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자신의 의냐? 하나님의 의냐?

Joyfule 2024. 3. 30. 13:11


   자신의 의냐? 하나님의 의냐?(롬10:1-3)



 신앙에 있어서 믿음의 열심보다 소속이 바뀐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롬1-8장까지의 구원의 방법과 절차와 과정을 따르는 것이 필수입니다.

지금 예수를 믿어도 성령세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폐단도 여기서 발생합니다.

물론 아볼로와 같은 설교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세례로 성령에 잠겨야지요.

그러나 성령세례나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면서 문제는 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땅에서 별을 보고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희 별하는 거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육신이 약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음에도 그 목표만 주야장천 강조하는 유대인이나

어떻게 성령세례를 받는가? 또 어떻게 그의 나라와 그의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그 방법과 절차와 과정을 설명해 주지 못하면 구약의 외식이냐 신약의 외식이냐 일뿐입니다.

 

Q.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어떠한가요?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롬10:1)

 

A. 바울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바라는 말은 마음에 좋아하는 뜻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는(유도키아) 바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남이 시킨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어리니까 기도제목을 정해 합심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그건

단합대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기도를 주관하는

목사조차도 자신을 끊임없이 텐션하여 뻔뻔해지지 않으면 그 기도를 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현재의 교회의 모습이 그대로 가면 아마 교회 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교회 기도제목들을 한 번 보세요.

 

구하는 바라는 뜻은 착 달라붙는 자세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보고 뜨끔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진리의 성령 안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천국을 침노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지만

과연 그 사랑 안에서 사랑에 닿기 위해 막 달라붙는 기도를 하고 있느냐 묻는 겁니다.

 

다윗을 보면 전쟁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올라 갈까요 말까요? 과연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부부싸움 하기 전에도 기도해 보세요.

주님 제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지겠습니까?

아마 그러면 웃음이 나와 금방 화해를 하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이용해서 복음으로 유대인을 우회공격하려는 작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방인을 통해 유대인을 포위해서 그들로 시기 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는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희망이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신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수의 수준이 이미 성경과 벗어났습니다.

변증론 하는 유명한 미국신학의 박사학위 교수에게 롬7장이면 되는데

왜 그리 어렵게 말하려고 하느냐 하면 그건 목사님 몫이고 나는 학자니까 신학만

연구하고 발표한다고 하는 이런 교수가 신학을 가르치는 한 한국교회는 희망은 없습니다.

진리의 복음이 없는데 교회를 개혁한다고요? 목사의 권위를 없애고 청렴하면 된다고요?

교회가 담을 헐고 밖으로 향해 오픈을 하여 문화화 하면 그게 개혁이 된다고요?

진짜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이며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작작 하세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로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진 자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 보호운동이 일어나 상품의 질이 개선이 된 것처럼 영적인

소비자 보호운동이 일어나 공급하는 지도자들이 바울과 같이 엎드려 달라붙어야 합니다.

성경의 원형교회로 돌아가기를 사모하면서 한국과 세계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Q. 유대인의 신앙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2)

 

A. 바울은 철옹성과 같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직격합니다.

그런데 1절에는 제사장의 역할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울입니다.

2절은 선지자의 역할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는데 증거 고소 직격탄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제론) 뜨거움 곧 불을 가지고 있으나 지식이 없습니다.

막무가내식의 신앙입니다. 지식이 없어 덮어 놓고 뜀박질 합니다.

요즘 성령을 받는 걸 불을 받는 거라고 하는 목사도 있더라고요.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장담하건대 그 사람 지금 죽으면 불 못입니다.

불을 좋아하니 불 구덩이로 가야지요. 불 세례는 성령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지 않는 자 곧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는 자들이 받는 최후심판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자신은 회개를 위한 물세례를 베풀지만 주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데(마3:11) 바로 구원과 심판의 세례를 가진 주님의 권세를 말하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열심(사9:7)으로 뜨거움을 느끼지만 그건 불세례가 절대 아닙니다.

이성이 없으면 논리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시냐는 논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이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우상과 같이 숭배하고 마는 겁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당시는 바로가 신이다 또는 가이사가 신이다 하면 그대로 믿을 때입니다.

 

요즘도 저더러 왜 골치 아프게 복잡하게 믿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믿으면 돼지 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는 열심뿐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연기는 있는데 불은 없다고 했을 겁니다.

머리(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성으로 들어와서 생각에서

분류가 되고 마음에서 소화돼서 영의 생명이 되기에 반드시 뇌를 사용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은 생명으로 스며들어 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표적만 구하다가 이성을 좇지 않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Q. 유대인의 어리석음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3)

 

A.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무식한 신앙이었습니다.

의를 모르면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무지는 바로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의란 의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바로 그의 나라이며 그의 의가 되십니다(마6:33)

사람들이 예수 믿는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아마 평생을 노력해도 열심만 있을 뿐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를 구하지 못할 걸요.

이미 예수 믿는 우리는 하므로 유대인들과 같이 하니님의 선민이 우리는 하고

나오기 때문에 그 예수를 믿는 방법과 절차와 과정을 생략하고 믿는다고 우기는 거죠.

 

그래서 유대인과 같이 자기 의를 열심히 세우려하는데 이게 바로 그 열심입니다.

믿음에 의한 의가 없으니 열심히 자기의 의를 세우고 있는 거지요.

참 무서운 신앙입니다. 무식 똑똑이로 자기주장만 계속해서 되풀이 합니다.

유대신앙의 맹점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가르치려고 합니다.

사실 사람이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발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시작하지만 먼저 된 자가 됩니다.

목사가 가르치려는 선생콤플렉스에 걸리면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겠지요?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는 것은 의의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흡사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에 대한 채권자가 되어 십일조 낸 것, 금식한 것,

세리나 창기보다 더 나은 것을 쳐들고 우리의 의는 이 정도입니다 자랑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지 않습니다. 사실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복인데...(마5:6)

지금도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나 은사나 표적을 좇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미 귀가 막혀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권면하는 것은 개의 귀를 잡는 거나 같습니다.

할 것 다 해 보고 난 다음에 비로소 제 정신이 들 때까지 기도하며 참아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