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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이해.

Joyfule 2023. 11. 23. 10:45



 

 

 

    회당 이해.

 

유대교에서 예배의식·집회·학습 장소로 쓰이는 공동체 예배당.

 

회당의 전통적인 기능은 그것이 갖고 있는 3가지 히브리어 이름인 베트 하테필라(기도하는 집), 베트 하크네세트(집회하는 집), 베트 하미드라시(학습하는 집)에 반영되어 있다. 회당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함께 모이다'라는 뜻의 synagei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집회 장소를 뜻한다. 이디시어 '슐'('학교'라는 뜻의 독일어 Schule에서 유래)도 회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며, 오늘날 일부 개혁파와 보수파 회중들은 성전이란 말을 쓴다. 회당의 기원은 남아 있는 증거로 볼 때 BC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역사는 그것보다 오래된 것이 틀림없다. 일부 학자는 BC 586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임시로 개인의 집들이 공공예배와 종교교육 장소로 쓰이다가 회당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예루살렘 밖의 공동체 대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의식에 참석할 때 그 의식을 직접 집행시킬 수 없으므로 성전 경내에서 2주 동안 함께 모여 기도하도록 정했는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회당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회당은 AD 70년 티투스가 제2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의 제의와 제사장 제도를 종식시킬 때까지 고대 성전 의식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점점 늘어났다. 성전이 파괴되자 회당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져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1세기 문헌에 따르면 회당들은 팔레스타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그리스·이집트·바빌로니아·소아시아 등지에도 많았다. 1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유대인 공동체은 회당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점심·저녁에 예배를 드렸으며, 안식일과 종교 절기들에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다.

 

오늘날 회당은 기본적으로는 고대의 회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형편에 따라 교제·휴식·자선행사들도 한다. 회당은 기도와 경전 공부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유대인 공동체가 세운 본질상 민주적인 제도이다. 예배 때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므로 공중 예배에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회당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므로 회당을 세우고 유지할 때 랍비와 직원들은 지역공동체의 요구들을 반영한다. 회당 건물에는 일정한 표준이 없다. 전형적인 회당에는 궤(율법 두루마리들을 보관한 상자), 궤 앞에서 타오르는 '영원한 빛', 즉 2개의 촛대, 교도들이 앉는 자리, 성서를 낭독하고 종종 사회자가 예배를 인도할 때 올라서는 조금 올라간 강단(bimah)이 있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남녀 차별의 관습이 정통파 회당들에서는 아직도 존속되고 있지만, 개혁파와 보수파 회당들에서는 폐지되었다. 어떤 회당 건물에는 몸을 씻는 의식을 행하는 목욕탕(mikvah)이 붙어 있다.

 

회당(Synagogue)의 이해

회당은‘베트 암’(µ[ tyb = 백성의 집)으로 불렸고, 그에 합당하게 공동체 모임이나 축제와 법정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나 아이들을 위한 교육 기관의 역할도 하였고 도서관 혹은 자료실 등의 목적에도 기여하였다. 그래서 미쉬나는 도시를 구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회당을 언급한다(mNed 5:5).

 

이스라엘의 성전은 하나 뿐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적 종교적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이 성전이 바벨론의 침입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605-432B.C.) 성전도 무너졌고, 낯선 이방땅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회당이다. 회당(synagogue)이란 말은 syn(함께)과 ago(인도하다. 데려가다)의 합성어이다. 회당은 가장(家長) 10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설립할 수 있었다.

 

회당에서는 주로 예배와 교육을 하였다. 예배는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에 드렸다.

어린아이들은 주간에 회당에서 읽고 쓰기를 배웠는데, 교과서는 주로 구약성서였다. 6살에 모세오경, 쓰기, 수학을 배웠고, 10살에 미쉬나를, 15살에 가마라를 배웠다.

회당은 또한 지방법정으로도 사용됐다. 구전에 의하면, 예루살렘(혹은 팔레스타인)에 약 48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회당의 구조

회당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방은 기도, 설교, 공중예배의 사무실, 그리고 다른 방은 배운 사람들의 모임, 종교와 훈련에 관한 질의응답, 교육의 목적 등으로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의 예배 장소를 벹하크네셑(Bet-ha-Cneset/회당, 집회소), 강의를 하던 곳은 벹하미드라쉬(Bet-ha-Midrash/서재)라고 부른다. 번창하는 지역에 있던 회당들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훌륭한 건축양식과 장식을 갖추었다. 필수적인 기구는 성경궤, 휘장막, 단, 강단, 등, 촛대, 회중석) 등이였다.

