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神曲'(La Divina Commedia)
연옥의 하부
두 시인은 험악한 산길을 올라가 넓은 평지로 나왔다.
이 곳에서는 한 떼의 망령들이 시편 501장을 부르고 있었다.
"하느님이여, 주의 자비를 좇아 저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제 죄를 도맡아 주소서.
저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저의 죄를 깨끗이 하소서.
저는 제 죄를 아오니 제 죄가 항상 제 앞에 있나이다"
이 사람들은 암살했거나 혹은 전사 익사 모살 교살된 자들로
억울한 최후를 마친 사람들이었으나 단말마의 순간에 회개를 한 사람들로서
눈을 감는 순간에 하늘로부터 광명이 내려와 평화롭게 영혼이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시인 소로데루로를 만나 왕후의 골짜기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시인들은 연옥에서 밤길을 가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밤에 걷게 되면 반드시 길을 잃는다.
밤의 어둠은 의지를 잠재우고 무력하게 만들게 때문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연옥에서는 금물이었다.
이 곳에서는 화초와 진귀한 나무가 울창하여
찬란한 금은 보석의 장식을 펼쳐 놓은 것과 같았으며
대기에는 향기가 가득하여 에덴과 흡사한 작은 낙원과 같아서 단테의 심신이 황홀해졌다.
여기는 고금의 이름난 장군과 어진 왕의 거처인데
그들은 백성들을 가련하게 여겨 훌륭한 정치는 하였으나
정사에만 몰두하고 사치를 일삼으며 정작 중요한 신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의 루돌프 황제를 비롯하여 룩셈부르크의 앙리 3세 등이
옛날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으나이제는 친구가 되어 조용히 과거의 죄를 씻고 있었다.
밤이 되어 기도 소리가 밤 하늘에 들리는데
높은 하늘에서 푸른(푸른 빛은 희망의 상징) 옷을 입고 푸른 날개를 치며
두 천사가 자비의 상징인 불꽃에 싸인 이 검을 들고 내려와 낙원을 경호하고 있었다.
옛날 에덴에서 죄악의 과실을 먹도록 이브를 유혹하였던 뱀도 이 화원에 숨어 있었는데
또다시 왕후들을 유혹하려고 기어다니고 있는 것을 천사들이 큰 칼을 휘두르며 쫓아 버렸다.
연옥에서 이틀째 되는 날이 밝을 때 잠자던 두 시인은
천사들에게 운반되어 연옥의 상부에 가 있었다.
그 문턱에 있는 다이아몬드 문이 큰 층대 위에 있었는데
천사가 신의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강한 빛을 내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두 시인은 두려워하며 회개를 상징한 세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 계단의 제1단은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마음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고
제2단은 녹색의 소석인데 죄의 참회를 상징하고
제3단은 피처럼 붉은 반암으로 신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며
입구의 다이아몬드 문은 교회의 근본을 상징한다고 한다.
천사는 그들에게 권위를 표상하는 금과 지식을 표상하는 은으로 된 열쇠를 주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천사는 자기가 들고 있는 무딘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일곱 개의 P자를 써 주었다.
이것은 이 죄를 씻는 곳(연옥)에서 속죄하여야 할 죄인
오만, 질투, 분노, 태만, 탐욕, 폭식, 사음의 일곱 가지 악을 가르키는 것이다.
이 때에 새로 연옥의 문을 들어가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찬미의 소리가 들려왔다.
두 시인은 암석이 톱니와 같이 늘어선 속죄의 험한 길을 겨우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여덟 개의 고리 모양의 길이 나 있었다.
연옥의 산마루를 도는 이 둥근 길(환도)의 넓이는 좁지만 평평하였다.
한 쪽은 지하수의 천길 계곡이며 다른 한 쪽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이었다.
스승은 단테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테의 오른편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