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회개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눅 17:4).
그리스도인들이 범죄할 때 서로 경계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 경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나 형제들과 관계를 회복하도록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눅 17:3). 이 때 죄는 주께서 눅 17:2에서 말씀하신 무서운 심판을 자초하는 죄, 곧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주께서는 책망 받은 형제가 회개하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눅 17:3, 4). 주께서 베푸신 용서가 얼마나 온전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항상 용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희생 제사와 용서를 다루는 율법 의식과 제도는 출애굽 시대에 모세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죄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범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죄들은 간단하게 잊혀질 수 없었습니다. 곧 죄가 용서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속죄의식, 곧 레위기 16:20 이하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그 죄를 짐승에게 전가 시킴으로써 그 죄를 하나님이 제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레 16:20, 22, 17:11). 시편 25:11, 65:3, 79:9들은 구약성서 초기의 문서들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죄에 대한 의식과 용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초기의 예언서들에서도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언급이 있습니다(겔 36:33, 사 4:3, 미 7:19). 그러나 이사야 40~55장은 제사 문서 사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짐승의 피에 의한 속죄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포로기의 상황에서 속죄 의식이 간단히 사라져 버릴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의 노래’에서 이스라엘의 죄와 이방인들의 죄를 짊어질 분을 예고하였는데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속죄와 죄 사하심을 이루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53장, 참조 55:6~13).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관계가 무너진 것을 뜻합니다. 신약성서에서 용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하시는 사랑과 은혜에서 비롯됩니다(골 1:14, 엡 1:7). 우리는 또 ‘주의 만찬’(Lord’s Supper)에서도 속죄의 은혜를 깨닫습니다(마 26:17~28, 요 6:53). 구약성서의 용서에 대한 선포는 이 곳에서 계승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다시 전파됩니다(렘 31:34). 용서는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막 10:45, 요 3:16).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담당하십니다(요 1:29, 벧전 2:21~24).
주기도문의 다섯째 기도는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용서를 들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마 6:12). 주님의 활동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는 것과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마 4:23, 9:35). 용서는 이제까지 저질러졌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기는 것(골 1:13)을 포함합니다. 주께서는 십자가에서 첫 번 말씀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이고 곧 같이 달린 강도를 회개한 이를 용서하신 것입니다(눅 23:43).
바울 서신에는 ‘용서’와 ‘용서하다’라는 용어가 실제로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용서의 선포는 과거의 죄를 제거하는데 그치지 않고 죄의 권능으로부터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곧 바울에 의해 칭의(justification)의 교리(롬 3:21, 4:22, 25, 갈 3:6~9)와 하나님과의 화해(reconciliation) 교리(롬 5:10, 고후 5:18, 롬 11:15, 고후 5:19)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 8:1),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고후 5:17).
그리스도께서 수행하신 용서의 선포 임무는 이제 교회에 넘겨졌습니다. 이 임무는 설교와 각 개인에게 대한 직접적인 용서와 또 세례와 성찬 의식들에서 수행되어야 합니다. 이 임무의 타당성은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에 주어진 권세에 기초하지만(마 18:18, 요 20:23),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순종치 않는 결함 있는 교회는 신자들의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헨리 나우웬(Henry Nouwen)은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를 완전히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라 쓰고 있습니다. (勇) 07.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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