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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내향형

Joyfule 2015. 9. 3. 00:37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2) 내향형

 

일반적인 의식 태도

 

세계는 결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이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칼 융)

외향형의 사람들은 곧잘 모든 지각과 인식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 주관적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외향형은 객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주로 보지만 내향형은 객체의 인상이 주체 안에서 형성된 것에 의해서 사물을 본다. 내향적인 의식의 태도에도 외적인 조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지만 언제나 그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주관이다.

이것을 두고 자기애적, 자기중심적, 주관적, 이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순전히 외향적인 태도에서 오는 편견이라고 융은 비판한다.

현대와 같은 외향적 시대에서는 내향적 태도는 외향적 태도와 동등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1920년대에도 그랬는지 융은 주관적이라는 말은 외향적 시대 풍조때문에 거의 비난처럼 들린다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향적인 태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무기로 '단지 주관적'이라는 말은 주로 사용되나 그 말의 의미또한 충분히 검토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주관적 요소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와고 어느 민족에도 있어 온 것이므로 그만큼 보편적인 요소이다. 주관적 요소 또한 하나의 세계율이다. 이 위에 발을 딛고 선 사람은 객체에 근거를 둔 사람과 똑같은 지속성과 효용성과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 태도가 객관적 태도나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객관적 태도가 우연성에 의하여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주관적 태도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이기보다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내향형의 특징인 주관 중심경향을 절대시하면 글자 그대로 주관주의적,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게 되어, 외향형으로부터 단지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편협한 관점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상적인 경우의 내향적 태도는 원칙적으로 전승되어 내려온 정신구조에 순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자아가 아니라 자아 이전에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원형의 세계이며, 자아를 훨씬 능가하는 자기이다. 건전한 내향형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에 입각해서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며 자아에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향형은 자아를 자기와 혼동해서 뒤바꿀 위험을 늘상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아를 자기의 위치로 무제한 높인다. 그 사람은 자아의 판단을 극대화하고 그것의 절대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장점인 무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향형에게도 내향적 기능이 있듯이, 내향형에게도 외향적 기능이 있다. 이 둘이 적절하게 보상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자기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내향적 태도가 극도에 다다르면 무의식에는 의식과 반대되는 외향적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아는 이와 같은 무의식의 제물이 되거나 전술한 것과 같이 자아의 팽창으로 인한 엄청난 권력욕에 사로잡히게 된다(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동오의 군주 손권이 말년에 암군이 된 이유를 상기해보자).

 

내향형에게 객체가 왜 항상 결정적이어야 하는지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외향형에게는 어째서 주관적인 입장이 객관적 입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외향형은 내향형이 저만 잘난 줄 아는 이기주의자나 아니면 독선적인 공상가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외향형은 냐행형이 무의식적인 권력 콤플렉스에 영향하에 있다고 가정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런 외향형의 편견에 내향형은 어쩔 수 없이 걸려들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단정적이고 강한 표현을 통하여 마치 그가 모든 다른 의견을 처음부터 배척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든 객관적인 원인과 결과 위에 선험적으로 지배하는 주관적 판단에 대한 경직적인 믿음은 자기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도 충분하다(칼 융).

 

무의식의 태도

 

내향형이 자기 자신에 입각해서 사물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때 그는 이 세계와 인간 마음의 심층적인 세계를 깊이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엄청난 세계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향형이 자기의 전인격인 자기 자신에게 입각하지 않고 단지 의식의 중심인 자아에만 사로잡히면, 의식의 경향은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히게 되고 객체에 대한 관심과 고려를 무시하게 된다.

 

그결과 모든 객체와의 관련성은 무의식에 억압된다. 의식의 태도가 자기 중심적인데 비해서 무의식의 태도는 객체 중심이 되며 객관적 규준, 외부 세계, 타인 등 모든 객체에 대한 관심이 자기도 모르게 커져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모든걸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등의, 평소의 의식적 태도와는 모순된 특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나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내향형은 자아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객체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기의 성속에 숨어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진정한 의미의 은둔과는 다른 것은 그 사람은 무의식에 놓여 있는 객관 세계와의 관계를 아주 끊어버릴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객체로부터의 자극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권력욕, 지배욕의 환상을 자극한다.

 

극단적인 내향형 태도에 생기기 쉬운 신경즉은 신경쇠약증이다. 이런 사람들의 무의식을 살펴보면 수없는 권력환상을 볼 수 있다. 자아를 둘러싼 강대한 적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도망치는 꿈들이 나타난다. 꿈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대결하여 영웅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바깥세상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외계와의 접촉을 피하려 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 경우 이들은 객관세계에 있는 것, 구체적으로 타인, 현실, 정치, 법률, 경제, 행정, 단체와 같은 것들을 실지로 있는 것보다 지나치케 크게 평가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무의식 속에 있는 강대한 외향적 경향을 외부 세계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향형은 그런 면에서 내향형처럼 외부 세계를 과대평가하거나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내향형은 때때로 무의식적 충동에서 자아를 방어하기 보다는 스스로 그 충동에 내맡김으로써 무의식의 외향적 경향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내향적 학자가 상아탑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거나 정계에 투신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게의 내향형은 이런 외향적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을 일찍 지치고 허무해진다. 그 사람은 미구에 스스로의 외향적인 사회 역활을 포기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쇠약으로 그 역활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장점인 주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으면 마치 강으로 돌아간 물고기처럼 별안간 활기를 띠고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