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화이야기

집시의 시간

Joyfule 2006. 9. 7. 01:13
 

  




1989년에 나온 쿠스투리차의 영화 <집시의 시간> (Le temps des gitans ; 원제 : Dom za vesanje '목 매달기 위한 집')은 이름만 들어도 왠지 詩적인 '집시'를 소재로한 한 편의 성대한 서사시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그들은 그러나 더이상 떠돌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빛나는 성과는 누추한 그들의 자유와 욕망을 묶어놓은 것이다. 영화 속의 집시들도 유고의 어느 마을에 정착한 집시들이다. 주인공 페르카니는 그의 '사랑스런' 칠면조를 키우면서, 다리가 불편한 어린 여동생과 난봉꾼인 삼촌. 그리고 주술사인 할머니랑 함께 판자촌에서 산다. 모든 쿠스투리차 감독의 영화 속에서 동물이 중요한 상징물로 등장하는 것처럼(<아리조나 드림>의 개와 물고기, <언더그라운드>의 원숭이 등, <겅은 고양이 흰 고양이>의 고양이와 거위, <인생은 기적이다>의 고양이, 개 등...) 이 영화에서도 더이상 날지 못하는 새 '칠면조'는 집시들의 운명을 닮아있다.

페르카니는 동네의 아자르라는 처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자르의 부모는 그가 가난한 집시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지참금을 가져와야만 하는 것이다. 페르카니는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그리고 다리를 저는 동생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길을 떠난다. 진정한 집시로의의 삶을 살게된 그는 아메드라는 악당의 수하에 들어가서 나쁜 짓을 일삼으며 나름대로 돈을 번다. 그렇게 돈을 벌어 사랑하는 아자르와 결혼도 하게 되지만 그는 더이상 예전의 순수했던 청년 페르카니가 아니다. 임신한 아자르를 의심하게 되고,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아이를 낳다 죽는다.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날아가는 면사포 장면은 이상과 현실의 닿을 수 없는 운명을 이야기한다.(쿠스투리차의 웨딩드레스나 면사포의 이미지는 <아리조나 드림>이나 <언더그라운드>, <검은 고양이...>등에 계속 등장한다.) 한편 동생이 수술을 하고 다리가 다 나았을 것이라 믿었지만, 페르카니는 어느 날 '앵벌이'로 일하고 있는, 여전히 다리를 저는 동생과 대면하게 된다. 그는 그의 어린 아들과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그만 죽음을 맞이한다. '운명'이란 이상스런 그물에 갇힌 한 집시의 이야기는 이렇듯 슬픈 결말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이 영화는 물론 슬프지만은 않다. 압도적인 화면들과 예의 정신없는 축제 분위기를 자주 연출하는 쿠스투리차 특유의 '유머'가 슬픈 운명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것이다. 


쿠스투리차의 일련의 영화들을 말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음악 또한 압권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강물에서의 의식은 그의 웅장한 음악과 함께 절대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 장면은 세계 각국의 영화 포스터로 이용되기도 했다.


1989년, 깐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 1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