 

회당 공동체가 설립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명의 종교적 성인이 필요한데, 이들을 가리켜‘민얀’(Minjan)이라고 부른다(Meg IV, 3). 경우에 따라서는 기도를 위한 최소한의 수인 10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직업을 갖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예속되지 않은 성인 남자 10명을 요구한다. 이들을 가리켜서는‘바트라님’(Batlanim)이라고 부른다.

 

민얀에 속하지 않는 여성은 회당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의무는 아니었으나, 여러모로 동참하였다.

사도행전에 드러나듯이 디아스포라 여성들은 회당예배에 즐겨 참여하였다.

 

회당 봉사자의 직책과 하는 일

가장 중요한 직책은‘회당장’(ajrcisunavgwgo" archisynagogos 혹은 tsnkh var rosch ha-knesset)이고, 세 명으로 구성된 회장단이 회당 공동체의 외적 사무를 관할한다(jMeg III,2,74a).

 

회당장은 회당 관련 제반 업무(재정, 제의, 행정, 정치)를 책임진다.

누가복음 13장 14절은 예배를 책임지며 집회의 과정이 율법에 따라 수행되는지를 감독하는 회당장에 대해 언급한다.

 

회당장 외에도 중요한 직책으로서 ‘회당 봉사자’(uJphrevth"hyperetes 혹은 diavkono" diakonos, 히브리어로 ˆzj hazzan)가 있다. 이들은 예배 때 토라 두루마리를 낭독자에게 나르며 낭독이 끝나면 다시 원위치로 가져가며(Joma VII,1; 눅 4:20), 율법을 범한 회원에게 태형을 집행하기도 했으며(참조 고후 11:24), 나팔소리로 안식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일도 맡았고(Schab 35b), 회당 청소도 하였다.

 

회당의 역할과 중요성

성전과 더불어 유대교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라고 말할 수 있는 회당의 역할과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율법을 가르치고 전하여 유대 공동체가 율법에 친숙하도록 한다. 이런 의미에서 회당은 토라를읽고 가르치며 듣고 배우는 토라의장이다.

② 회당은 디아스포라의 경우 성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성전 멸망 후에는 성전을 대신하는 기능을 맡았다. 이러한 사실은 본래 성전에 있었던 일곱 촛대(Menora)가 회당에 세워졌고, 성전 예배의 여러 제의적 관행이 회당 예배의 관행과 동일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③ 회당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도처이다. 요세푸스(Ap 1:209)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회당에서“저녁 때 까지”기도했다고 한다.

④ 회당은 동시에 교육 기관이다. 율법에 관한지식및 성경 읽기를 중개함으로써 일종의 초등학교(rpsh tyb)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미쉬나 연구소(vrdmh tyb)의 역할도하였다.

⑤ 지역 모임을 위한회합 장소의 역할을 한다.

⑥ 타지 유대인들을 위한숙소의 기능도수행하였다.

 

회당(Synagogue)과 성전

유대교의 발전에 회당(Synagogue)이라는 장소는 회집의 중심지로서, 신앙적 공동체의 상징으로서, 사도들의 복음전파와 신약교회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 회당(Synagogue)

Ⅰ. 회당의 명칭과 역사

"회당"(Synagogue)이라는 명칭은 "수나고게"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종교적인 목적, 세상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을 지칭하였습니다(사도행전6:9)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마태복음4:23) 회당이란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모이는 장소", "예배와 교훈의 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의 역사를 모세의 시내산 성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동식 성전의 역사로 본다면, BC. 586년 바벨론 포로생활과 함께 발생한 회당의 역사는 사실상 고정형의 역사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흩어진 유대인들은 지역마다 회당을 지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1세기에는 이러한 회당이 예루살렘에만 480여개나 있었고 지역까지 합하여 1000여개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Ⅱ. 회당의 역할

