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의 생애와 사상 - 김경재
역자 후기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나는 심각한 투쟁 후에야 지적, 도덕적 자율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의 권위는 개성적이고도 지적이었으며 또 교회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 때문에 나는 그것을 구원의 종교적 권위와 동일시하였는데 그 권위는 자율적 사고로써 행하는 모든 시도를 종교적 불손행위로 만들고 권위에 대한 비판을 죄의식과 연결시켰다. 새로운 지식은 단지 금기를 깨뜨림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으며 모든 자율적 사고는 죄의 인식을 동반하게 된다는 인류의 오랜 경험은 나 자신의 생애의 근본경험이기도 하다. 그 결과 모든 신학적, 윤리적, 정치적 비판은 내적인 장애에 부딪쳤는데 그것은 단지 오랜 투쟁이 있고서야 극복되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같은 내성의 중요성과 심각성과 무게를 높이 사게 해주었다.
일반적인 지성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동의 터전이 되어 있던 결론에 내가 뒤늦게서야 도달했을 때에도 그것은 여전히 내게는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의미로 가득 찬 듯이 보였다. 자유 일변도의 지성은 내게는 의심스러웠다. 오로지 자율적이기만 한 사고의 창조적 힘에 대해 나는 별로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 심정 하에서 나는 특히 지난날과 오늘날의 자율적 사고의 비극적 파탄을 다루는 일련의 대학 강의를 했는데 예를 들면 그리스 철학의 전개로써 이성적 자율의 출현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회의주의와 개연론으로 기울어지면서 고대 후기의 새로운 복고주의에로 되돌아가는 과정 등이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자율적 이성이 저 홀로는 참다운 내용을 가진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역사의 결론적 자명성을 구성케 하였다. 중세철학 강의에서, 또 프로테스탄티즘의 지성적 역사에 관한 강의에서, 그리고 나의 책 "종교적 상황"에서 나는 서구사상의 역사에 이 생각을 적용했으며 그것으로부터 신율(神律:theonomy)의 필요성을 이끌어 내었는데 신율이란 종교적 근본으로 채워진 자율이다.
단순한 자율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타율에의 길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신적이거나 세속적인 권위에의 복종, 즉 타율은 정확히 말해서 내가 배척해온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에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유럽 사태의 현존하는 경향이 낡은 혹은 새로운 타율에로 되돌아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비록 내가 그 경향의 동기를 깊이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정열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뿐이다. 참담한 투쟁 속에서 쟁취된 자율은 당연지사로 항상 받아들여져 온 자율처럼 그리 쉽게 굴복되지 않는다. 사람이 한 번 가장 거룩한 권위들의 금기와 관계를 끊으면 그는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또 다른 타율에 굴종할 수는 없게 된다. 우리들의 시대에 있어서 그같은 굴종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일어나기 쉬워졌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전통적 권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허와 회의주의의 당연한 귀결이다. 싸움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은 자유, 희생을 치르지 않은 자유는 쉽게 버려지고 만다. 그것은 우리가 유럽 청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속박에의 갈망 - 사회적 요인들은 제쳐놓고 - 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나는 가장 두드러지게 타율적인 종교체계인 로마 카톨릭에 오랫동안 반대해 왔다. 이 저항은 프로테스탄트적이면서도 자율적이었다. 이 저항은 신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 체계 안에서의 교리적 가치나 예전적(禮典的) 형식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리적 권위에 대한 굴종이 표면적일 뿐일 때에도 그 교리적 권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카톨릭의 타율적 성격을 겨냥한 것이었다. 꼭 한 번 나는 어떤 심각성을 가지고 카톨릭이 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이 나치즘의 취지에로 동조하여 일어나기 전인 1933년에 나는 로마 교회냐 프로테스탄트로 위장한 국가주의적 세속주의냐 하는 두 가지의 가능성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 타율의 사이에서 결단을 내림에 있어서 나는 차라리 카톨릭을 택해야만 했었다. 나는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이 그 기독교적 연원을 되돌아보았기 때문에 그같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자율과 타율 사이의 투쟁은 프로테스탄티즘의 또 다른 지평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것은 정확히 자율에로의 나의 길을 발견했던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 비록 온화한 19세기적 형태였지만 - 에 대한 나의 저항을 통해서였다. 이런 이유로 나의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가 신이라는 관념 속에 내포된 절대적인 것의 관계를 인간이 만든 종교의 상대성에 적용하는 가운데에서 발생되었다. 역사적 종교가 신적인 것의 무조건적 정당성을 표방할 때, 그리고 한 권의 책이나 인물, 공동체, 제도, 원칙 등이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면서 다른 모든 현실로 하여금 그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때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와 소위 변증법적 신학이라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추세를 포함한 종교적 교조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주장들도 신적인 것의 무조건적 주장의 바깥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이 유한, 곧 역사적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다는 것은 모든 타율과 모든 악마주의의 뿌리이다. 악마적인 것은 영원한 것의 모습을 한 유한하고 제한된 그 무엇이다. 그것의 악마적 성격은 또 다른 유한한 실재가 그것에 반대하면서 마찬가지로 무한함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인간의 의식이 그 양자 사이에서 찢기어질 때 분명히 드러난다.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타율에 대한 나의 부정적 태도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내가 악마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종교재판장(또스또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소묘된 것 같은)을 상대로 싸우는 식이라고 했다. 나는 독일 고백교회의 말기의 전개 양상이야말로 그 같은 싸움이 아직도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종교재판장은 바르트파의 초자연주의라는 뻣뻣하고도 몸에 꼭 끼는 갑옷을 입고 고백교회로 들어가고 있다. 