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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Joyfule 2023. 4. 19. 08:34


 

 

    기독교 기본교리.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본문에 말하는 주의 날이 언제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요일 일까요? 아니면 안식일 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하루 중의 어느 날일까요? 본문을 놓고 많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고 교파 교단마다 제각기 주장하는 바가 다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었고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에서 주일날 성도들이 모였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주의날 일라고 하는 본문은 그 날이 주일(일요일) 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교단은 일요일이라는 요일이 미드라신교에서 유래한 것이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태양신의 제사 일을 휴일로 한것이이니 하나님의 중심 사상과 맞지를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4계명으로 안식일을 지 정하시고 거룩하다 하셨으니 본문의 주의 날 이라고 하는 날은 안식일이라고 주장합니다.(제 7일 안식일교)

      또 어떤 이들은 이 날이 주일이던 안식일이던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고 그 중심 사상이 중요한 것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한이 계시를 받은 날짜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요한 사도가 계시(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까? 또 어떤 것이 나의 신앙에 이익이 됩니까? 위의 세 가지 논쟁에 대해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세 번째의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요한이 일요일에 성령에 감동되었던 아니면 안식일에 감동되었던 무슨 상관입니까? 요한 사도가 성령에 감동될 수 있는 신앙 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요한 사도가 성령에 감동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해가 지고 밥도 안 먹 고(금식) 악을 바락바락 쓰며 힘을 주니까 뇌에서 전자파가 나가 가지 고 초 자연적 현상이 일어나 하나님과 교신 교감을 하여서 성령에 감동 되었습니까?

      아니면 나이를 먹더니 노망이 들어 가지고 멍청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성령이 갑작스럽게 덤벼들어 감동을 준 것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내린 성령이 그런 성령이고 베드로를 담대하게 하신 성령이 그렇게 해서 내린 성령입니까? 마리아가 미지공(미친년 지가 공주 인줄 알아) 이라는 그 당시 날라리로 세상 쾌락을 누리고 사는데 어느날 갑자가 천사가 내려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제부 터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하라고 했습니까?

      엘리사벳이 늙어서 송장이 될 주제에 아들 하나 낳겠다고 산당이며 명승지며 깊은 산골짜기 쫓아다니면서 발악 발악 악을 쓰고 밥도 안먹고 하더니 하나님이 세레요한을 점지해 주었습니까? 그분들의 신앙 고백이 그런 사고방식에서 나왔습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의 의사성(인간 구원의 원인,동기,목적)이 평소에 충분하게 감동 감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죠. 그렇게 받아 들여 지지요?
      평소에 개떡같이 살다가 주일에만 천사같이 산다고 성령이 마구 부어집니까? 하나님이 화요일에는 화성에만 계시고 수요일에는 수성에만 계시다가 일용일 하루만 지구에 오십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껍대기만 보실 줄 알지 속 마음은 하나도 보실 줄모르는 분인가 보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수 있게 말입니다.

      이 편지의 대다수 수신자들이 장애인 들이니 장애인의 예를 들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침상에 가만히 누워서 지내는 친구들, 당신들은 평일에 무엇을 합니까? 극동방송 기독교 방송 이곳 저곳 편지를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삼습니까? 아니면 나는 죽어야 되 그래야 우리 부모님 마음이 편안해 하고 죽을 궁리만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같은 장애인들끼리 까놓고 말해 침상에 누워 있으면 남아 도는게 시간 아닙니까?

      성경을 보고 싶어도 볼 시간 없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성경 테잎 틀어 놓는 사람도 있고, 앞이 보이지 않아 특수한 안경에 돋보기 까지 들고 성경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말씀 한귀절을 음미하며 삶에 적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 말씀은 이런 뜻으로 하신 것이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늘의 기쁨을 소유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남는 게 시간이요 손 닫는 게 성경인데 텔레비젼이, 라디오에나 정신 팔려서 센티멘탈한 감정이 어떻고 스피드의 남자 배우 개런티 얼마를 받고, 마이클 잭슨이 한국에 오나 안 오나 .................. 그런 편지나 하면서 몰질 날리고 건강 날리고 시간 날리면서 사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으십니까? 그 부분에 대해 죄 의식을 가져 본적은 한번도 없습니까?

