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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외향형

Joyfule 2015. 9. 1. 23:57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1) 외향형

 

외향형 사람의 일반적인 의식 태도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의 대부분이 주체의 의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좌우될 때 이를 외향적 태도라 하고, 이런 태도가 습성화 되어 특징을 이루면 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이라 부른다. 누구나 살아가자면 외부 세계가 주는 자료들에 따라서 자기 태도를 결정하지만 외향형은 주로 객체에 자신을 맞추며, 객체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판단해 가는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즉 사는 법이 좋든 나쁘든 객관적인 사정이나 상황에서 오는 여러가지 요구에 직접 부합되는 것이면 그 사람은 외향적이다. 물론 외향형이라고 해서 주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보다는 객체에서 오는 힘이 의식의 태도를 결정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외계로 향하고, 내적인 것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 억눌린다.

 

도덕적인 행동 기준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요구, 즉 일반적인 도덕관과 완벽히 일치한다. 일반적인 도덕관이 바뀌면 자기의 행동 기준도 바뀐다. 그 때문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러므로는 그 사람은 내향형인 사람의 입장에선 곧잘 기회주의자, 지조 없는 사람, 뼈대가 없다. 비겁하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삼국지의 경우를 들면 조조와 같은 인물이 해당될 것이다). 물론 외향형의 입장에서도 내향형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외향형에게 내향형은 이해할 수 없는 고집불통, 시류를 외면하는 독선가, 이기주의자 라는 비난을 듣기 쉽다(조조의 입장에서 유비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보다 높은 견지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반드시 어떤 경우에나 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 비정상적이면 외향형의 태도는 곧바로 환경의 비정상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는 사회에 함께 보편적인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행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은 사회와 꼭같이 멸망하게 된다. 여기에 외향형의 제약이 있다고 융은 말한다.

외향형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극단화될 때 자기의 주체를 소흘히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관적인 사실로서 외향형의 사람이 가장 소흘하게 되는 것이 신체이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 너무 외적이고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향적인 태도가 너무 지나치면 신체가 고통을 받는데, 대게 외향형은 신체 감각의 이상화가 눈에 띄게 진전될 때에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외향형은 성격상 모든 것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보는 버릇이 있으므로 신체 증상도 그렇게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외향형은 지나치게 객체에 순응하는 나머지 객체에 완전히 흡수되어 주관적인 것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이런 주관적인 것은 의식에서 배제되어 분방한 환상작용으로 무의식에 억압되어 의식을 괴롭힐 수도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남자다운 남자가 갑자기 건강에 대하여 염려하기 시작하고 신체기관의 조그만 이상에도 놀라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외향적 태도가 너무 극단으로 치달아 이제 다른 것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게 이른게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융은 외향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신경증은 히스테리성 노이로제라고 했다. 히스테리의 특징은 항상 남의 관심을 끌고 주변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외향성이 극도로 과장된 것이다. 또한 히스테리성 성격으 다른 특징은 극도의 환상작용인데, 이 때문에 히스테리 환자는 곧잘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받거니와. 이는 의식의 외향적 태도를 보상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외향형 성격인 조조와 손책은 말년에는 극도의 히스테리와 환상작용에 시달렸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의 태도

 

외향저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주관적인 것을 무시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외향형은 항상 적절한 보상을 내향적인 작업을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인 객관적 현실 참여가 건설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과장되면 외향적이 아닌 것은 모두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종국에는 무의식의 엄청난 압박이 의식에 일어나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무의식은 극단적인 내향적인 경향을 띄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내향적 경향은 분화 발달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억압이 오래 계속될수록 미분화되고 원시적이고 고착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내향적 경향은 무의식의 가장 본능적인 충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전한 주체적 판단이나 이에 입각한 행동력이 점차 마비되고, 유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성향이 차츰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완전하면 완전할 수록 무의식적인 태도는 유아적이고 고착적이다." 극대화된 객체지향성은 미구에는 극도의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거나 욕망에 지배당할 바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때 그 사람의 무의식적 경향은 단순한 어린애 같은 유치함을 넘어서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혼적 욕망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

 

외향형은 현재와 바깥 현실에 집착하는 나머지 과거와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옜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뭐라 했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대표적인 외향형이다. 미국의 프로그머티즘은 상당히 이와 같은 외향성을 띤 사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적으로 끊어버린 과거와 역사는 의식에서는 없어질 지 몰라도, 무의식에서 계속 연명하며 그 개인을 포함한 전인류의 과거가 하나의 요청으로서 의식의 현실주의와 대립하게 된다. 이 점에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전연사와 인류의 역사를 마음속에 지닌다. 역사는 한상 그 현명한 운영을 절실히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것'에서 발언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체험되어야 한다. 객체에의 전적인 동화는 그러므로 억압된 소수자인 '지금까지의 것'의 원초적인항의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외향형의 의식적 태도에 상반되는 무의식적 경향이 적절한 대상의 정도를 넘어서서 의식에 대항하여 적대적인 반장용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모순된 경향이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 사람의 행동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 공정무사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항상 남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때때로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해치우려는 아집과 횡포를 부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경우 겉으로만 보아서는 그 사람의 어느 것이 의식적이고 어느 것이 무의식적 태도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누가 무슨 유형에 속하는지 행동으로만 보아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