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하루의 일기 - 정영숙
이른 아침에 딸이 찾아와서 B부장이 죽었는데 문상을 대신 갔다 와 달라고 하여 나도 깜작 놀라며 가겠다 하고 삼성병원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106번 버스가 자주오지 않아서 택시를 탈까말까 하던 순간에 버스가 와서 탔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J권사님도 함께 버스를 탔다. 나보다 년 장자이시라 당연히 내가 버스비를 내려고 카드를 내는데 그만 그 권사님이 돈을 내었다. 미안하여 왜 그르시냐고 했더니, 자기가 나의 버스비를 내려고 일부러 기다리다가 106번을 탔다고 한다. 나는 삼성병원 정문에서 내리고 그분은 창원으로 갔다.
영안실로 가니 아무도 없고 중학생(?)정도의 학생이 두 명 있었다
모두 어디 갔느냐고 했더니 입관하는 것 보려고 갔다고 한다. 내가 너무 일찍 왔다. 시계를 보니 정오다. 기다리기 지겨워 점심이나 먹자하고 정문 앞 식당을 들어갔다.
아직 이르게 와서 그런지 손님은 많이 오지 않았다. 내 옆에 45세 정도의 부인이 혼자 앉아 있었을 뿐이다.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아서 내가 옆 좌석의 아주머니를 보고 우리 각각 앉아있느니 한 식탁에 같이 하자고 하니, 그분도 좋다며 내 탁자로 옮겼다.
우리 둘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내가 하는 봉사단체의 하는 일을 설명하고 마침 가지고 있던 회보를 주며 만일 가정폭력을 당하고 오 갈 데 없어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1366으로 전화를 하라고 했다. 또 알콜 중독자가 가족을 괴롭히면 무료로 숙식제공을 하면서 교육 시키는 곳이 있으니 안내를 해 주는 일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특별한 모임 아니고는 식당을 가면 내가 먼저 음식값을 내어야 마음이 편한 것이 습관이 되어 온 나는, 그날도 내가 점심 값을 내려고
코드 왼쪽 주머니에 만원을 넣었다. 그리고 밥값을 내려고 내가 먼저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식당을 나왔다. 신호등 앞에서 아주머니와 서서 파란불 오기만 기다렸다. 다만 그 아주머니가 “좋은 일 하시는데---”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둘은 병원 정문에서 서로 잘 가시라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어느 건물에 입원해 계시느냐고 물으니 왼쪽 건물을 가르키며 “횐 건물 여깁니다” 라고 했다.
문상을 하려고 다시 영안실로 갔다. 고인 외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서로 우물쭈물 하는 순간 마침내 전화로 알려준 고인의 형님이 와서 나를 소개 하며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순간, 몇 달 전에 어떤 분이 “ 아무도 모르고 자기 둘만 아는 사이라면 살아있을 때 문병 자주가고 죽고 나면 가지 말라” 는 그 말이 생각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문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앗차! 포켓에 손을 넣으니 음식값 내려든 만원이 그대로 있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하고는 급히 식당으로 가서 돈을 주었더니 같이 있었든 그 아주머니가 내었다고 한다.
아찔했다. 내가 이런 실수는 65세가 넘도록 해 본 기억이 없다. 얼굴이 화끈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 아주머니가 말 하던 건물의 1층 안내양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 하며 꼭 찾아 달라고 졸랐다.“ 환자의 나이는 83세. 주소는 의령. 병명은 급성위염. 내가 찾는 사람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45세 정도의 며느리입니다 ”라고-.
안내양이 내가 설명한대로 친절히 쓰다가 컴퓨터로 조회를 하드니 성명을 모르는 분이라 도저히 못 찾겠다며 2층으로 가 보라고 했다. 2층에 , 3층에 가서도 똑 같은 질문에 똑 같은 대답이었다. 하는 수 없어 방방히 뒤지고 다니며 물었다. 그래도 그런 분은 없다고 한다.
너무 많이 걸어서 발이 아프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기도를 했다.“하나님, 제가 이런 건망증에 걸리기는 정말 처음입니다. 그분이 나를 어찌 생각을 하겠습니까. 왜 내가 신호등 기다리면서 그분이 좋은 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흘릴 때 깨닫지 못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꼭 만나게 해 주십시요.” 라고 -.
마침, 한 건물에 사는 아주머니가 자기도 이웃 사람의 문병 차 왔는데 같이 차를 타고 가자고 하여 함께 오다가 사랑샘공동체 입구에서 내렸다. 공동체 직원들에게 나의 건망증을 얘기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얘기 하는데 그들은 깔깔 웃는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또 말했더니 “그렇게 괴로워 말고 그 음식값 길에 지나가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르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라며 위로 해 주셨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 아주머니를 만나 내 실수를 해명하고 대신 식사대접을 해야 숙제가 풀리겠다. 아무리 나이 탓이라 하지만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린다니, 이르다가 치매에 걸릴지 모르겠다는 등 벼라 별 생각이 시간과 함께 머리에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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