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후천적인 운명을 만들어보라

Joyfule 2024. 6. 6. 13:31



후천적인 운명을 만들어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연말연시에는 새해는 무슨 띠의 해라고 말들이 많습니다.

내년은 갑진년이고 청룡의 해라는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아닐지는 몰라도 저는 어릴 때부터 제 운명에 대해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게 뇌리에 남았습니다.

요즘 백세시대라는 말을 하면서 노후에 대한 관심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잖이 큰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목사나 신부들이 방송에 재미있게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백세까지 살아서 뭣하겠다는 말입니까? 만일 태어난 운명의

옛 사람의 사주팔자는 낡아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운명은

날로 새로워지는 신진대사가 없다면 100세 까지는 엄청 지루하고 고단합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확정하는 순간 죽는 것이 가장 좋다지요.

왜냐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재미가 하나 없이 된 주의

종들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환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젊은 시절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하고 불러대다가 그만 입이 봉해지고 말았었습니다. 그건 장차 다가올 영광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현재의 고난이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영으로 진리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어 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에서 담대하게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영광 앞에 나아가는 비밀을 터득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지금 성경에 박식하나 아볼로와 같이 구약의 인물이나 사건 주제별로 그리고 예수에

관해서는 능숙한 웅변으로 전하는 사람들이 비성경적 운운하는 소리를 하는 걸 봅니다.

그러나 비성령적이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진리를 모르므로

자신이 비성경적인 사람이 되는지 까맣게 모르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 참 많지요?

믿음으로 인간이 가진 존엄성을 확장하고 잠재력이나 의지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봐야 타고난 운명입니다.

메뚜기도 오뉴월이라고 5-60대에 피크를 이루다가 그만 이런 저런 병으로 스러집니다.

외모지상주의이기에 겉사람을 최대한으로 꾸며 살다가 그만 시들어가고 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선천적 사주가 있고 후천적 사주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통해 예배와 기도로 인격질서를 지키고 시간질서와 물질질서를

지키는 육체의 연습도 상당한 효과가 있어 기독인들의 삶이 윤택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 운명적인 존재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죠. 조심조심해서 이룬 공덕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는 새 언약의 말씀을 듣고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나아가는 비밀을 터득하면 드디어 육체인

질그릇이 보배가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의 보배가 됩니다.

영적가치관이 확립되는 순간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가 그 속에

나타나심을 실제로 보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역사함을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항상 짊어집니다. 수지가 맞는 거래니까요.

그토록 십자가가 고난의 대명사로 보이다가 드디어 자랑의 십자가, 생명을 얻는

십자가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십자가가 됩니다. 드디어 십자가의 도를

배워 내가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그 십자가가 나를 짊어지는 피동의 삶이 됩니다.

 

그 때부터 고난 받은 이유를 알게 되고 환난이 필수선택이라는 걸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환난은 고추보다 더 맵고 마늘보다 더 독합니다. 신음소리를 토합니다.

여러분은 장차의 영광으로 환난이 즐겁고 감사한지 몰라도 저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사랑하고 진리의 성령 안에 주와 하나가 된 약속을

사랑으로 지키므로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내 속에 역사하여 타고난 운명은

서서히 떠나가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 지음을 받는 운명이 점점 밝아집니다.

그로인해 환난은 가볍고 영원한 영광은 중한 것임을 알고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보이는 나에게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낮은 몸이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능력으로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실 주님을 사모하며 항상 내 속에 나타나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100세를 살게 하든 아니면 지금 당장 주의 부름을 받든지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 주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의 십자가를 지나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고 또 나아갑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확연하게 열리고 주께 항상 힘을 얻은 후천적 운명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님의 흰 보좌 심판 때에 생명을 가진 생명의 부활로 서게 됩니다.

비록 흙덩이의 육신 속에서 탄식하며 살기는 하지만 몸의 기운이 다해 흙으로

되돌아 갈 때에 손으로 짓지 않은 하나님의 장막이 덧입히고 그 영원한 생명에

죽을 것이 삼키어져 사망과 상관이 없는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고후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