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라 >
아삽은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을 폐허로 만든 비참한 현실을 하나님께 아뢰었다(1-4). 그리고 그런 이방 나라들에 진노의 심판을 내려달라고 탄원했다(6-7절). 또한 아삽은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했고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의 이름을 증거하도록 자신들을 구원해달라고 했다(8-9절). 그는 ‘주의 이름’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겼다.
하나님의 이름이 수치가 되지 않도록 힘쓰라. 성도로서 도덕과 윤리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하라고 말하면 헛된 영성주의자들은 뻐기며 말한다. “기독교는 윤리의 종교가 아니다. 그런 설교는 예수가 없는 윤리적인 설교다.” 기독교가 ‘윤리의 종교’는 아니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불신자보다 나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성도가 차원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이름을 힘써 높이고 믿음 외에 다른 행실로 불신자들의 비방을 듣지 않도록 힘쓰라. 성도는 사치를 해도 안 되고 지나치게 인색해도 안 되고 교양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안 된다. 그처럼 세상의 요구 기준보다 조금 더 낫게 행하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지킬 때 거기서 믿음의 참된 능력도 생긴다.
어디에 가든지 성도다운 표시가 나타나게 하라. 그 표시에 비하면 몇 푼 손해 보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축복의 장에서 실족할 수도 있고 반대로 축복의 장으로 올라설 수도 있다. 비록 기독교가 윤리의 종교는 아니지만 성도가 더 나은 윤리와 교양과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은 헛된 영성주의자들이 영성을 자랑하는 삶보다 훨씬 복된 삶이다.
<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라 >
아삽은 기도할 때 주의 종들의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고 고통당하는 자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죽음이 정해진 자의 생명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10-11절). 또한 대적이 하나님을 비방한 것에 대해 칠 배나 갚아달라고 기도했다(12절). 그런 탄원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도였다.
큰소리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기보다 잠잠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중요하다. 얕은 시내는 물소리가 요란하지만 깊은 강은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른다. 그처럼 믿음의 깊이가 얕으면 소리가 커지지만 믿음의 깊이가 깊으면 소리가 작아진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면 심히 어려워도 어렵다는 소리나 흔들림 없이 묵묵히 자기 비전을 향해 나아간다. 그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될 때 그 나무에 열매가 맺힌다.
예전에 평생 시장에서 장사하던 한 할머니가 재산의 절반인 25억 원을 인물을 키우는 장학금 및 선교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그 일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절반을 차지했기에 절반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사실상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전부를 차지했기에 그런 헌신을 할 수 있었다. 평생 험한 일을 하면서 얻은 열매를 후대 및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나누었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신뢰하며 드리는 기도는 놀라운 능력의 원천이다. 마귀는 신실한 성도의 기도를 가장 두려워하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성도를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일과 문제에만 몰두하게 만든다. 기도가 결핍되면 아무리 유능한 성경 연구가도 마귀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가 풍성하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고 반드시 선한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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