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C.G. Jung

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Joyfule 2015. 9. 13. 23:21

 

 

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1. 영혼을 찾는 소년, 칼

 

칼 구스타프 융은 다른 아이들과는 어딘가 달라보이는 , 다소 우울한 성격의 아이였다.

아홉 살이 될 때까지 형제나 자매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 융은 바위 위에 홀로 앉아 공상에 잠기곤 했다.

지금 바위 위에 앉아있는 이 존재가 나일까 , 아니면 가 앉아있는 바위가 나일까?
바로 이 바위가 융의 일생 동안 그의 이론에 영향을 끼친 , 그만의 비밀 바위였다.
Jesuit
예수회 수사를 의미함.
예수회란 1540년 성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가 F.사비에르 등과 함께 파리에서 창설한 가톨릭의 남자 수도회.
그는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의 케스빌에서 스위스 개혁파 복음주의 교회성직자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매우 종교적인 가정이어서, 외조부는 물론 여덟 명의 숙부 또한 성직자였다. 그래서 융은 어린 시절 교회와 묘지를 운동장삼아 놀았는데, 이따금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검은 상자를 운반해와서 ‘ 예수 ’ 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
그는 심지어 아버지가 ‘ 제수이트Jesuit ’ ( ‘ 예수 ’ 와 비슷한 발음이 난다 )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는데, 그것은 어린 융이 듣기에 ‘ 뭔가 대단히 위험한 것 ’ 을 뜻했다 . 소년 융은 “ 이 ‘ 예수 ’ 는 신뢰할 수 없어 . 그는 사람들을 데려가서 구멍에 넣어버리잖아! ” 하고 생각했다 .
융은 그의 지적인 삶이 세 살 때 꾼 꿈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 꿈속에서 그는 땅에 난 깊은 구멍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붉은 카펫 위에 금빛 왕좌가 있고 그 위에 이상하게 생긴 것이 앉아 있었다. 칼이 보기에 그것은 큰 나무둥치 같은 생김새에 사람의 살갗과도 같은 질감이 났다. 그 때 어디선가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것은 ‘ 식인종 man-eater ’ 이란다 ! ”
그리고 그는 공포에 질려 잠에서 깨어났다.

수 십 년 후에 융은 가톨릭 미사의 상징체계에 숨어있는 식인풍습의 모티프를 발견하게 되었다 .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꿈에 나타났던 ‘ 식인종 ’ 의 상징을 이해하게 되었다 . 그는 ‘ 어둠의 제왕으로서의 예수인 제수이트와 그 남근상이 같은 것이었음 ’ 을 깨닫게 되었다 . 그들은 자연에 내재하는 어둡고 창조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동안 탐구하고자 했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융이 정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신-하느님이었다. 신은 그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죄로 가득찬 생각들을 하게 함으로써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융은 다음과 같은 환각체험을 했다.
“나는 지옥불에 뛰어들기라도 하듯이 나의 모든 용기를 그러모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날뛰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러자 내 앞에 거대한 사원과 그 위에 펼쳐진 푸른 창공의 영상이 나타났다. 신은 세상을 굽어보며 하늘의 금빛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왕좌 밑부분에서 거대한 똥이 떨어져내려서 사원의 빛나는 새 지붕을 박살내고, 대성당의 벽을 산산이 깨부수었다.”

 

자신이 본 영상에 대해 당황하는 대신, 융은 이 환상을 영광의 징표라고 여겼다. 그는 아버지나 숙부들이 예배 중에 설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신의 일면을 보았던 것이다. 한편 어린 융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비밀이야. 이런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니까. 사람들은 신이 자신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내게 나쁜 짓을 하도록 강요하고 혐오스러운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했던 것을 모르고 있어!’ 
갑자기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공허와 위선으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비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를 뒤졌으나 허사였다.

 

지친 융은 버릇대로 그의 바위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서서히 머리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스스로 답을 깨치게 되었다. 융은 자신의 내부에 뭔가 영원한 것이 있음은 물론, 그 바위처럼 어떤 ‘다른’ 존재도 자신 안에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존재는 그 비밀을 알고 있어. 아니, 그 존재가 바로 그 비밀 자체야. 왜냐하면 그것은 수천년이나 나이를 먹었으니까.”