바르트파의 극도로 편협한 입장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을 구제하지만 동시에 내가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부인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타율, 곧 반자율적이고 반인본주의적 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냐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자기자신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일체의 것에 대한 저항이 안에 살아 있는 한 카톨릭주의의 약화된 변형 이상의 그 무엇으로 변함없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테스탄트의 저항은 이성적 비판이 아니라 예언자적 심판이다. 그것은 자율이 아니라 신율이며 왕왕 그렇게 되듯이 그것이 합리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형태를 띄고 나타날 때도 그러하다. 자율과 타율 사이의 모순은 신율적이고 예언자적인 발언 속에서 극복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저항과 예언자적 비판이 프로테스탄티즘의 필연적인 요소라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이 세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경배와 설교 및 가르침은 전달 가능한 실체적인 것의 표명을 전제로 한다. 제도상의 교회는 물론 예언자적 발언까지도 실제화될 수 있는 성육(成肉)된 생명인 예전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생명은 경계선상에만 서 있을 수는 없으며 그것은 또한 반드시 그 자신의 광막함으로부터 나와서 스스로의 가장자리에 살아야 한다. 비판과 저항의 프로테스탄트적 원칙은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을 바루는 것이며 그 자체가 자기확립적인 것은 아니다. 다른 것과의 이 같은 공동(共動)에 있어서, 나는 "비판과 자기확립으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 als Kritik und Gestaltung)"이라는 책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자기실현 문제를 다루는 한 글을 썼다. 나의 첫 번째 큼직한 신학적 저작의 제목인 "종교의 자기실현"은 바로 이 문제에서 촉발된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예전적인 것과 예언자적인 것, 및 자기확립적인 것과 타자시정적인 것과의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 있어야만 한다. 만약 이 요소들이 서로 분리된다면 전자는 타율적이 되고 후자는 공허해지고 말 것이다. 상징으로서 그리고 실제로서의 그들 양자의 통합은 내가 보기에 신약성서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에 잘 부각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거기에는 가장 높은 인간적 종교의 가능성이 성취되면서 동시에 희생되어 있다.
독일 프로테스탄티즘의 마지막 몇 해에 걸쳐 일어난 사태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신세속주의의 출현은 종교적 자율과 타율의 문제에 새로운 중대성을 가져왔다. 오늘날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대한 궁극적 판단기준의 문제는 로마 세속주의와 초기 기독교 사이의 싸움 이래 전에 없이 날카로워져 있다. 인간의 모든 창조적 활동의 판단기준으로서의 십자가를 나찌가 공격한 것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는 바를 새롭게 해 주었다. 타율과 자율에 대한 물음은 인간실존의 궁극적 판단기준에 대한 물음이 되었다. 이 싸움 속에서, 독일 기독교계와 독일 자체 그리고 전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다.
모든 정치체제는 권위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무력수단을 소유하는 식으로만이 아니라 인민이 묵시적이거나 명시적으로 동의하는 식으로도 이루어진다. 그 같은 동의는 실권을 지닌 집단이 모두에게 강력하고 요긴한 이념을 내세울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치의 영역에는 "대망과 임무수행으로서의 국가(Der Staat als Erwartung und Aufgabe)"라는 글에서 내가 다음과 같이 특징지었던 권위와 자율간의 상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정치체제는 힘을 전제하며 결과적으로 힘있는 집단을 전제로 한다. 한 힘의 집단은 다른 관심체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관심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시정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위의 남용에 대해서 시정을 동참시키는 체제인 한 정당하고도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권력집단의 출현을 막게 된다며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런 예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야기되었는데 바이마르 공화국의 특수한 민주주의적 형태는 권력을 얻으려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도 애초부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집단에 의한 권위의 남용을 통박하는 시정적 입장은 통솔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전체 국가의 노예화와 지배계층의 붕괴이다." 1차대전이 일어나기 수년 전 내가 처음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린 이래 나는 정치적 좌파의 입장에 서 왔으며 매우 강한 보수적 전통에 맞서오기까지 했다. 이는 내가 그 이전에 종교적 타율에 대해 가졌던 저항이 나로 하여금 자유주의 신학의 편을 들게 했던 것처럼 정치적 타율에 대한 나의 저항이었다.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잇따른 나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서는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한 흔해빠진 폄하에 동조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나는 자율의 위대하고 참으로 인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원칙을 무시한 점에 있어서보다는 차라리 "자유주의적(liberalistic)"이 된 점에 있어서 비난되는 편이 나을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대중들을 다시 통일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어려운 정치적 문제이었던 시기에 걸쳐서 정치권력의 문제는 여전히 절실한 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전체주의 국가와 교회의 주장"이라는 글에서 독일 역사에 있어서의 최근의 사태와 관련하여 다루었다. 거기에서 나는 대중이 온갖 의미로운 존립을 박탈당할 때 그들이 권위주의적으로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쟁 직후에 나온 나의 책 "대중과 정신(Masse und Geist)"에는 이 문제에 대한 중요한 고찰이 있다. 그 중 "대중과 인격"이라는 장에서 나는 오직 전문화된 비의적(秘義的) 집단만이 자율적 입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의적 자율에로의 후퇴는 나에게는 현재 속에서 움직이는 역사의 힘에 의해서 요청되는 듯이 보였는데 그것은 고대 후기의 경우와 얼추 비견할만한 것이다. 이 같은 후퇴가 진리와 정의를 너무 엄청나게 희생시키지 않고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미래 세대의 전략적 문제이다. 나는 원칙에 있어서 그리고 사실에 있어서 자율과 타율의 경계선 위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다가오는 역사적 시간이 타율의 세력 아래에 떨어지고 말지라도 이 경계선상에 머물러 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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