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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우리네 교회의 뻔뻔스러움

Joyfule 2020. 3. 5. 01:40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우리네 교회의 뻔뻔스러움

 

 

엊그제 부산울산모임에는 낯선 권사님 두 분이 오셨다. 인터넷에서 영성학교의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울산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셨다고 하였다. 오신 이유를 물으니, 마음이 갈급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셨다고한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보니, 그동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정적으로 해 오셨다는 느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찾아오셨는데, 필자가 할 얘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찹찹했다. 정성껏 차려내온 맛난 저녁식사를 즐겁게 먹고 나서 필자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해온 신앙성적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며, 성경에서 명령한대로 살지 않으면 천국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예상대로, 그분들은 불편한 얼굴이 되어갔다. 그래서 필자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성경구절을 인용해가며 말을 이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

 

위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뜻이며 철저하게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암울하고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도하며, 어떤 환경과 낙심천만한 처지에서도 감사하고 살고 있는가? 덧붙여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처럼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완벽하신 하나님처럼 말과 행동을 완벽하게 하며 살고 있는가? 그랬더니, 그분들의 입에서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살수 있냐면서, 자신들도 노력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로 항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분들이 말이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부족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처럼 살 수도 없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없는 것을 사실이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봐주시겠는가?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1~3)

 

위의 구절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요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서 초대교회의 7개 교회를 나열하시며 전한 말씀의 일부이다. 안타깝게도, 7개 교회 중에서 5개 교회가 책망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사데교회에 하신 책망이 위의 구절이다. 그들에게서 온전함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에게만 완전함을 요구하시며 심판 날에 이의 유무를 확인하시겠는가? 짐작하신대로, 심판대에 선 모든 영혼들에게 심판의 기준으로 확인하시는 내용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명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냐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투가 아닌가? 그러나 두렵고 떨리는 심판대에서, 추상같은 예수님 앞에서 그런 말이나 꺼낼 수 있겠는가? 거의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은 성경에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 그동안 교회 마당을 밟으면서 해온 신앙행위를 토대로,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영접기도행위나 주일성수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기도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전 인격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이고, 주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며 성수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네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의 상당수는 성경에 언급이 없는 것들이며 교회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필자가 그런 행위가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필자는 그런 행위가 성경에 콕 집어서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해온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가지고 천국의 백성이라고 안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웃기고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기나 하는가?

   

물론 우리는 온전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완벽하게 실행하며 살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토로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항변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변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을 멸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인들이 설교단상에서 듣는 성경말씀은 전체 성경의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축복과 덕담, 위로와 격려를 달달하게 포장하여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심판대에서, 설교시간에 전혀 듣지 못한 말이라고 항변하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어느 교단소속의 교회에서, 어느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해왔냐고 물으실 것 같은가? 필자가 한 말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감 없이 할 뿐이다. 예수님도 심판대에서 심판하시는 잣대는 우리네 교회의 목사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유통하는 내용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그대로 가감 없이 적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잊은 지 오래이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추상같은 하나님의 명령을 찾아내고 기억하고 있겠는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처럼, 성경을 통째로 외워서 가르치고 육백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히 지켰지만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신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