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1) 평안을 주는 3대 요소
에베소서 1장 1-2절
< 에베소서 서론 >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신실한 신자들에게 주님 안에 있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는 ‘풍성’과 ‘충만’이란 2가지 단어입니다. 그 2가지 단어가 에베소서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1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장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 외에 2-6장까지 계속해서 ‘풍성’과 ‘충만’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결국 에베소서의 주제는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서를 기록했습니까? 에베소서 6장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이 구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쓴 에베소서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달한 사람은 두기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에베소 교인들이 큰 근심에 빠져 있자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에베소 교인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기 위해서 자신의 형편도 말하고 성도의 굳건한 신앙을 권면하기 위해서 에베소서를 썼습니다.
당시 에베소는 가장 큰 이방 신전 빌딩이 있었던 곳이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곳에서 빌딩도 없고 돈도 없고 핍박을 받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참된 부요가 무엇인지를 에베소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진짜와 가짜를 알고 있었고,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썩어질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처럼 성도의 참된 부요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에베소서의 주제입니다.
< 평안을 주는 3대 요소 >
본문은 에베소서의 도입부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축도가 나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제일 먼저 에베소 교인들에게 ‘샬롬’의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샬롬’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의미하는데, 그런 평안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1. 목적 안에 거하는 것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도 바울은 처음에는 복음과 교회를 무섭게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어 가장 적극적으로 복음과 교회를 전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완전히 변화된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었음을 확신했습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이 평안의 축복을 줍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목적을 모르는 것’이고, 성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진지하게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초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자신의 고백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본인이 어떤 사업을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 사업을 하게 된 나 아무개는”이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분당이 살게 되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분당에 살게 된 나 아무개는”이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남이 성도다운 성도라고 기꺼이 불러주고 인정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는 유럽에서 수많은 구제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기아로부터 구출했습니다. 그 일로 그의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의 칭송의 대상이 되었고, 핀란드에서는 ‘후버(hoover)’라는 단어까지 생겼는데, 그 단어의 뜻은 ‘친절한 행동을 하다, 도와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이름도 남들이 칭송할만한 이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도답게 살 때, 하나님도 인정하고, 남들도 인정해주고, 더 나아가 자신의 양심도 자신을 인정하게 되면서 놀라운 평강이 그 삶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목적 안에 있을 때 가장 사람답게 되고, 성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 가장 성도답게 됩니다. 그처럼 목적을 따르는 ‘답게’의 삶이 평안의 원천입니다.
2. 믿음 안에 거하는 것
본문 1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바울이 놀라운 풍성을 전한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인맥도 아니고, 건물이나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외적으로 성공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성 프랜시스는 외적으로는 거지처럼 살았지만 위대한 성자로 기억됩니다. 반면에 프랜시스 당시 교황이 누구인지, 가장 큰 성당의 신부가 누구인지는 거의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신실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다면 내 부족함과 연약함과 고난도 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 믿음이 놀라운 평강을 줍니다.
또한 믿음이 주는 또 하나의 귀한 축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일의 찬란한 꿈’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이 어려워도 내일의 찬란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내일의 찬란한 꿈을 꾸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어지고 말씀을 가까이 하다가 보면 꿈이 심령 속에서 샘솟듯이 솟아나게 됩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믿음 안에 굳건히 서면 우리 안에 소망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3. 은혜 안에 거하는 것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평강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결코 진정한 의미의 평강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쌍둥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많은 소유’는 ‘많은 불안’을 만듭니다.
약 1세기 전에 미국에 헤티 그린(Hetty Green)이란 여인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1916년에 1억 달러의 재산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처럼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름 값을 절약하려고 찬 오트밀을 먹었습니다. 아들이 다리를 다쳤을 때에는 공짜 진료소를 찾느라고 시간을 지체해서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우유에 대한 논쟁을 하는 중에 죽었습니다. 그녀는 우유 중에서도 위에 막을 형성해 떠 있는 부분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분이 제일 값싼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부자였지만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그녀는 소유의 문제에서는 누구보다 부자였지만 은혜의 문제에서는 누구보다 가난했습니다. 그처럼 은혜를 모르는 삶에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평강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유는 적어도 그 소유를 자신과 남을 위해 적절하고 지혜롭고 의미 있게 사용합니다. 그것은 바로 은혜의 의미를 이해한 삶이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성도가 지향해야 할 삶입니다. 은혜 안에서 받은 것을 지혜롭게 이웃과 나누며 누릴 줄 모르면 많은 소유는 불안만 키우게 됩니다. 인생에서 ‘받음’보다 ‘누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인생관으로 살 때 어느 누구도 우리의 평안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평안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쓰면서 제일 처음으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평강의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또한 많은 서신에서 사도들은 평강의 축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서신을 끝냅니다. 그 말은 평강이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처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안에 거하고, 신실한 믿음과 은혜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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