구약에서 종교와 교육은 일체의 관계였습니다 공동체 사회에서 자녀들과 청년들의 교육에 가장이 책임을 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교육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회당에서는 대부분 "미슈나"를 공부하였는데 성인들은 토라(Torah)를 읽었고 쉐마(Shema)와 같은 성경구절을 암송하였습니다 회당은 성경공부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사, 형사, 종교상문제를 판결하는 법정 역할도 함께 하였습니다(마태복음10:17,누가복음12:11) 그 리스와 로마지역의 회당은 종교적인 용도 외에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집과 같은 역할도 겸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Ⅲ. 회당의 조직관리

수세기 동안 회당관리와 역할은 변경되어 왔습니다 구약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의 권위가 장로에게 있었으며(창세기50:7) 제의적이고 의식적인 행사와 행정은 레위지파 제사장 반열에 속한자들의 지도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정정치 붕괴 후 헬레니즘 시대로 부터 회당조직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회당은 평신도 단체로서 바리새파들에 의해 발전하였습니다 회당조직은 회당장, 핫잔(Hazzan), 랍비, 평신도로 구성되었습니다 회당장이란 명칭은 AD. 1세기경, 유대교의 관리의 영어로 적용되었으나 5세기경에는 극히 배타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회당장은 집회 주재, 회당건물의 유지, 보존, 운용책임과 회당예배의 질서와 신성함을 유지하도록 하는 책임을 함께 맡고 있었습니다(누가복음4:13,13:14) 회당장은 토라의 낭독, 예언자들로부터의 낭독, 설교와 같은 일들을 분담해 줄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사도행전13:15) 핫잔(Hazzan)은 서열 2위로 종교적 회의의 수장역할, 회당장의 조수, 회당장의 서기를 맡았으나, 점차 기도를 암송하는 일과 성서를 낭독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랍비제도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된 후 갈릴리 지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 가운데서 성직자의 직무를 계속하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중세 말엽 랍비는 탁월한 직위와 권위를 가졌지만 현대는 토라를 가르치는 선생, 유대교 풍습을 위한 대변적 교육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Ⅳ. 회당의 건축

초기때의 중동지역에 있던 회당의 건축술은 헬라시대와 그 이후의 로마시대 때에 유행한 헬라적인 고린도식의 설계형태와 비슷하였습니다 유대교 구전에 의면 모든 회당의 건축물은 모든 회중이 예루살렘을 바라볼 수 있는 형태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회당에 관한 율법적 전승은 탈무드 문서중 하나인 "메길라"(Megillah)서의 서론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회당의 건축양식은 AD. 1세기경 확정되었고 회당은 시장의 사각 광장 중심지에 세워졌습니다 유대교 회당은 정면부분이 장대하고 장식이 현란한 표준적인 회당형태가 되었으나 예술적인 상징형태의 크기와 비용은 회중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좌우되었습니다 회당 건축술은 선명한 발전이 없었으며 디아스포라(Diaspora)의 각 유대인 공동체는 자기들의 상태에 따라 취사 선택적인 절충식의 회당 건축물을 지었던 것입니다

독일, 러시아계 유대인들은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Romanesque)양식의 교회건축물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계 유대인들은 장대한 규모의 아라베스크(Arabesque)양식이 원형 천정과 지중해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회당들은 모두 고대 전통과 상징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건물을 지었습니다

 

Ⅴ. 회당의 예배

이스라엘은 회당의 예배에서 여호와의 유일신 되심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모세에 의해서 제정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예배의 핵심은 쉐마(Shema)를 낭송하고 감사문들을 낭송하는 일이었습니다 회중예배의 실제적인 핵심은 히브리어로 된 완전한 토라(Rorah)를 봉독하는 행위였습니다

 

① 기도에의 부름(신명기6:4~9,11:13~21,민수기15:37~41을 낭독함)

 

② 기도(대표자의 기도,회중은 아멘,고린도전서14:16), 가장 유미한 기도문은 18개의 축복기도

 

③ 성경봉독과 간단한 해석(모세오경을 154주로 나누어 매주일 읽도록 함, 누가복음4:21)

 

④ 축도(민수기6:24~26, 제사장이 하되 없을때에는 일반성도 낭독)

 

(2) 예루살렘 성전과 그 의미

① 성전의 존재 의미 :

 

