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역자 후기
20세기가 낳은 세계 최고의 지성,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1886년 독일 브란덴베르그의 슈탈체델에서 태어났으며 베를린 대학, 튀빙겐 대학, 할레 대학 등에서 공부한 후, 베를린 대학, 마르부르그 대학, 푸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 등에서 교수로 활약하다가 나찌 정권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했다. 1933년 라인홀트 니이버 형제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민온 그는 유니온 신학교와 콜롬비아 대학을 거쳐 1955년에는 하바드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교수했으며 그로 인하여 하바드 대학 내에 한때 종교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시카고 대학을 마지막으로 1965년 79세의 나이로 별세한 그는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서있었지만 한 종교의 폐쇄적 체계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의 철학적 깊이는 서구 정신사를 그 최고봉에 있어서 관철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그의 실제에 걸맞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아직 그가 생존하고 있던 때부터 그를 주목하는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있어 간간이 그의 저서가 번역 소개되었는데 여기에 번역 소개하는 그의 철학적 자서전 "경계선에서(On the Boundary)"는 아직까지 국내에 번역, 출간된 바 없는 것으로 필자가 약 20년 전 대학 졸업 직후 공부삼아 번역했던 것이다. 이번에 낡은 스프링 노오트에서 찾아내어 신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입력,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틸리히의 온갖 저서들을 젊은 열정으로 탐독하고 번역되지 않은 것들은 원서를 구해 밤을 새워 읽던 시절이 새삼 그립기도 하고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에 심취했던 주제들에 다시 한번 몸을 담그어 보고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로운 깊이로 느껴본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직역이 많은 셈이라 난삽해 보이거나 얼른 의미가 간취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은 몇 번 되풀이해서 읽으면 곧 의미가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정리하면서 오역을 더러 바로잡기도 했는데 놓친 오역이 역시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틸리히의 정신적 편력을 개관하는 데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용
두 기질 사이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사회계급들 사이에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루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고국과 타국 사이에서
회고 : 경계선과 한계
"종교의 실현(Religiose Verwirklichung)"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경계선은 앎을 얻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다." 나의 생각들이 나의 삶에서 전개되어 나온 과정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나는 경계선의 개념이야말로 나의 인간적, 지적 발전의 전체를 보여주는 적절한 상징이라 생각했다. 거의 모든 순간마다 나는 실존의 두 갈래 가능성 사이에 서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어느 하나에 안착할 수도 없었고 또 그 어느 하나에 순전히 반대입장을 취할 수도 없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런 입장은 사고를 위해서는 생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삶에 있어서 어렵고도 위험한 것이며 끊임없이 결단을 요구하고 그리하여 두 갈래의 기로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이 입장과 그에 따른 긴장이 나의 운명과 나의 행적을 결정해 왔다.
두 기질 사이에서
아이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 그 부모의 성격에 너무 큰 비중을 두어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훨씬 충격적으로 되살아나고 때로는 그들 내면에서 깊은 갈등을 유발시키는 부모와 조상의 기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보다 유전적인 것인지 혹은 유년기에 받은 영향에 의한 것인지는 아무래도 좋다. 그렇지만 나는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사람인 아버지와 라인란트(Rhineland) 사람인 어머니의 결합이 나에게 동부독일과 서부독일 사이의 긴장을 심어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동부 독일에는 우울함과 뒤섞인 사색적 경향과 의무와 개인적 죄에 대한 높은 의식, 그리고 권위와 봉건적 전통에 대한 강한 존중이 여전히 살아 있다. 서부독일은 삶에 대한 정열, 즉 구체성, 융통성, 합리성 그리고 민주주의 등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진다. 비록 어느 쪽 특성도 다른 쪽에 대해 배타적인 자질은 아니었지만 이 상충하는 특색들이 나의 내적, 외적 삶의 과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부모를 통해서였다. 그 같은 부모의 유산이 가진 중요성은 그것이 어느 누구의 삶의 과정을 결정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망을 마련해 주고 비판적 결정이 태어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는 데에 있다.
이 두 유산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의 경계선적 위치는 이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영향은 얼마만큼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이유 때문에 더 지배적이었다. 그 결과 나의 어머니의 세계의 특성은 나의 아버지의 그것과 부단하고도 깊은 투쟁을 거친 후에야 발현되곤 했다. 나의 체질 중 어머니의 측면이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파격이, 때로는 아주 극심한 파격이 필요했다. 고전적 체계와 조화는 나의 유산에는 없었다. 이 점이 왜 괴테의 고전적 특색이 내게는 낯선 것이었는지 그리고 왜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 고전시대보다 고전 이전과 고전 이후 시대가 내게는 더 흡수력이 강했는지 하는 것을 설명해 준다. 이 긴장은 또한 나의 역사해석의 바닥에 깔려 있는 어떤 전제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주는 바가 있다. 곧 자기폐쇄적 순환구조라는 고전적 전제보다는 앞으로 향해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노선을 택한 것이라든가 또 두 대립하는 원리들 사이의 투쟁이 역사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생각, 그리고 진리는 플라톤이 가르친 바와 같이 불변의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 운명의 한가운데에서 발견된다는 역동적 진리관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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