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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연구

Joyfule 2016. 5. 13. 12:07

 

 

 

코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연구

 

2. 마호메트의 삶과 코란의 내용과의 관계

 

코란은 모두 마호메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코란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마호메트의 삶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코란의 내용과 형식은 그것이 쓰여진 시대를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삶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록하겠다. 마호메트는 A.D 570년경에 '코라쉬'족 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으며, 그의 모친인 아미나(Amina)는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처음에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으나 그 할아버지 마저 8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다음에는 숙부 밑에서 컸다. 조실부모한 어린 시절의 마호메트는 이처럼 고아로 성장하였다.


코란에는 자주 고아에 대한 보살핌과 무슬림이 형제애를 거듭거듭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이처럼 그가 고아로 자란 탓일 것이다.
그리고 장성 했을 때 시리아로 향하는 무역 대상의 일행이 되기도 했다. 그가 메카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에 접촉하게 된 것은 이렇게 하여 추진되었고 그리고 그 유대교와 기독교 그의 후기 종교적 발전에 포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25세가 되던 해에 그는 카디야(Khadija)라고 불리는, 한 부유한 과부와 결혼했는데, 그녀를 위해서 그는 무역 사절단(trading missions)중에 대리사로서 활동해 왔었다.
그의 결혼은 그에게 안정과 지위를 가져다 주었다. 안정과 지위는 사람들과 어떤 일들을 처리하는데 대한 좋은 수완과 판단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의 생애 후반기에 그가 자신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도하도록 소명을 받았을 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자신이 특수한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소명감을 확신시켰던 환상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인 가브리엘이 그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코란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처음에 그 계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 지 몰랐기 때문에 그는 심한 혼란에 빠졌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메카의 사람들은 마호메트를 점장이로 간주했었다. 당시에 카힌이라고 불리우는 점장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슬람 이전에 이교성소의 수호자였고 흔히 초자연적인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식되었다.

 

그가 살았던 당시의 메카는 부유한 상업도시로서 인도양과 지중해 사이의 중계무역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메카의 시민들은 그들의 관습과 제도 속에서 아랍 고유의 단순성을 유지하면서 아랍의 부족민들이나 로마 관리들을 대상으로 행하는 상업적인 거래나 외교 관계 속에서 사람과 도시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메카는 어두운 면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부유한 상업도시에서 발견되는 악들, 즉 부와 빈곤의 극단성, 노예와 피고용인들의 지하세계, 사회 계층의 장벽 등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호메트로 하여금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강하게 질타하도록 한 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사회 혁명을 가르치는 것으로 폭발하지 않았고, 그 대신 종교적 통로를 통하여 강하게 나타났다. 즉 그 열정은 자신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하나님의 심판이 왔다"라는 셈족 예언자들의 오래된 경고를 선포하기 위해 소명 받았다는 깊고 강건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의 확신과 각 부족들의 불신앙 사이에는 저항이 생겨 부딪치게 되고 마찰이 일어났다. 메카 사람들이 행했던 저항은 그들이 갖고 있던 보수 사상이나 종교적 불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치나 경제적 요인이 더 큰 원인으로 보인다. 그들은 마호메트의 가르침이 그들의 경제적 풍요로움에 가져올 효과를 두려워했고, 특히 마호메트의 순수한 일신론이 그들의 경제적 자산에 해가 될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 것이다.


그를 하나님의 예언자로 소명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그의 인생이 변화되기 전부터 다른 이에게 충고와 도움을 주는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던 것이 확실한 듯하다. 점차로 그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그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호메트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핍박이 일어나자 그들은 새로운 종교를 형성시킬 다른 장소로 이주를 해야만 하였고 그들은 메카를 떠나 야드립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이동은 이슬람교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인은 이 이주의 날짜를 헤지라로 선포하여 이슬람 시대의 시작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들만의 연대 표기로 AH(After Hijira)를 사용하였다.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을 환영했던 메디나 사람들은 그를 보호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들도 그의 신도가 되었다. 그들은 메카에서 이주한 이주자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안사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 마호메트의 사역은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슬람교는 전쟁을 거치면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아라비아 전체 반도의 실제적인 통치자로 부상하게 된다.


예언자 마호메트는 통치자로서의 권위와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함께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지지자를 얻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은 폭력과 설득이었다. 그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경을 인정하면서도 십자가의 고난과 형벌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마호메트의 사역은 궁극적으로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서 확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를 건설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았으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일생을 통하여 두가지의 큰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다면 첫째는 유일신 알라를 포교하는 일이고 둘째는 움마라고 부르는 알라의 회중을 세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