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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께 목숨을 바칠 사람을 찾는다.

Joyfule 2020. 3. 1. 13:27


나는 하나님께 목숨을 바칠 사람을 찾는다.

 

 

우리나라 교회의 위기는 기독교의 위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그래서 전도지를 건네도 관심이 없고, 목청껏 소리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물론 목회자의 타락과 교인들의 위선이 한 몫 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큰 문제가 아니다. 원래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이쯤해서 끝장을 내고 싶겠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속 좁은 필자가 어찌 헤아리랴?

 

미련하기 짝이 없게도, 필자는 현대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지식으로 무장한 시대에 구약시대와 같이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 방식이란 외국의 명망 있는 신학교에서 탁월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금의환향해서, 대형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현학적이고 감성을 터치하는 쫀득쫀득한 설교솜씨로 교인을 사로잡는 세련된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훈련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교회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귀신들이 앞잡이는 세운 좀비들이 재탕, 삼탕 해 먹은 방식이다. 그래서 필자가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인터넷에 띄우고 유투브 동영상으로 널어놓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을 연상하며 피식 웃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방식에 선책의 여지가 없었다. 성령께서 양들을 떼로 보내줄 테니, 한적한 시골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영어로 도배한 신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애쓰고, 교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세련되고 현학적인 설교솜씨를 익히느라 노력하는 것보다 쉽기는 하였다. 그래서 5년여 전에 충주 변두리의 한적한 시골에 오래된 농가주택을 월세를 얻어서 그렇게 시작하였다. 그 뒤의 이야기는 여러분도 다 아시는 바이다.

 

기적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한적한 시골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적당한 기간 동안 기도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총총 걸음으로 떠나갔지만, 어떤 이들은 아예 영성학교를 공동체로 여기고 매주 자동차로 두세 시간을 걸려서 찾아왔다. 그런 사람들이 아이들을 합쳐서 백삼십 명이 넘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앉아있을 공간도 부족하다. 말하자면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영성학교의 목회철학이나 신앙방식이 진짜라고 여기면서 눌러앉은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요구하는 대로 기도훈련을 성실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5년이 가까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성령께서 명령하신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코치진에 불과하다. 그동안 수많은 기적과 이적이 나타나서 귀신이 쫓겨나가며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거나, 각종 삶의 기적들이 나타났었는데도 성령의 사람까지는 아니다. 이 사실이 필자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고민 끝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2:10)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은 위와 같다.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몸부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태도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용병처럼,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라고 콕 집어서 말했다. 이 수준을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형식적인 예배의식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신앙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치고, 소수의 열정적인 교인들이라도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남다르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게 죽도록 충성하는 겉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속내와 동기나 목적이 마음을 다 바치고 목숨까지 기꺼이 내드리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신앙행위를 하고 있지, 예수님이 명령하신 수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네 주변에 성령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수준은 당신의 상상을 초월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7~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6:48)

 

그래서 당신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고 계신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을 빠짐없이 지키고, 하나님처럼 거룩한 성품으로 말과 행위가 완벽하게 행하며 살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 말씀대로 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시도하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볼멘 목소리로 항변할 것이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2,3)

 

그러나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은 당신의 행위가 온전한지 살펴보고,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날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복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오늘 소중한 목숨을 기꺼이 바칠 각오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