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회개를 앞세우며 기도하라

Joyfule 2024. 6. 30. 21:39


회개를 앞세우며 기도하라

< 눈물로 간구하며 기도하라 >

 다윗은 극심한 고난을 기도로 극복하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그처럼 고난을 이겨내려면 눈물로 간구하며 기도하라. 다윗은 목이 마를 정도로 부르짖어 기도했고 눈이 쇠할 정도로 눈물로 기도했다(3절). 그렇게 간절히 눈물로 기도한 것은 자신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자가 많았고 부당하게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원수가 강해서 자신이 빼앗지 않은 것도 물어주게 되었기 때문이다(4절). 다윗은 용사였지만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람은 슬퍼도 눈물을 흘리고 기뻐도 눈물을 흘린다. 슬픔이 잘 극복되면 기쁨이 된다는 암시다. 눈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슬픔의 눈물은 ‘슬픔을 정화시키는 눈물’이 되고 연민의 눈물은 ‘인격을 성장시키는 눈물’이 되고 감격의 눈물은 ‘기쁨을 지속시키는 눈물’이 된다. 또한 헌신의 눈물은 ‘축복을 약속하는 눈물’이 되고 기도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이 된다.

 다윗은 눈물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의인의 눈물은 하나님의 눈물 병에 기록됨을 믿었다(시 56:8). 그가 밤마다 흘린 눈물은 홍수가 되어 침상을 띄울 정도까지 될 때도 있었다(시 6:6). 눈물을 비웃거나 냉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라. 눈물 섞인 빵 껍질을 씹을 때 위선의 껍질을 벗길 수 있고 축복을 감싼 껍질도 벗길 수 있다. 다만 눈물을 잘 분별해서 악어의 가짜 눈물이나 스토커의 거짓 눈물에는 속지 말라.

 사람은 거짓 눈물에 잘 속는다. 특히 마음이 약한 사람은 거짓 눈물에 속아 인생 전체를 도난당할 때가 많다. 사이비 교주는 대개 거짓 눈물을 잘 연출한다. 수많은 나쁜 소문이 돌면서 남들이 다 지탄해도 교주가 거짓 눈물을 흘리며 변명하니까 마음 약한 신도들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거짓 눈물에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실한 눈물의 기도에만 최선으로 반응해 주신다.

< 회개를 앞세우며 기도하라 >

 다윗은 우매함을 죄로 여기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자기 우매함과 죄를 토로하는 회개 기도를 드렸다(5절). 최고의 눈물은 진실한 회개의 눈물이다. 기도할 때도 회개하며 기도하면 급속히 회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회개 기도를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기도할 때 “내가 회개 기도를 했으니 빨리 변화를 일으켜주세요.”라고 요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사과나 반성이나 뉘우침 이상의 것이다. 뉘우침과 회개는 겉모습은 비슷해도 의도와 속성은 많이 다르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뉘우치는 것이 사람 눈에는 더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마음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죄의 대가를 덜 치르려고 잘못했다고 하는 ‘뉘우침’보다 죄를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회개’를 원하신다. 하나님 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진실한 회개가 필요하듯이 인간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도 진실한 사과가 필요하다.

 잘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사과한다고 말한 후 “사과했으니 끝내자. 사과했는데 왜 안 푸느냐?”라며 사과도 일방적으로 할 때가 있다. 그때 아내가 사과를 바로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했구나.”라고 하면서 미안함을 가져야 진짜 사과하는 자세다. 그런데 부끄러움도 모르고 “내가 사과했는데 아내가 안 받아줘요.”라고 소문까지 낸다면 그것은 자기 잘못보다 아내의 잘못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으로서 그 사과에 진정성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사과를 무조건 즉시 받아주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과에는 진정성이 필요하듯이 회개에도 진정성이 필요하다. 고난 중에는 죄와 상관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한 목적으로 생기는 고난도 있다. 그때는 고난을 감사하고 고난과 담대하게 맞서라. 그러나 고난 중에는 불순종과 죄 때문에 생기는 고난도 많다. 그때는 진심으로 회개하라. 진실한 회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상 이상의 큰 역사를 일으킨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