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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Joyfule 2022. 10. 12. 01:08





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네 살에서 열 네 살 나던 해까지 나는 엘베강에서 가까운 한 조그마한 읍에서 살았는데 나의 아버지는 그 곳 교구의 주임목사이자 감독이었다. 독일의 여러 지역의 소읍들에 있어서 전형적인 주민은 영농주민(farmer-burgher) - 읍에 거주하면서 제법 큰 농토를 경영하는 대체로 부유한 읍민 - 이었다. 이런 류의 소읍들은 순전한 시골 풍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집들은 딸린 마당과 곳간,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들까지는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가축과 양들은 아침저녁으로 거리를 떼지어 지나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중세시대와 마찬가지로 낡은 시민적 권리와 전통을 가진 순수한 소읍이었다. 마을 성문은 집과 상점이 빽빽이 늘어선 좁은 도로를 향하여 열려 있었다. 밤의 숲이라든가 침묵에 잠긴 들판, 그리고 졸린 듯한 마을이 주는 무서운 느낌에 대조적으로 분주하고 소란한 가운데 어딘가 칩거적이고 방어적인 마을 생리가 나의 어린 시절의 영상 중에서 가장 이르고도 인상적인 것의 하나다. 베를린을 방문하자 철로 자체가 내게는 반쯤 신화적이 것처럼 충격적이었는데 그 방문은 그 기억을 생생히 해 주었고 또 나로 하여금 때때로 큰 도시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동경을 갖게 하였다. 그것은 그 후 여러 가지로 내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 영향은 나의 글 "기술의 합리성과 신화성(Logos und Mythos der Technik)" 및 "상징으로서의 기술도시(Die technische Stadt als Symbol)"에 철학적으로 표현되었다.


도시에 대한 이 같은 끌림은 나로 하여금 기술 문명에 대한 낭만적 배척에 빠지지 않게 하였으며 지적, 예술적 삶의 비판적 측면의 발달에 있어서 도시가 가지는 중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그 후에 나는 대도시에서만 가능한 움직임이었던 보헤미안주의에 대해 생동적이며 동정적인 이해에 도달했다. 나는 또한 도시의 환상적인 내적 활동성과 물리적 크기 양자를 심미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배웠다. 결국 나는 대도시에 집중된 정치적 운동과 사회적 운동에 대한 직접적 지식을 얻었다. 이 체험과 내게 있어서 이 체험이 가지는 지속적 효력 - 말하자면 도시의 신화 - 는 나의 책 "종교적 상황"이 널리 읽히게 된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대한 나의 인연은 여전히 강했다. 나의 생애의 거의 모든 큼직한 기억과 동경은 풍경과 흙과 기후와 가을의 논밭과 감자 냄새, 구름의 모양 그리고 바람, 꽃, 나무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후에 내가 독일과 남부 유럽, 서부 유럽을 여행 다니는 중에서도 땅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둘러싸인 채 감명 깊게 읽은 쉘링의 자연철학은 나의 자연에 대한 감정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 되었다.


내가 여덟 살 되던 때부터 몇 주일씩(후에는 몇 달씩) 바닷가에서 지냈던 것은 나의 생애와 활동에 있어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유한의 위에 무한이 접경해 있는 경험은 경계선적 상황에 대한 나의 성향에 부합되었고 또 그것은 나의 사고에는 창조성을, 나의 감정에는 기반을 주는 한 상징을 나의 상상력에 가져다주었다. 이 같은 체험이 없었다면 "종교의 실현"에서 표현된 바와 같은 인간의 경계선적 상황에 대한 이론은 제대로 전개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에 대한 관조에서는 또 하나의 요소가 발견된다. 땅의 고요한 부동(不動)에 대조적인 바다의 다이내믹한 침노와 그 질풍과 파도의 열광이 그것이다. "대중과 정신(Masse und Geist)"이라는 글에서 "역동적 대중"에 대한 이론은 거친 바다의 직접적 영향 아래에서 배태된 것이었다. 바다는 또한 역동적 진리의 바탕이자 심연으로서의 절대적인 것에 대한 교리와 유한한 것에 무한한 것이 뛰어드는 것으로서의 종교의 본질에 대한 교리에 필요한 상상적 요소를 가져다준다. 니이체는 어떠한 사상도 그것이 노천(open air)에서 생각된 것이 아닌 한 참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의 사상 중에서 많은 것들은 노천에서 배태된 것이며 나의 저작의 많은 부분은 숲 사이나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다. 도시의 요소와 시골의 요소 사이를 규칙적으로 갈마드는 것은 항상 내가 나의 삶에 있어서 없을 수 없으며 침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부분으로 있어 왔고 또 지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