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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마음 속의 교묘한 죄.6

Joyfule 2021. 4. 23. 23:33


 

  

  크리스천 마음 속의 교묘한 죄.6

 - 제리 브리지스(Jerry Bridges) 지음 오현미 옮김

 

성령이 역사하시는 방법

 

성령이 어떤 식으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지는 우리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다. 우리는 그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닮은 형상으로 우리를 점점 더 변화시키신다는 성경의 증거를 믿고 받아들일 뿐이다(고후 3:18). 성령에 관한 이 위대한 진리를 적극적으로 믿을 필요가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묘한 죄를 우리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성령을 따라 행할 때 비로소 이 죄가 점진적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이기심과 조급함, 비판적 태도 등이 사실은 죄라는 것을 알게 해주신다. 성령께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쓰인 성경을 통해 우리를 꾸짖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딤후 3:16). 또한 말씀을 접할 때 우리 양심이 밝아지고 죄에 민감해지게 해주신다. 내가 알기로 심지어 성령께서는 나의 교묘한 죄가 어떤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났는지 기억나게 해주시고, 그 행위를 출발점 삼아 내 삶 속에 있는 죄의 패턴을 지적해주기 시작하신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성령의 중요 사역 가운데 하나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의 어떤 특정 패턴이 죄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만 죄를, 특히 우리 크리스천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용인되는 죄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죄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3절에서 바울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권면한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2-13절에서는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십시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결단하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행하라고 촉구한다. 바울은 하나님, 추측컨대 성부 하나님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대행자인 성령을 통해 역사하신다.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면,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성령을 의지하면 교만과 조급함, 비판적 태도 등을 처리할 수 있다.그러므로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발전이 아무리 더디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때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시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역사에 더하여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단독적으로 역사하시기도 한다. 즉, 우리의 의식적인 개입 없이 홀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13장 20-21절의 축복의 말에서 하나님을 "그분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특별한 진리가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되어야 한다. 죄와의 싸움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어 보이는, 더할 수 없이 참담한 날들 가운데서도 우리는 성령께서 여전히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 죄 때문에 성령께서 슬퍼하실 수도 있지만(엡 4:30), 그분은 그 죄조차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데 들어 쓰셔서 더욱 간절히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르짖게 만드신다.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성령의 또 한 가지 역사는,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환경을 조성하시는 것이다.우리 몸의 근육이 운동하지 않고는 힘을 쓸 수 없는 것처럼,우리의 영적 생명도 힘든 도전을 주는 상황이 아니면 성장하지 않는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화를 내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많은 계기들이 생길 것이다. 쉽게 걱정에 빠지는 사람에게는 걱정이라는 죄를 접하게 되는 많은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여 범죄하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지만(약 1:13-14), 우리 삶에 어떤 특정한 상황을 조성하시거나 허용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있는 특징적 죄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내가 가진 교묘한 죄가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죄의 활동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환경을 주권적으로 통제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성경에 이 사실을 확증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진리를 가장 명시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부분은 예레미야애가 3장 37-38절이다. "주께서 그것을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누가 그것을 말할 수 있고 일어나게 할 수 있는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가?"

 

이 말씀은 여러 가지로 적용할 수 있지만, 여기서 지금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모든 상황과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며, 그 상황과 사건들을 다소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용하셔서 우리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점점 더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8절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힘들 때 찾아가 위로를 받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 이 말씀이 여러 상황에서 우리에게 격려가 되기는 하지만, 바울은 사실 우리의 영적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바로 다음 절에서 설명되기를,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갖가지 환경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욱 예수님을 닮은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뜻이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교묘한 죄를 깨닫고 자각하게 만드신다. 그리고 그 죄를 죽일 수 있게 하신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리고 삶의 여러 가지 환경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죄를 처리하는 연습을 시키신다.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몫이 있다. 우리에게는 삶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교묘한 죄를 죽여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하나님께 맡겨놓고 뒷짐지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단 한 치도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단순히 우리를 돕기만 하시는 게 아니라 영적 변화의 방향까지 지도하신다. 성령은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하시며, 이 책 또한 성령의 도구가 되어 우리의 교묘한 죄를 드러내고 처리하는 데 쓰임받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 안목에만 의지하여 죄를 볼 수 있게 하시지 않으며, 우리 능력으로만 그 죄를 처리하게 두시지도 않는다.

 

어거스투스 토플레이디의 찬송가 가사가 맞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성령의 신비롭고도 아주 현실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를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건져내신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삶 속에 있는 교묘한 죄를 상세히 살펴볼 때 공연히 위축되지 말기를 바란다. 기억하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 죗값을 치르시고 그 죄에 대한 용서를 얻었다는 것을. 그리고 성령을 보내사 우리 안에서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죄를 처리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성령께서 내게 능력을 주셔서 삶 속에 숨겨 있는 은밀한 죄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죄는 속임수에 능하다(엡 4:22 참조). 죄는 나에게 특정한 죄가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혹은 죄가 있어도 별로 심각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게 만든다. 오직 성령만이 죄를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 보이실 수 있다.

 

이제 겸손해질 준비를 하라. 성령께서 나에게 이기심의 죄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시던 때가 기억난다. 그전까지는 남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명백하고도 지나친 이기심만이 이기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 역시도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게 이기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건 참 굴욕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 곧 자기 죄를 마주하고 그 죄로 인해 애동해하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또한 의에 주리고 갈급한 자들, 곧 자기 삶 속의 죄가 죽고 그 대신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에게도 복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 5:4, 6, 갈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