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미인이 진짜 미인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를 벌어 보겠다고
위스콘신에서 시카고로 '원정'갔던 적이 있다.
유학생 비자라서 정식 취직이 안 되었으므로 제일 만만한 품삯 노동 일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카고 중심가에서 무작정 북쪽을 향해 걸으면서
식당, 주유소, 가게의 문을 일일이 두들긴 적이 있다.
결국 시카고 북쪽의 경계를 넘어서 에반스톤이라는 접경 소도시까지 하루 종일 걸었고
마침내 다행스럽게 어느 부자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돕게 되었다.
숙식도 해결되고 돈도 벌고, 보통 횡재가 아닌 것이다.
나의 임무는 사지를 못 쓰는 불구 아이를 돌봐 주는 일이었다.
운동도 시키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샤워도 시켜 주는 일이다.
좋게 말하면 가정교사요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몸종' 노릇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똥 닦아 주는 일까지도 별 문제 삼지 않았는데 정작 괴로운 일이 하나 있었다.
일 주일에 한 번 그 아이를 재생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재생 병원에 가면 별의별 환자를 다 본다.
미라같이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화상 환자,
몸뚱이에 머리만 달랑 달려 있는 차 사고 환자,
달려 있긴 한데 제멋대로 경련을 일으키는 팔다리,
도무지 눈뜨고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담이 약해 뱃속이 울렁거려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재생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원들은 어쩜 그리도 한결같이 웃으면서 환자들을 대하는가.
세상에 천사가 따로 없었다.
내가 돌보는 아이의 담당 간호원은 대학을 갓 졸업한 아리따운 아가씨였는데
특별히 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일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간호원한테 수작도 걸어 볼 겸 해서 말을 걸었다.
"나는 단 일 분이라도 빨리 떠나고 싶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곳인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잘 참고 견디죠?"
간호원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여기서 웃을 수 있는 비결은 일 끝나고 집에 가서 한바탕 우는 거에요."
이것이 직업 정신이다.
직업 정신이 없는 사람이 이런 병원에서 매일같이 일해야 한다면 정신병자가 되고 말리라.
학력을 갖춘다는 것은 지식을 아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학력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낼 만한 지성을 쌓는 것이다.
학력을 갖춘 그 미모의 간호원은 지성적 미인인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지성미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디즈니 만화로 더 유명해진
〈미녀와 야수〉를 통해 배우지만 나는 어릴 적에 실제 '야수'를 만나 본 적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50 대 여자였는데 처녀일 당시엔 아주 인기있는 미인이었다고들 했다.
그런데 질투가 심한 약혼자가 얼굴에다 황산을 뿌렸다고 했다.
귀, 코는 녹아 없어졌고, 엉겨 붙은 눈꺼풀은 수술해서 조그만 눈구멍 하나가 뚫어져 있었다.
그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나는 매번 그 여인을 초대해서 한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게 하는 부모님을 많이도 원망했다.
세상의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그 여인은
그 외로움의 세월을 독서로 보냈는지 아는 것이 참 많았다.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어느 순간엔가
나는 그 여인을 똑바로 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추악한 모습에 적응되었던 걸까.
아니면 환한 서광처럼 그 여인의 지성미가 추악함마저 감싸줬던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