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안으로 모셔라

Joyfule 2024. 6. 8. 13:15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안으로 모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1:14-15)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려고 한다면 말씀(호 로고스)

이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육신 안에 계심을 거부하지 말아야죠.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육체 안에 거하시는 걸 시인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의

영이 되니까요(요일4:2-3) 한글성경이 ‘육체로’ 하는 말씀은 in the flesh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을 빌어 칼빈이 교회가 제 2의 성육신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세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 육체로 오신 분을 우리는 예수라고 부릅니다.

그 예수가 아담 안에 있는 우리 죄를 청산하기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이후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의미로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십니다(마1:21,23)

만일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만 성육신이 되심을 알고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수용하지 않으면 라오디게아교회처럼 되지요.

예수를 믿기는 한다는데 계시가 열리고 나서 보니 그리스도는 밖에 계십니다.

그래서 그 교회 안에 모든 것이 가득차서 구원 외에는 도무지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라오디게아교회가 결국 음녀가 되고 서로 말이 맞지 않지만 연합이 되어

바벨론이 되고 맙니다. 바벨론이란 말은 틀리지만 하나로 묶은 연합체잖아요?

 

성경의 음녀란 소싯적의 짝을 버린 여인의 대명사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 다른 이 곧 그리스도와 한 짝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예정된 뜻인데(롬7:4) 이를 거부한 것이지요.

그냥 예수를 믿으라면 믿겠는데 꼭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야만

내가 그 부활과 생명에 연합이 되어 영생을 얻는다는 건 좀 거북스럽다는 거죠.

그래서 바울이 울면서 토로하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랍니다(빌3:18)

지금 마귀가 결박이 되어 무저갱에 갇혀 있고 오직 거짓선지자들만 나불대는데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이 되는 성령세례를 외면한다면 구원의 기간이 끝나고

마귀가 놓임 받아 곡과 마곡의 전쟁이 시작이 되면 아무도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혹이 되지 않으려면 진리의 사랑을 받아야(살후2:10)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율법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를 태초부터 말씀하여 오신 그 말씀이

심을 알았지만 주의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 임재하시는

새 언약까지 이루어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천국에서 작은 자입니다.

이를테면 천국에 입성하는데 턱걸이를 했다는 뜻이지요.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나

선지자들도 계시의 영으로 주의 고난과 고난 받으실 주의 영광을 보고 믿었지만(벧전1:11)

그들이 증거는 받고 약속을 받지 못했다(히11:39)함은 오순절 이후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해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만큼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고 한 몸이 되지 않고 어찌

하나님을 내가 안다(야다, 기노스코 동침)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가 그 안에 안 계시니 고린도교회처럼 밖에 나타나는 표적만 좇다가

그만 거짓선지자에게(살후2:9) 농락을 당하고 있는 온 세상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건 진리의 영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수건을 덮어 놓은 결과입니다.

이 수건은 언제든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회개로 그 안에서 벗어집니다.

왜냐하면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어 수건을 벗고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릅니다.

이는 주의 영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고후3:14-18)

따라서 회개는 죄 사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육신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의 자리로 따라가는 회개로 영의 자유를 얻습니다.

 

이런 회개를 한 사람들은 의롭게 되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모시는데

조금도 거북함이 없이 그와 하나 되게 하심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 안에 거처를 함께 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시는

새 언약에 의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 집니다. 은혜로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의 총량을 헤아리고 진리는 그 은혜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알렐루야의 찬양은 구원 다음에 영광 그리고 존귀(원어참조)

그 다음 능력으로 나타나는 말씀이 이루어지므로 부르게 되는 겁니다(계19:1)

할렐루야는 하늘의 하나님을 향한 노래이고 알렐루야는 땅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기에 알렐루야 하고 우리가 부릅니다. 우리 가운데 임하신

그리스도는 태초 안에서 아버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유의 주재로서 충만 그 자체이시며 우리에겐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되십니다. 구원은 시작이고 영광은 꽃이며 존귀는 열매입니다.

그리고 능력은 우리에게 죽고 썩은 것을 다시 살릴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므로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알렐루야 하고 찬양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