      고등학생 중학생들이 죄 의식 없이 술을 마신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들만 욕했지 병든 몸뚱아리 가지고 세상 즐거움 임시적인 것에 몸 버리고 시간 버리고 물질 버리면서 성화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있구나 하는 죄 의식은 갖여 보지를 않았지 않습니까? 제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했습니까? 잘못 말했습니까?

      요한 사도는 이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니까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나님의 계시를 꿰뚫어 볼수 있는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 같은 신체 장애자도 건강한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사도 요한의 신앙을 갖을 수 있고 성령의 감동 감화의 역사가 커져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훤하게 볼수 있고 최고최대의 구원을 이룰수 있습니까? 그런 확신이 드십니까? 그런 확신이 안들면 자기 손해입니다.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리니

       성경에 보면
       백성들을 불러 모을 때  (민16:2)
       파숫군의 경고가 있을때(겔33:6)
       전쟁때                (겔7:14)
       절기때                (레23:24)
       재림때                 (살전4:16,마24:31)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아마도 새마을 운동 시절에 성경 역사가 기록되었다면 허공에 매달린 작은 종을 가리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불이 나도 종을 쳐서 사람 들에게 알리고 전쟁이 나도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알렸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이 시대에는 나팔을 불어서 이런 역할을 했는가 봅니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을 보니 나팔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쓴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큰 음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글이 쓰여졌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기를 큰 소리를 지를 때는 불이 났거나 도둑이 들었거나 아니면 화가 무척 났거나 할때 소리를 크게 지릅니다. 지금 소리를 크게 질러 보십시오, 목에 힘줄이 불거지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힘이 들어갑니다. 소리를 지르려 하니 주먹까지 쥐어 지고 손에는 땀이다 납니다. 장난감을 만진 다거나 컴퓨터 오락을 하면서 소리를 지를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알 수가 있느냐 하면 예수님이 대충 대충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 인격을 기울여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의해서 영죽을 죄에서 구원받고 최대 최고의 구원 완성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우리가 대충 대충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고스돕을 치더라도 쓸데없는 멍텅구리를 내 놓을때도 심사하고 숙고를 하는데 하물며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전 인격을 기울여 하시는 말씀을 예사롭게 넘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큰 소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관심이 없고, 성령에 감동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큰 소리가 자장가나 영화 음악쯤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을 하니 예수님의 이 소리가 나팔 소리처럼 큰 음성으로 들립니다. 그렇게 들려야 나의 복이고 주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책 속에 있는 까만 글씨의 몇 마디 말씀이 말입니다.

      결 론

      종교 개혁자 칼빈도 역설했고 루터도 역설했습니다 .
      그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정신이 옳다는 말입니다. 따로 특별한 날이 거룩하고 다른 날은 평범한 것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살아서는 않됩니다. 그렇게 살면 내가 손해를 보고 마귀가 좋아서 웃습니다. 요즘 5섯살 먹은 아들에게 주일에는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돈을 써서는 않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루는 얼마나 과자를 먹고 싶었는지 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슈퍼로 달려가더군요. 저는 그런 아들에게 야단을 치지는 않았지만 말해 주었습니다. 주일날 돈을 써서 죄가 아니라 사 먹지 않아도 될 곳에 돈을 쓰는 것이 죄고, 주일은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며 깨닫는데 용이한 날 이라서 군것질 하는데 시간과 건강과 물질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제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모르지만 가정 예배 시간을 조금 어기면 성경책 들고와서 예배 드리자고 말하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제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아이가 알게 모르게 진리를 먹고 자라면은 언젠가는 매일이 주님의 날이 되는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실줄을 믿습니다. 설마하니 떡을 달라고 하는 자식에게 돌을 주시겠습니까. 우리 평일에도 주의 날로 삽시다.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나오면 안면을 바꾸는 그런 성도가 아니라 항상 깨여 있어서 늘 기도 하는 정신 사상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여서 예수님의 전 인격을 닮아 갑시다. 그래서 내가 예수처럼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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