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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성서적 의미

Joyfule 2017. 7. 25. 23:24

 

 

  죽음에 대한 성서적 의미

 

 

 기독교의 죽음의 이해의 특색은 윤리적 성격에 있다고 본다.  즉 죽음에 대한 질문과 해답이 윤리적 차원에서 행해진다.  기독교는 죽음이 단지 인간의 운명이며 자연적 사건이라는데 머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단순히 지적으로 죽음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윤리적 극복을 추구한다.1)  ▿런 입장에서 기독교는 우선 죽음의 현상을 죄의 결과라고 단정한다.  이 죄의 결과로 나타난 죽음은 죄의 대가를 지불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만 해결의 길이 열리고 부활의 영광 속에서만 그 완전한 답이 주어진다.2)

 

    기독교는 죽음의 문제를 앞에 놓고 몰트만(J. Moltman)의 말대로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즉 신정론(Theocracy)의 질문이다.  왜 이 세상은 불의의 세력이 판을 치고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가.  즉 기독교는 고난과 죽음의 문제를 신정론적인 윤리적 물음에서부터 다룬다.3)  ▿독교의 신앙을 그런 각도에서 다룬다면 고난과 죽음에 대한 반항과 항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의 죄가 죽음을 결과하였고 흑암의 권세가 판을 치며 의로운 빛의 자녀들을 괴롭혔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죽음을 존재론적으로 극복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요 부활로 이어지며 영생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극복 그것이 기독교의 죽음이해이다.

    죽음은 생명의 단절이요 상실로서 영과 육의 분리이다.4)  ▿경은 절대로 죽음을 존재의 폐기나 중지로 다루지 않는다.5)  ▿경은 죽음을 몇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

    맥박이 멎고 호흡이 끊어지는 것은 육체적 죽음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6)  ▿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다(요 11:11-14).

 

  ② 영적인 죽음(Spiritual death)

    인간이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7)  ▿시인간(原始人間)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도 단절되고, 조화의 관계도 파괴되고 말았다.  그래서 영적 죽음이 발생했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단절이 생겼다.  이 분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영적 죽음으로 상존해 있는 것이다(엡 2:1).

 

  ③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

    영원한 죽음은 요한게시록 21:8에 기록한대로 둘째 사망으로 하나님의 面前에서 영원히 추방당하는 것이다.8)  ▿째 사망이란 악인들이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는 것이다(계 20:8, 14).  이 죽음에도 본질적인 죽음이 수반되고 있으며9), ▿ 죽음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그의 사자들에게도 임한다(마 25:41)10).

 

    이제 성경을 통하여 좀더 세밀하게 죽음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구약에 나타난 죽음

    초기시대에는 죽음과 죄악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였다.11)  ▿것은 곧 생명과 죽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일방적인 확신이 있었다12)는 ▿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생명과 죽음에 대한 내용을 집약해보면 생명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뜻하며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의 영향력이 더 이상 미칠 수 없는 단절된 상태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은 죄와 긴밀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죄성 여부에 따라 생명과 죽음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교 안에서의 삶을 죄를 멀리하는 생명의 삶이라면 반대로 하나님과의 단절은 죄와 결탁된 죽음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죽음13)이 ▿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죽음은 그 자체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1) 죽음의 허무성

    이런 의미에서 죽음이란 것은 구약시대의 사람에게 있어서 전혀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나는 이제 온 세상의 길을 떠난다”14)는 ▿구는 죽음에 대한 담담한 의사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는 죽은자를 위해서 슬퍼하는 의식과 장례식에 대한 애도의 기사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생명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죽음의 권세는 곧 하나님의 권세를 나타낸다.15)


  (2) 죄의 대가로서의 죽음

    구약에서는 죽음을  곧 죄와 벌로 연결시켜 생각하려 했다.  구약에 나타난 죽음의 관념은 아담의 죄 때문에 인간에게 주어진 벌로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은 죽음을 만드시지 않았으며 불멸불사 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아담의 불순종한 죄로 말미암아 이 죽음이 세상에 왔으며 이 세상에서 죄악을 범한 인간은 죽음이란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우리가 범한 죄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형벌인 것이다.  이런 내용은 구약의 지혜 문학가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악을 좇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자이며”(잠11:19)

    “어리석은 여자의 유혹에 자신을 내 맡기는자”(잠7:25-27, 9:18)라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죄인들의 경우에 죽음은 자연적인 운명으로서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귀한 선물의 성격을 지닌다.  결국 죽음은 이 세상에서 죄를 짓는 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지향할 의무를 포함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자기 생명을 이해하지 않고 신뢰와 감사로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성취하려는 자의 결과이다.16)

그래서 죄인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절망적인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3) 축복으로서의 죽음

    구약성서에서 이상적인 죽음은 노년기의 죽음으로 되어 있다.  한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죽음은 곧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죽음으로 창세기 25장 8절에서 그런 죽음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백발의 노년에 이르러 늙고 만족하게 산 다음에 죽었으며 자기 조상들에게 돌아가 함께 있었다.”