성전 자체는 이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적인 실체로서 신앙의 확신과 경고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서 성전은 임마누엘이신 예수의 모형이며 예표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전은 구속사 전개의 한 시점에서 예수께서 오시기 전 까지라는 시간적 제한성과 죄인이 하나님앞에 나아오는 방법과 절차를 엄정하게 제한함으로서 신약의 성도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교제와 비교해 볼 때 간접성이라는 제한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성전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② 성전의 역사 :

 

성전의 역사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성막(Tebernacle)에서 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막은 이동성을, 성전은 고정성을 갖는 점 외에는 그 의미가 완전히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상 세번 건립되었으나 성경에는 에스겔이 환상중에서 본 성전까지 모두 네개의 성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시대적 구분은 솔로몬성전, 스룹바벨의 성전, 에스겔의 성전과 신약의 헤롯성전이었습니다

 

③ 성전의 단계적 제한성의 의미 :

 

유대교가 가진 배타적 장소를 설명하며 죄 지은자는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의 제한적 요소의 어려움을 강조하였습니다 성전건물은 6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졌고 각 구획마다 한 단계씩 높은 위치를 차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성결을 강조하였습니다

 

㉮ 이방인의 뜰 : 이방인들에게 허용한 유일한 장소로 성전경내 외곽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였습니다

 

㉯ 성전, 벽 : 90cm의 담으로서 이방인들이 넘어설 경우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여인의 뜰 : 이방인의 뜰보다 90cm 높은 곳으로서 유대 여인들에게 출입이 허용되었으나 그 이상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 이스라엘의 뜰 : 여인의 뜰보다 3m 높은 곳으로 유대 남자들이 들어갔습니다

 

㉲ 제사장의 뜰 : 이스라엘의 뜰보다 90cm 높은 곳으로서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전 : 제사장의 뜰보다 2m50cm 높은 곳으로 성소와 지성소라는 두개의 구획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정해진 때에 자신의 임무를 위해 들어갔으며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단 한차례 대속죄일에만 들어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성전에서 이방인들을 배제하였던 것은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뜰을 계급별로 나누고 출입을 금지하여 유대교 체제의 염격한 신분차별을 강조하였습니다 일년에 단 한차례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지성소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는 점과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생각한 장소 가까이에 보통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한 여러가지 경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인들로부터의 분리에 대해 교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④ 성전에서 교회의 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하나님과 회개한 인간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셨을때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 졌는데(마태복음27:51), 이것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히브리서10:19~20)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로마서10:12)과 남자와 여자의 차별(갈라디아서3:28)과 제사장과 백성들의 차별(요한계시록1:6) 등 모든 신분적 차별이 철폐된 것이었습니다

 

회당 [synagogue, 會堂]

synagog라고도 씀.

유대교에서 예배의식·집회·학습 장소로 쓰이는 공동체 예배당.

 

회당의 전통적인 기능은 그것이 갖고 있는 3가지 히브리어 이름인 베트 하테필라(기도하는 집), 베트 하크네세트(집회하는 집), 베트 하미드라시(학습하는 집)에 반영되어 있다. 회당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함께 모이다'라는 뜻의 synagein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집회 장소를 뜻한다. 이디시어 '슐'('학교'라는 뜻의 독일어 Schule에서 유래)도 회당을 가리키는 말로 쓰며, 오늘날 일부 개혁파와 보수파 회중들은 성전이란 말을 쓴다. 회당의 기원은 남아 있는 증거로 볼 때 BC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제 역사는 그것보다 오래된 것이 틀림없다. 일부 학자는 BC 586년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임시로 개인의 집들이 공공예배와 종교교육 장소로 쓰이다가 회당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예루살렘 밖의 공동체 대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 의식에 참석할 때 그 의식을 직접 집행시킬 수 없으므로 성전 경내에서 2주 동안 함께 모여 기도하도록 정했는데, 이러한 유대인들의 관습에서 회당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회당은 AD 70년 티투스가 제2성전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의 제의와 제사장 제도를 종식시킬 때까지 고대 성전 의식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점점 늘어났다. 성전이 파괴되자 회당의 중요성은 훨씬 더 커져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유대인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1세기 문헌에 따르면 회당들은 팔레스타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로마·그리스·이집트·바빌로니아·소아시아 등지에도 많았다. 1세기 중반까지 대부분 유대인 공동체은 회당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에서 매일 아침·점심·저녁에 예배를 드렸으며, 안식일과 종교 절기들에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다.

