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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생문(春生門) 사건 ① ②

Joyfule 2022. 4. 25. 01:11

    歷史 Essay 1175 ☞ 춘생문(春生門) 사건 ① 1895년 10월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친일정권(親日政權)에 포위되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국왕 고종(高宗)을 궁 밖으로 나오게 하여 친일정권을 타도하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이범진(李範晋) 이완용(李完用) 등 정동파의 많은 대신들이 계획을 세우고 언더우드(Underwood) 헐버트(Hulbert) 베베르(Weber) 알렌(Aalen) 등 외국 사절들의 묵인과 수십명의 중대장들이 합류하기로 했다. 1895년 11월 28일 새벽 남만리(南萬里) 이규홍(李奎泓) 등의 중대장이 800명의 군인을 인솔해 안국동(安國洞)을 경유해 삼청동(三淸洞)으로 올라가 춘생문(春生門)에 이르러 담을 넘어 입궐하려 하였다. 그러나 친위대장(親衛隊長) 이진호(李軫鎬)가 배신해 군부대신(軍部大臣) 어윤중(魚允中)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歷史 Essay 1176 ☞ 춘생문(春生門) 사건 ② 1895년 11월 28일 명성황후계(明成皇后係) 친미 친러파 관리와 군인에 의해 기도되었던 춘생문(春生門) 거사가 실패하여 체포된 수십명은 각각 사형 유배형 태형 징역 등의 처벌을 받는다. 이범진(李範晋) 이완용(李完用)을 위시한 정동파 인사들은 미국이나 러시아 공사관 또는 언더우드(Underwood) 알렌(Aalen) 등 선교사 집으로 피신한다. 일본은 이 국왕탈취사건에 많은 대신들과 서양인들이 관여해 있다고 기고만장하며 그를 기화로 히로시마(廣島) 감옥에 수감 중이던 을미사변(乙未事變) 주동자들을 전원 석방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동세력인 정동파(貞洞派)는 마침내 3달 후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俄館播遷)을 성사시켜 일시적이나마 일본세력을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