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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 2. 칼, 대학에 가다

Joyfule 2015. 9. 14. 23:37

 

 

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2. 칼, 대학에 가다

 

융은 대학교에서 토론단체인 Zofingia Club의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융은 클럽의 활발한 지적토론에 몰두했고, 그를 매혹시킨 주제, 바로 인간의 영혼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철학자 칸트는 영혼의 지향방향이 두 가지이며 , 하나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적인 세계로 향해 있다고 천명한 바 있었다. 이러한 칸트의 사상은 융 자신의 이중성(제 1 인격과 제 2 인격의 세계)과도 부합하였다. 만약 칸트가 옳다면, 시간과 공간의 과학적 정의를 왜곡하는 여러 초과학적인 현상들을 통해 우리는 영혼세계에 대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융은 생각했다. 따라서 초심리학(parapsychology, 정신감응, 투시력 등의 초자연적 심리현상을 다룬다 )과 최면, 강신술, 투시, 텔레파시와 같은 현상들을 필히 연구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 어떤 길을 택해야할까? 그 때 전광석화처럼 , 정신의학psychiatry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융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전까지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신의학이 바보 같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크라프트 에빙Kraft-Ebbing의 저서에서 융은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하고 흥분하였다.

 

Krafft-Ebing, Richard, Freiherr von
(1840~1902)
성의 정신병리학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독일의 신경정신학자. 독일과 스위스에서 수학한 후 32세의 나이에 스트라스부르에서 정신의학교수로 임명되었다. 정신이상에서 유전의 역할과 변태성욕에서부터 간질, 진전마비, 편두통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었다. 그는 매독과 부전마비(말기 매독에서 간혹 발생하는, 광범위한 뇌조직 파괴로 인한 정신질환)간의 관계를 확립하고, 최면술에 대한 실험도 행하였다. 성적 정신이상에 대한 파격적인 연구결과를 담은 저서 ' Psychopathia Sexualis (1886)'로 오늘날까지도 잘 알려져 있다.
"정신의학자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신질환에 걸린 환자의 인격은 물론 , 자기 자신의 인격 전체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게 된다. 다시 말하여 정신의학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학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늘 찾아헤맸으나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인 현상과 영적인 현상 모두에 공통되는 경험적 분야이다. 결국 자연법칙과 영혼의 충돌이 현실화되는 지점을 찾아낸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된 당시에, 정신의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을 확고히 해주는 여러 가지 특이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 같은 소리가 났다. 세상에, 멀쩡히 있던 식탁이 정확히 한가운데에서 두조각으로 쪼개져버린 것이다. 또 몇 주 뒤에는 부엌 찬장에서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찬장을 열어보니 빵을 써는 칼에 달린 쇠칼날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융의 어머니는 이런 징조들이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믿었다. 융도 동의했다. 그는 어떤 강령회에 참석해왔는데, 거기에서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융은 그 강령회에 2년 이상 참가하였다. 영매는 그의 열다섯 살난 사촌 헬렌Helene Preiswerk이었다. 그리고 故 사무엘Samuel Preiswerk이 그녀의 영적 수호자였다. 몽환의 상태에서 헬렌은 점차 원래의 그녀와는 다른, 조용하고 세련된 성격을 가진 이벤느라는 여성이 되어갔다. 헬렌은 또 수많은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종종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도 등장하였다.

 

그 당시에 융은 거의 깨닫지 못했지만 , 헬렌은 사실 사춘기소녀 특유의 감성으로 융에게 홀딱 반해있었다. 그래서 강령술에서의 많은 강신이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행해졌던 것이다. 그녀가 그를 속인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융은 강령술에 발길을 끊었다.
현시대의 우리가 보기에는 , 이러한 초자연적 경험들과 강령술이 융이 정신의학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호해 보인다. 그러한 초자연현상과 ‘ 정신의학 ’ 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길래 ?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정신의학과 융이 학자로서 첫 발을 내딛던 1890년대의 정신의학은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주지하자.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다는 것은 융의 동시대인들에게 심령연구, 즉 ‘ 강신술 ’ 현상에 대한 연구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과 밀접히 관련된 것처럼 비춰졌다. 심령연구모임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은 인간의 정신이 신체(물질)에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1882년 설립되었다.