 

오늘날 회당은 기본적으로는 고대의 회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형편에 따라 교제·휴식·자선행사들도 한다. 회당은 기도와 경전 공부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유대인 공동체가 세운 본질상 민주적인 제도이다. 예배 때는 제사를 드리지 않으므로 공중 예배에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회당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므로 회당을 세우고 유지할 때 랍비와 직원들은 지역공동체의 요구들을 반영한다. 회당 건물에는 일정한 표준이 없다. 전형적인 회당에는 궤(율법 두루마리들을 보관한 상자), 궤 앞에서 타오르는 '영원한 빛', 즉 2개의 촛대, 교도들이 앉는 자리, 성서를 낭독하고 종종 사회자가 예배를 인도할 때 올라서는 조금 올라간 강단(bimah)이 있다. 오랫동안 내려오던 남녀 차별의 관습이 정통파 회당들에서는 아직도 존속되고 있지만, 개혁파와 보수파 회당들에서는 폐지되었다. 어떤 회당 건물에는 몸을 씻는 의식을 행하는 목욕탕(mikvah)이 붙어 있다.

  

회당의 이해

 

< 역사 배경 >

 

본문 말씀 = 행26:10, 11

 

B.C. 5세기 경부터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하여

2,000년이 훨씬 지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대교와

유대인의 구심점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하고 있는

회당(會堂)은 이미 예수 시대에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며 팔레스틴 안에서나 밖에서나

어디든지 건축(建築)되어 있었다.

 

이 회당은 각 지방별 유대인들의 종교적, 사회적 중심지였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예루살렘 성전(聖殿)이 파괴(破壞)되었거나

아니면 성전이 복구된 후(後)에도 거기서의 제사가 심각히 오염된

상황이 대부분(大部分)이었던 바 바벨론 포수 이후 대부분 회당을

중심(中心)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유대교도 실상 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회당은 단일 성소인 성전의 이념은 전혀 해치지 않았다.

 

성전은 구약 율법에 따라 동물 희생 제사가 사제들에 의하여

거행될 수 있는 유일(唯一)한 성소로서 이스라엘 전민족의 공동

구심점이었던 반면, 회당은 각 지역의 일상 예배와 교육을 위한

유대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함으로써 그 조화를 잘 이루었다.

 

이는 바벨론 포로 이후 성전이 무너지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열방 가운데 흩어져 있을 때에 그 나름의 여호와 신앙을 고수하고

민족성(民族性)을 보호(保護)하기 위한 방편(方便)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회당(會堂)은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나 사도들의

복음 전파 사역과 초대 교회의 형성 및 복음의 세계적 전파에

있어서도 결정적(決定的)인 교두보(橋頭堡) 역할을 하였다.

 

또한 회당에서 드려지는 예배(禮拜) 의식은 후에

기독교(基督敎) 예배 의식의 전거(典據)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회당은 비록 유대인의 오류(誤謬)로 인해

기독교가 소유한 참 진리를 소유하지 못했으나 순수한

종교 형식의 입장에서만 볼 때에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회(Church)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다.

 

① 회당의 명칭과 기원

 

회당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나고게"(sunagwgh)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본래는 종교적, 세속적 목적(目的)을

불문하고 한께 모인 사람들의 모임, 또는 총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서 의미(意味)가 확대(擴大)되어 유대인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場所), 또는 건물(建物)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한 의미의 헬라어로서 "에클레시아"(evkklhsi,a)가

있는데 이 단어는 주로 헬라인들이 사용했으며 유대인들은

고집(固執)스럽게 "쉬나고게"(sunagwgh)만을 사용(使用)했다.

 

그 이유는 그 용어(用語)가 구약 율법의 상징인

"시내 산"(山)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실 회당의 선구적 형태가 나타난 것은 바벨론 포로 시대이지만

신약(新約) 시대(時代)와 같은 회당의 형태가 나타난 것은 애굽의

톨레미(the Ptolemy) 왕조(王朝)가 팔레스틴 지역을 통치하게 된

B.C. 3C경부터이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화 정책(宥和 政策)을 폈던 톨레미 왕조는

그들이 건설(建設)한 도시에 유대인들을 이주(移住)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는 동시(同時)에 유대인들의 종교적(宗敎的), 문화적(文化적)

전통(傳統)을 인정(認定)해 주었다.

