빌고 위임하는 것 또한 임파테이션입니다.

목사를 공무원처럼 임용고사를 통해 합격하면 목사로 임명하는 교단이 어디에 있나요?

안수위원을 정해 예배를 드리고 안수하여 직분자로 세우지 않습니까?

왜 임파테이션이란 말에 경기라도 일으킬 듯 하는 겁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잖아요?

 

Q. 어찌하여 믿음으로 부르짖지 못하는가요?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A. 듣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고 전파하는 이가 없어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 중에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까?

만약 아니라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빼야죠.

그리스도가 주로 믿어지지 않는데 어찌 주를 간절히 호소할 수 있는가요?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마5:3)은 간절하게 주께 호소할 수 있습니다.

이미 거듭난 사람이며 하늘에 속한 천국이 되었기에 위엣 것을 간절하게 사모합니다.

이게 바로 의인들의 복입니다. 시편의 의인들의 부르짖음과 그 결과의 찬양을 보세요.

듣지 못한 자를 어찌 믿으리요(미래동사)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첫째는 전파가 중요합니다. 그 다음엔 듣고 그리고 믿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듣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전파하는 자가 없습니다.

만일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설교자인 체 한다면 당신은 가짜입니다.

아니 가짜 진짜라고 말할까요. 아니면 진짜 가짜라고 말해 드릴까요?

 

Q. 누가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이를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5)

 

A.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겠습니까?

이게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도자를 세운 목적입니다.

전도자에게는 하나님이 돈을 주지 않고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오직 복음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만을 위해 살라고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출입할 수 있는 엄청난 복을 주십니다. 다윗처럼...

말씀을 통해 복을 받았기에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누가 주의 종들이 가진 축복권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을까요?

복을 가진 자는 그 복을 임파테이션(impartation)할 수 있습니다. 축복입니다.

다만 엉터리로 사람이 편집한 계시록을 가지고 자기 혼자만 보고 들었다고

떠든다면 하나님의 부름은 받았지만 지금 길 옆을 걷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맙니다.

또한 어디선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들었다고 그걸 강조하므로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표적이나 기사가 성령의 나타나심은 있으나 존재는 마냥 그대롭니다.

계시록의 새 하늘의 새 땅도 분명히 존재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임했지만

어떤 과정과 절차와 방법을 통해 그 새 하늘 새 땅 안에서 발견이 되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성취되는지 설명해야죠.

그래서 은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격이 평생 그대로인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하고 말합니다(고전9:1)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상관이 없는 자로 진리 안에서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대면하는 자유를 가진 전도자인 바울은 사도라고 해도 무방하며 그는 능히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도 있고 안수로 성령세례가 임하게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제 글의 독자들에게 믿음으로 진리를 따라 주의 보좌로 나아가서

믿음의 실상이 되는 영생의 복을 누리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축복하고 있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하는 말씀의 이 발은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입니다. 발 뻗을 데를 찾아 헤매는 발이 아닙니다.

발은 온 몸에 비하여 천한 지체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은 아름답습니다.

좋은 소식 곧 선한 말씀이며 생명이 되는 말씀을 증거하는 주의 종의 발걸음은

아름답고 복된 발입니다. 아니 그 발은 복을 나르는 발입니다. 분명 임파테이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