 

    이런 죽음은 성취된 인간의 마무리로서 누구나 죽어야 할 죽음이지 특정한 인간의 죽음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삭과 다윗과 욥도 만족한 죽음을 죽었으며 (창 35:29, 욥 42:16, 대상 29:28) 그들의 죽음은 음울한 결말이 아니라 평화로운 성취였다.  즉 고령과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행복한 성취일 수 있으며 풍성한 축복의 생애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구약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정리해 보면, 우선 죽음은 일반적인 자연스러운 경계선이고 생명의 유한성은 생명을 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 죽음을 누구나가 겪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17)

  

  2) 신약성서에 나타난 죽음

    신약성서에서의 죽음의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움 이전까지는 죽음이 구약성서의 사상 아래서 반영되어 왔다.  즉 죄의 결과로서의 죽음이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죽음을 얻게 된 것처럼 죽게 되었고 죽음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인류는 이러한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게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강조되었던 죽음이 실재 한다는 사실은 이제 객관적인 사실이 된 것이다.

 
    (1)  절망을 넘는 죽음

    신약의 죽음관은 희망의 죽음이다.  바로 뒤에 서술하겠지만 이 희망은 그리스도를 통해 전달된 부활의 희망인 것이다.  그레사케(Greshake)에 의하면

    “형제들아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사람에 봉사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다 소비하여 없애는 것이 죽음이며 생명을 버리는 길”18)이라▿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죄의 벌로서 조명된 구약시대의 죽음과는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수잔 데 디트리히(Suzanne De Dietrich)는 옛 하나님의 백성이 모세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것 같이 새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고 그에 의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종살이에서 자유로 옮겨진 것으로 본다.19)  ▿라서 신약의 죽음 이해는 이미 우리는 죄와 옛사람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또 다른 죽음이 우리를 예속하지 못하고 죽음은 희망을 가져오는 제 2의 출발로 말하고 있다.


    (2)  예수의 죽음

    예수의 죽음은 정치적 순교나 진리의 수호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시는 철저한 희생의 죽음이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또 우리를 대신해서 그를 죽음으로 내어준 죽음이다.20)  ▿봉랑 교수는 말하기를  “예수의 죽음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죽음”이라고 했다.  즉 그가 십자가를 맞이한 것은 인생의 허무와 좌절을 맞이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출발을 가지려는 1차적 행동이었다.  예수가 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가지 견해를 본다.

   

첫째는, “하나님은 죽은자에 대한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가 가진 신관으로 죽음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존하시는 모습에 대한 견해이다.

 

 둘째는, 유대인과 함께 했던 것으로 죽음이후 부활하게 된다는 예수의 확신있는 견해이다.  또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하실 때도 죽음의 비유를 사용하셨다.  죽은 자들의 장사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표현하신 부분은 생명의 부르심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남는 것은 죽음뿐임을 암시하고 계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의 죽음의 이해를 살펴보면, 요한복음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죽음을 예수와 맺은 인격적인 관계의 빛 속에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이미 바울에게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죽음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예수는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존재를 깊이 생각 하도록 요구하셨다.21)  ▿것은 이미 죽음이 신앙안에서 극복되었으며 지속하는 생명은 현존하는 실재22)임을▿생각케 하는 것이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죽음 앞에서 나타낸 죽음의 반응을 시련의 하나로 보고 있다.  나사로의 무덤앞에서 우심과 죽음 앞에서 인간의 죽음의 심각성을 강조해 주는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기독교인의 현세의 삶이 가볍게 취급되는 것을 막아주는 관점으로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의 모형을 새롭게 제시한다.  요 12:24이나 6:54는 밀알의 비유와 성찬의 비유로 자신을 희생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 한다면 예수와 함께 그날에 다시 살 수 있다는 삶을 향해 죽음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3)  바울 서신의 죽음의 이해

    바울서신에서는 죽음의 기원과 죽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이 있다.  나아가서 예수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세례의식과 부활로 증명되는 죽음의 극복성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생명과 죽음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속에 있는 피조적 한 실재로 보았다.  죽음이란 철저히 상대화되고, 죽음은 그 쏘는 가시의 권세를 잃게 된다고 하였다.23)

 