 

따라서 비록 팔레스틴 지역을 벗어난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은

회당(會堂)을 세우고 그 곳을 중심으로 그들의 고유 신앙(信仰)

생활(生活)을 유지(維持)할 수 있었다.

 

한편 회당의 수는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준히 증가하였다.

 

랍비들이 전하는 바에 다르면 예루살렘 성전 파괴 당시에

예루살렘에만도 480여 개(個)의 회당(會堂)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팔레스틴 지역 뿐만 아니라 애굽과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와 지중해, 심지어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江)

유역까지 널리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디아스포라 지역의

회당(會堂)의 수까지 계산(計算)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

 

② 회당의 관리(조직)

 

회당은 본래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은 종교(宗敎)

지도자(指導者)들이 아닌 백성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따라서 그 관리들도 그 회당이 위치한 마을의 어른들 중심으로

구성(構成)되었으며 대개 율법(律法)을 깊이 연구한 바리새인들은

랍비(Rabbi)가 되었다.

 

이에 회당 관리들과 그들의 역할을 도표로 정리하여 보았다.

 

③ 회당의 역할

 

회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안식일에 유대인들의

예배 처소(禮拜 處所)로 사용(使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는 단지 예배(禮拜)만 드렸으며

희생(犧牲) 제사는 오직 성전(聖殿)에서만 드렸다.

 

이는 회당이 유대인들의 단일 중앙 성소인 성전의 본질과

중요성을 전혀 위반하거나 약화시키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상호 조화를 이루어 유대인들의 신앙 생활의 구심점 역할을

나누어 수행(隨行)했다.

 

한편 회당에서는 희생 제가가 거행되지 않으므로 구약 율법에

의하여 제사(祭祀)의 독점적 집전자로 규정(規定)된 제사장들이나

일반 레위인들이 상주(常駐)하지 않았다.

 

대신에 일반 지파 출신의 종교 지도자들 곧 당시 랍비라

불리워지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가관들의 주도(主導)에 의해

유대교의 교육 장소(敎育 場所)로 사용(使用)되었다.

 

즉 회당은 오늘날의 초등(初等) 교육 기관과 같이 어린이들에 대한

미쉬나(Mishnah) 혹은 탈무드(Talmud) 교육의 장소로 또 성인들에

대해 토라(Tora)나 미쉬나를 기록한 율법 두루마리를 낭독(朗讀)하는

장소(場所)로 사용(使用)된 것이다.

 

또한 회당(會堂)은 종교, 교육 기능 이외(以外)에도

세속적(世俗的)인 목적을 위해서도 활용(活用)되었다.

 

즉 회당은 각 지방에 산재한 유대인 공동체의 자치 기관으로서

민사, 형사, 종교상의 문제(問題)를 판결(判決)하는 일종의 법정

구실을 했을 뿐만 아니라(마10:17, 눅12:11) 일반 백성(百姓)들의

집회(集會) 장소(場所)로도 활용(活用)되었다.

 

특히 회당에서는 형벌도 집행되었는데 기독교의 집사격에

해당하는 회당의 핫잔이 형벌(刑罰)의 정도에 따라 채찍질

했다(마10:17, 23:34, 막13:9).

 

또 혹자에 따르면 회당은 정치적 집회(集會) 장소나 여행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여관(旅館)과 같은 기능(機能)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회당(會堂)은 유대인들의 각종 사교(私交)

집회(集會)의 장소(場所)로도 자주 활용(活用)되었다.

 

 

④ 회당의 건축과 내부 양식

 

유대인 구전 전승을 기록한 탈무드(Talmud)를 보면

유대인들은 회당을 건축할 때 그 마을의 시장이 사는

네모난 광장(廣場) 중심(中心)에 예루살렘 성전(聖殿)이

위치(位置)한 방향(方向)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문헌에 의(依)하면 그 성읍(城邑)의 가장

높은 곳에 회당(會堂)을 건축(建築)하였다고 한다.

