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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사랑68. - Herman Hesse.

Joyfule 2012. 11. 6. 10:33
 
  
 지(知)와 사랑68.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골드문트는 서서 작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최초의 청춘과 우정의 기념에 대한 기도로서 시작된 것은 
걱정과 우울한 생각의 폭퐁우로서 끝을 맺었다. 
지금 이곳에 그의 작품은 서 있다. 
이 아름다운 사도는 언제까지나 여기 남겨질 것이요, 
그 버들가지처럼 보드라운 젊음은 끝없이 계속될 테지.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 놓은 그는 벌써 그 작품과 이별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일이면 이미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의 손길에서 자라나 꽃을 피우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그에게 생활의 피난처나 위안이나 의미를 가져다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허무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오늘이라도 이 요한 상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곳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가 만들어야 할 형상은 그의 영혼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도 동경하던 조상, 인류의 어머니 이브의 형상에는 
아직도 좀처럼 그의 손이 미치질 못했다. 
이제부터 다시 천사의 입상을 문지르거나 장식을 새겨 가야만 하는가?
그는 용기를 내어 그 자리를 떠나 선생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서 니콜라우스가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올 때까지 그는 문에 서서 기다렸다.
  "골드문트, 무슨 일이지?"
  "제가 만든 조각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식사하러 가시기 전에 한번 들러봐 주십사 하구요."
  "가구말구, 지금 당장 가보지."
두 사람은 건너가서 실내가 더 환해 보이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니콜라우스는 이미 잊어버릴 정도로 이 작품의 진행 상태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골드문트의 일에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골드문트는 선생의 정색한 푸른 눈동자가 기쁨에 차오르는 것을 보았다.
  "잘했네."
  선생의 말이었다.
  "썩 잘됐어, 골드문트. 이 작품으로 이제 수습은 졸업일세. 
자네는 벌써 수업을 끝마쳤어. 
나는 자네의 이 조각품을 조합 사람들에게 보여, 
선생이 되는 자격증을 자네에게 내어 주길 신청하겠네. 
자네는 그만한 일을 해내었으니 말일세."
골드문트는 조합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선생의 말이 얼마만큼의 칭찬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알고는 기뻐했다.
니콜라우스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요한 상의 주위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말을 내뱉었다.
 "이 조상은 경건함과 밝음에 충만해 있네. 
엄숙하지만 그 속에는 행복과 평화가 깃들어 있어. 
사람들은 이 상을 보고 매우 명랑하고 쾌활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만들었으리리고 생각할 거야."
  골드문트는 빙긋이 웃었다.
  "제가 이 작품에서 모델로 취한 사람은 제 자신이 아니고 
저의 친구라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조상에 밝음과 평화를 가져다 준 사람은 그 친구이지 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만든 것은 사실 제가 아니고 그 친구가 저의 영혼 속에다 이것을 불어넣어 준 것입니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
  니콜라우스가 말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형상이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의 비밀이야.
 나는 겸손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해야만 하겠네. 
기교라든가 정성에 있어서는 자네한테 뒤지지 않지만 
진실성에 있어서는 자네의 작품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을. 
아마 자네 자신도 이런 작품을 두 번 다시 만들어 낼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 
결국 이것은 비밀이란 말일세."
 "이 조상을 완성되었을 때 저도 이것을 보고 
이런 것을 다시는 만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저는 며칠 후에 다시 유랑의 길에 오르려 합니다."
니콜라우스는 깜짝 놀라 못마땅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다시 준엄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세. 
자네에게는 지금부터 진짜 일이 시작되는 걸세. 
지금은 떠날 생각을 할 때가 아니란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좀 쉬게나. 
점심은 내 집에서 함께 하도록 하세.'
 점심때, 골드문트는 머리에 빗질을 하고 말쑥한 차림으로 스승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선생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는 것이 얼마만한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얼마나 드문 호의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상들로 꽉 차 있는 복도를 향해서 계단을 올라갈 때,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아담하고 고요한 방으로 들어갔었던 지난날만큼 
존경과 불안스러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