바위가 그를 혼란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 것이다.
이같은 친가 쪽의 스위스 신교전통으로 인한 영향 뿐 아니라 , 융은 다른 종교적 영향도 함께 받으며 성장했다. 존경받는 목사였던 외조부와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목사이긴 했지만 외조부는 완전히 다른 세상, 즉 영적인 세상과 접해본 사람이었다. 매주 그는 둘째부인(융의 외조모)와 그의 딸(융의 어머니)이 듣는 가운데 고인이 된 첫번째 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융의 어머니는 외조부가 설교문을 작성하는 동안 외조부 뒤에 서서 나쁜 영혼들을 쫓아내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융에게 들려주었다.

 

영혼과 접촉하는 것은 스위스의 시골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일이 아니었지만 , 융은 그의 어머니를 어둡고 예측할 수 없는 ‘ 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뿌리내린 ’ 존재로 느꼈다. 그녀는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었고 사람을 놀래키는 야릇한 존재였다.
스위스 신교와 이교적 영성주의 spirituality라는 이러한 이중적인 종교적의 영향으로, 융 자신 또한 이중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인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 제 1 인격 ’ 과 ‘ 제 2 인격 ’ 이라고 불렀다 .

제 1 인격 : 일상적이고 평범한 세계와 관련된 인격. 다혈질이며 약간 유치하고 규율을 무시하는 인격이다. 그러나 학문적인 성공, 과학에 대한 탐구, 교양있고 존경받는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있다.
제 2 인격 : 더욱 다루기 힘든 인격으로, 그의 바위나 신의 은총에 대한 비밀과 동일시된 ‘ 타자 ’ 이다 . 제 2 인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고,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저 옛날로부터 전해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융은 어머니의 초자연적 세계와 제 2 인격 차원을 연관지었다. 어린 시절 그는 검은 프록코트와 부츠를 착용한 작은 남자상을 조각해서 조약돌과 함께 필통에 넣어 다락방에 있는 금단의 장소에 숨겨놓았다. 때때로 그는 비밀의 메시지를 담은 종이조각을 필통 안에 집어넣기도 했다. 이러한 단순하고 원시적인 행동을 통해 그는 제 2 인격 세계와의 접촉을 느꼈다. 훗날 융은 정신분석의 과제는 환자의 정신적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manuel Swedenborg
(1688~1772)
스웨덴의 자연 과학자·철학자·신학자로, 초기에는 자연 과학을 연구하였으나, 심령적 체험을 겪은 뒤 과학적 방법의 한계를 깨닫고 신비적 신학자로 활약했다. 철학적으로는 무한자를 모든 피조물에 존재하는 힘과 생명으로 보고, 그 무한자를 신으로 규정.
성부·성자·성령이라는 3위격의 통일신으로서의 전통적 교리를 부정했다.
《천국의 놀라운 세계와 지옥에 대하여》를 써 유명해졌는데, 이는 《묵시록》의 새로운 해석으로서 그의 학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 밖의 저서로 《자연 사물의 원리》 《영혼 세계의 질서》 《새 예루살렘》등이 있다.
한편 융은 사춘기 내내 제 1 인격과 제 2 인격의 세계를 융합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열 두 살 때에 ‘ 신경증neurosis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 고 회상한다 . 그는 원인 불명의 졸도를 여러 번 하여 학교를 자주 빠지게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이것이 완벽한 ‘ 거짓 행동 ’ 이라고 여기고 걱정했다 . 의사들은 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고, 아마도 간질발작일지 모른다고 여겼다고 한다.
융은 이러한 기절발작을 의지력으로 이겨냈는데 , 그 후 또 다른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자신이 안개의 벽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느낀 것이다.

이제 알겠어 ! 나는 지금부터 나 자신이 된 거야!

 

이제 융은 점점 더 자신의 제 1 인격, 그리고 새롭게 발견된 자아관념과 동일해져갔다. 제 2 인격의 세계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긴데다 매우 강건한 젊은이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신체적 특징들과 함께 크고 우렁찬 웃음소리, 삶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 등을 갖춤으로써, 그는 풍채 당당하고 -특히 여성들에게-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게 된다.

 

젊은 시절 융은 과학과 철학에 강한 흥미를 느꼈으며 , 바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의학을 공부했다. 융이 스무살이던 대학 2학년 시절, 그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로 인해 공부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던 융은 숙부에게 돈을 빌려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융은 학창 시절을 만끽했고 , 의학과 함께 철학, 특히 칸트와 니체의 철학에 푹 빠졌다. 그는 스베덴보리 역시 탐독했고, 관념론과 초과학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