 

이는 예루살렘 중앙(中央) 성소(聖所)를 향(向)한

유대인들의 종교심(宗敎心)을 반영(反影)한 것이다.

 

한편 회당의 형태는 주로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聖殿)이나 모세의 회막(會幕) 형태를 본딴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헬라식 건축(建築) 양식(樣式)을 본딴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틴 지역(地域)에서는

주로 후자 형태를, 기타 해외의 디아스포라 지역에서는

주로 전자(前者)의 형태(形態)를 따랐다.

 

그것은 아마도 팔레스틴 지역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접할 기회(機會)가 많기 때문에 굳이 성전(聖殿)의 형태를 따를

필요가 없었고 디아스포라 지역의 유대인들의 회당(會堂)을 통해

성전(聖殿)이 지닌 신성(神聖)함을 맛보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회당 건물은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혹은 그 지역(地域) 유대인들의 생활(生活) 형편(形便)에 따라

그 형태(形態)와 크기가 달라졌다.

 

예(例)를 들면 팔레스틴, 시리아, 로마 지역에서는 주로

바실리카식의 형태를 취했으며, 독일, 러시아 지역에서는

고딕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樣式)을 따랐다.

 

그러나 다른 건축물과는 달리 유대인 회당(會堂) 건물

양식은 그렇게 쉽게 변(變)하거나 발전(發展)되지 않았다.

 

반면 현대 서방 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會堂)은

과거와는 달리 일반 다른 건축물(建築物)과 마찬가지로

매우 크고 화려(華麗)하게 지은 것들이 많다.

 

한편 회당(會堂) 내부(內部)의 특징(特徵) 중(中) 하나는 남녀가

서로 분리(分離)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으며 여자(女子)들은

주로 위층에, 남자들은 아래 층에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에서는 법궤(法櫃)가 놓이는 자리에, 회당에서는

토라(Tora) 두루마리 보관소를 설치한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외의 회당 내부 양식에 세부 사항은 다음 삽화를 참조하라.

 

⑤ 회당 예배

 

유대인들은 대개 월요일, 금요일 그리고

매(每) 안식일과 축제일에 예배를 드렸다.

 

그들의 예배(禮拜) 내용을 보면 안식일과 축제일에는

예배 절차(節次)를 다 빠짐없이 행하였으나 다른 날의

예배는 상황(狀況)에 따라 생략(省略)되는 부분도 있었다.

 

한편 안식일 오전에 행해진 회당 예배 절차는 다음과 같다.

 

㉠ 쉐마(Shema) 낭독 =

 

사회자나 혹은 성가대석에서 "들으라 이스라엘!"이라는 소리와

함께 민15:37~41, 신6:4~9, 11:13~21의 세 축복문, 즉 쉐마를

낭독(朗讀)함으로써 예배(禮拜)가 시작(始作)된다.

 

"쉐마 본문의 이해" 참조(參照).

 

㉡ 대표(代表) 기도(祈禱) =

 

회당장이 정(定)한 기도의 선창자(先唱者)가 기도용

법복을 두르고 회중 앞에 나와 큰 소리로 기도문을

선창하면 회중(會衆)은 아멘으로 화답(和答)한다.

 

기도문(祈禱文)은 18개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대개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낭독(朗讀)한다.

 

㉢ 토라(Tora) 봉독과 해설 =

 

3년 주기로 1회씩 봉독(奉讀)할 수 있도록 모세의 5경을

155개 항목으로 구분한 것 중 한 항목을 랍비가 봉독하고

어려운 부분(部分)을 해석(解析)한다

 

제사장(祭司長)이나 레위인이 이 일을 맡기도 했다.

 

한편 토라 봉독 후에는 랍비나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나와

역사서나 선지서 가운데 한 구절을 읽고 거기에 적합(適合)한

설교(說敎)도 할 수 있었다(눅4:20~27, 행13:16~41), 이때에

설교자(說敎者)는 회당장(會堂長)의 허락(許諾)을 받아야 한다.

 

㉣ 축복(祝福) 기도(祈禱) =

 

예배의 마지막 절차로서 대개 제사장(祭司長)이

아론의 축복 부분인 민6:24~26을 선포(宣布)하나

제사장이 없을 경우 평신도(平信徒)가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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