    첫째, 바울은 죽음의 기원과 죽음의 지배하에 있는 인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 땅에 죄가 들어 왔고 그 죄의 벌로서 죽음이 주어졌으며 온 인류는 죽음의 그림자에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24)  

 

   둘째, 바울은 그런 죄로 인하여 죽음에 놓인 인간을 위하여 직접 죽음을 취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형벌로서 자기의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그는 “율법 아래 나셨고”(갈 4:4) “죄 많은 인류의 모습을 몸소 취하신”(롬 8:3)것으로 온 인류와 유대를 같이 보시고 인류가 받을 형벌을 대신 지신 사랑의 죽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예수는 무죄하시지만 모든 인류의 죄 때문에 죽음을 맛보게 되는 것으로25) 그▿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결국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피조물의 죄와 죽음의 역사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셋째, 바울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죄와 죽음 사이의 관계를 세례의식을 통하여 표시하고 있다.  로마서 6:3과 빌립보서 3:10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는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죽음에 묻히며 그 분의 죽음에 합치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구원의 은총에서 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것은 구원의 은총에서 본 소극적인 면에서 본 신비스러운 죽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죽는 죽음은 바로 이 세상에서 죽음의 권세가 나타내는 모든 사물의 질서에 대한 죽음이다.  즉, 죄에 대해서와 우리의 옛 사람에 대한 죽음이며 육과 율법에 대한 죽음이고 세상의 모든 원리에 대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조직신학에서의 죽음

    성종현은 “기독교는 죽음으로 부터 출발한 신앙공동체이다.  십자가는 죽음의 사건이요 죽음에서 출발하여 죽음을 극복하고 생명으로 나아간 부활의 씨앗 사건이다”라고 말하면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삶에 대한 바른 이해로 나아가는 전제라고 말한다.26)

 

    성종현은 「장신원보」(1989.11.6)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리스도인의죽음”이라는 그의 글에서 몇몇 신학자들의 죽음 이해를 다루고 있다.  개혁자 루터의 죽음 이해는 죽음을 깊은 수면에 비유하면서 영혼의 불멸성을 지지한다.  한편 칼빈은 “만약 누가 오늘날도 경건한 신자가 죽은 후에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가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잠든 성도는 천상의 생명의 즐거움에 훨씬 더 가까이 가 있다.  그러나 완전한 영광은 우리의 구원의 마지막 날까지 유보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27)

  

    현대 기독교 신학자들의 죽음 이해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철저종말론

    본 이론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쿨만(O. Cullmann), 바르트(K. Barth), 엘러트(W. Elert), 퓨리(R. de Pury)와 융겔(E. Jungel) 등으로 이들의 죽음 이해는 완전 죽음설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구별되어서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은 전적죽음 또는 완전 죽음이라는 것이다.  즉, 죽음은 육체와 영혼이 죽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귀하고 선한 것, 생명 자체까지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28)  ▿만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믿어 온 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초대교회)의 본래적인 가르침이나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의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라고 한다.29) 

 

▿음과 부활은 그리스도 사건 위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희랍인들의 신앙인 영혼의 불멸 사상과는 양립할 수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30)  ▿만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나 바울이나 초대교회는 영혼의 불멸을 가르틴 것이 아니라 부활체와 영체와 죽음 후의 잠자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것을 후세의 교회가 희랍인의 사상인 영혼의 불멸론과 혼돈해서 그것이 현재까지 전달되어 왔다고 한다.31)  ▿바르트는 인간이 죽은 후 영혼이 떠난다거나 어떤 장소로 이동된다는 생각은 이방종교적 사고라고 비난한다.  이들에 의하면 영혼불멸설은 비기독교적이다.

  (2) 영혼불멸설

    본 이론은 여러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제2 서서 신앙고백, 소요리 문답서)에서 지지하는 이론이다.32)  ▿, 일반적으로 지지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죽음이해라 할 수 있다.  죽음은 육신과 영혼의 분리이며, 육체적 존재의 종말을 의미한다.33)  ▿떤이들은 영혼부멸 사상이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특히 18세기의 계몽주의시대에 활기띤 사상이다.34)  ▿러나 몸이 죽은 후에도 영혼 혹은 인간의 비물질적 측면은 계속 존재한다는 영혼불멸사상은 기독교에만 나타나는 고유개념이 아니다.  이사상은 고대 종교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에 철학적 특성이 가미되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A. 핫지(Archibald A. Hodge)는 그의 저서영 영혼불멸론의 논의들을 소개하였고, W. 쉐드(William G. T. Shedd)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35)  

    구약성서는 개인의 사후에 그의 영혼이 영원토록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그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여러 곳에 있다.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10:28로 볼 수 있으며, 요한복음 11:25도 죽음 후에도 그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