 

 

 

3. 무의식의 발견과 프로이드

 

Charcot, Jean-Martin
(1825~1893)
현대 신경학에 대한 창시자 중 한 명이자 가장 위대한 프랑스 의학교수겸 의사 중 한 명. 1853년 파리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3년 뒤 중앙병원의 의사로 임명되었다. 1860년부터 93년까지 파리대학의 교수로 재임했으며, 그곳에서 살페트리에르 병원과의 오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병원에서 1882년에 그는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신경학클리닉을 개설했다. 유능한 선생으로서 그는 각국의 학생들의 존망을 받았다. 1885년에 그에게 배웠던 학생 중 한 명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였으며, 프로이트가 신경증의 심리적 근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바로 히스테리의 신체적 기원을 발견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샤르코가 최면술을 연구했던 것이었다.
저서로는 '신경계의 질환에 대한 강의 Lecons sur les maladies du systeme nerveux, 5 vol. (1872-83)', '살페트리에르에서의 화요일 강연 Lecons du mardi a la Salpetriere (1888)' 등이 있다.

 

인간의 잠재의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의식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무의식 Unconscious이라는 영역에 대하여 많은 연구결과가 정립되었다. 예를 들어 파리 살페트리에르 정신병원Salp etriere 의 유명한 신경학자였던 샤르코 Jean-Martin Charcot(1825~1893)는 육체가 마비된 상태에서도 무의식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최면술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마음 , 혹은 정신적 에너지 mental, or psychical energy의 역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의 공통된 의견은, 무의식이 의식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기 시작한 순간 무의식은 마음의 접근불가능한 영역에 갇혀 버렸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무의식에 대한 샤르코의 유물론적 접근은 1880년대의 또다른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 psychoanalysis을 발전시켜 융이 그를 만나기 수년 전에 이미 무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주요한 통로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최면이라는 방법 대신 ‘ 자유연상기법 free association method ’ 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환자는 침상에 편안하게 누워서 뭐든 떠오르는 것을 치료자에게 말하고, 치료자는 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환자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환자는 정신적 상처를 입었던 사건과 연관되어 잊혀졌던 기억들을 회상해내게 된다.

그러한 회상을 일컬어 소산 abreaction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 트라우마가 일단 회상되고 나면 그로 인해 생겨났던 신체적인 질환까지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였다. 이와 비슷한 선상에서 망각, 말실수 등과 더불어 꿈에 등장하는 상징도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로 간주되었다.

이같이 무의식의 미스터리에 대해 非강신술적인 접근을 해보인 프로이트의 이론이 20세기 심리학에 커다란 충격을 주긴 했지만, 강신술은 여전히 심리학의 중요한 일부로서 19세기 말까지 계속해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임상 정신의학에 대하여 유물론적인 교육을 받은 융 자신도 늘 심령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후에 보게 되듯이,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는 확신에 찬 유물론자인 프로이트와 갈등을 빚게 된다.

 

한편 샤르코의 제자였던 피에르 쟈네 Pierre Janet는 ‘ 다중인격 ’ , 즉 해리성 인격장애의 무의식 상태를 연구했다. 그는 환자 레오니를 밀접하게 연구하면서 그는 최면상태에서 치료자와 ‘ 잔여기억 residual memory ’ 의 표현이나 텔레파시라는 수단을 통하여 이야기하는 존재가 바로 무의식이었음을 밝혀냈다.

 

융의 사촌이자 영매였던 헬렌 역시 이벤느를 위시한 다른 인격들을 창조했었음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 융은 1902년 박사논문소재로 헬렌의 강령회를 채택했다. 이벤느로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그녀의 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융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무의식에서 분리된 부분이 환각의 형태를 통해 다른 인격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강령술에서 그러듯이 의식적인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무의식은 의식적인 태도를보상compensate할 수 있다. 즉 무의식의 창조물에는 의도성과 목적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적 에너지는 목적적인teleological 기능을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